겨울 이야기 / 김애자

 

 산촌의 겨울은 길고 지루하다. 사람의 발길이 닿지 않는 숲은 적막하고, 들은 허허로우며 거멀장처럼 성근 나뭇가지 사이로 내리는 햇살조차 궁핍하다. 사방 어디를 둘러봐도 춥고 쓸쓸지 않은 게 없다.

이래서 눈 내리는 날을 기다리게 된다. 진종일 눈이 오다가 그치고 다시 흩날리는 날이면 마른 잡목들이 눈꽃을 피우고, 그만그만한 집들도 자욱하게 퍼붓는 눈발에 묻힌다. 굴뚝에서 솟아오르는 저녁연기마저 잠포록한 기압의 무게에 눌려 추녀 밑으로 스멀스멀 내리깔린다.

이런 저녁 답엔 검둥이란 놈만 신바람이 난다. 공연히 눈 속에 코를 박고 냄새를 맡아보기도 하고, 혀를 내밀어 맛을 보기도 한다. 그도 심심하면 집 앞과 장독대로 길을 내는 주인에게 따라붙어 말썽을 부린다. 바짓가랑이를 물고 늘어지는가 하면, 물색없이 싸리비 끝을 물겠다고 덤벼들다가 ‘네 집으로 들어가라’는 불호령이 떨어지고서야 집으로 들어가선 앞발로 턱을 괴고 엎드린다. 제가 찍어 놓은 발자국 위로 난분분 떨어지는 눈송이를 지켜보는 녀석은 짖을 일없는 산촌의 무료함이 답답해 죽을상이다.

이리되면 네 시간 간격으로 들어오는 마을버스도 끊긴다. 가풀진 이역재를 넘지 못해서다. 더러 장에 나갔던 사람들도 서둘러 택시비를 추렴하여 집으로 들어와 이른 저녁상을 물리고 텔레비전 앞에 앉는다. 화면에서 앵커들이 전해주는 뉴스를 통해 세상 돌아가는 소식에 귀를 기울이고, 늙은 아내는 들보에 메주가 매달린 한쪽 구석에서 콩나물시루에 물을 준다. 안노인의 어깨는 대추나무에 낀 겨우살이처럼 앙상한데, 시루에서 떨어지는 물줄기가 손자 녀석들 오줌발만치나 시원스럽다.

눈 내리는 밤에는 시집을 꺼내 읽는다. 무쇠다리를 건너온 북방의 시인 이용악 선생을 만나 검은 눈동자가 바다처럼 푸르고, 얼굴이 까무스레한 전라도 가시내의 속사정을 들어본다. 또는 소월과 함께 진두강 가람가에 서서, 해 넘어가기 전 한참은 조마조마한 제 마음을 제가 누그릴 줄 아는 지혜를 궁굴리다 보면 뜻 모를 설움이 목젖을 누른다.

그러다가 목월 선생의 시<가정>에 이르면 이런 감상은 슬그머니 뒤로 물러서고 만다.

알전등이 켜질 무렵, 시인의 들깐에는 문수가 다른 아홉 켤레의 신발이 놓여 있다. 十九文半의 가장은 눈과 얼음의 길을 걸어와 코가 납작한 육 문 삼짜리 막내둥이 옆에 다 헤진 구두를 벗어 놓고, 자신에게 보내는 연민이 실로 눈물겹다.

“이랫목에 모인 / 아홉 마리 강아지야 / 강아지 같은 것들아 / 굴욕과 굶주림과 추운 길을 걸어 / 내가 왔다. / 아버지가 왔다. / 아니 십구 문 반의 신발이 돌아왔다. / 아니 지상에는 / 아버지라는 어설픈 것이 / 존재한다. / 미소하는 / 내 얼굴을 보아라.”

강아지 같은 새끼들 옆으로 돌아와 어설프게 미소 짓는 지아비가 어찌 시인뿐이겠는가. 눈보라 휘몰아치는 밤, 아파트 어귀에서 군고구마를 굽는 사내도 그러하리라. 고단한 몸 뉘일 방안에도 아비의 눈을, 혹은 손가락을 빼 닮은 사랑스러운 새끼들이 잠들어 있을 것이다.

어느 집이고 자식은 희망이고 버팀목이다. 가족들의 밥그릇을 책임지고 있는 가장은 때로는 눈과 얼음의 길에 넘어져 혼자 울기도 한다. 늦은 밤 도시의 뒷골목을 비틀거리며 걸어가는 어느 가장의 뒷모습은 쓸쓸하기 그지없다. 포장마차에 혼자 앉아 소주잔을 기울이는 이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뜰에 문수가 다른 여러 켤레의 신발들이 놓여 있을 때는, 생활은 곤궁할지라도 애들의 웃음소리가 끊이질 않아 행복하다. 폐사廢寺처럼 낡은 둥지에서 일 년에 대여섯 번이나 찾아오는 자식들을 기다리며 노구를 일으켜 혼자 밥을 지어 먹는 것보다 몇 배는 행복하다.

눈발이 굵어지면 된새막이 대숲에서 후드득 눈덩이가 떨어진다. 짧은 소음이 사라지고 나면 정적은 더 깊어진다. 세상의 소리가 다 끊어진 공적空寂은 산중에서 누리는 독락獨樂이다. 하지만 독락도 오래가면 외로움에 심신이 야윈다. 뒷동산에서 부엉이란 놈까지 청승을 떨어대면 몸을 뒤척이고 뒤척이다가 그에 옷가지를 걸치고 뜰로 내려서면 천지가 흰빛이다. 꽃도 지고, 잎도 지고 향기도 사라진 온 산하가 흰빛으로 순연하다.

그러나 눈이 그치고 난 후, 수은주의 눈금이 영하권으로 뚝 떨어질 양이면 두어 달 족히 발이 묶인다. 저수지를 끼고 이어진 산굽이는 쇠 움지라 한 번 눈이 얼어붙으면 봄이 올 때까지는 산 밖 출입이 어렵기 때문이다.

밤이 깊어지면 새로 들인 별채(聽香堂)로 건너간다. 문명의 기기라고는 형광등뿐이다. 화로에 물을 올려놓고 눈을 감고 있으면, 대숲에서 이는 바람소리와 찻물 끓는 소리가 귀를 맑게 한다. 세상은 멀고, 인간사의 옳고 그름에도 끼어들지 않으니 마음 또한 한갓지다. 이렇게 지내다보면 기다리지 않아도 봄은 한사코 돌아와 뜰에 매화를 피우리라.

어느새 밤도 자시子時에 이르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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