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풍의 시간 / 진해자

 

 

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창문을 열어 보았다. 밤사이 하얗게 서리가 내렸다. 초가을이라 믿기지 않을 만큼 공기가 싸늘하다. 가을의 이른 찬바람은 푸른 시간을 몰아내고 아쉬운 회색의 시간을 데려오고 있었다.

친구들과 단풍산행을 나섰다. 오랜만에 만난 친구들은 그동안의 살아온 소식을 전하기 바쁘다. 산을 오른 지 한참이 지났지만, 단풍 든 나무를 찾아볼 수가 없다. 단풍은 고사하고 말라서 떨어진 잎사귀만 무정한 바람에 서걱댄다. 사계절이 뚜렷하던 날씨가 언제부터인지 무너지고 있다.

여름과 겨울은 길어지고 봄과 가을은 오는듯하다 가버린다. 무엇이 그리 급한지 여유를 가질 시간이 없다. 지나온 시간을 돌아볼 겨를 없이 무작정 앞만 보고 달린다. 문득 돌아본 자리엔 미처 곱게 물들지 못한 나뭇잎만 허무하게 지고 있다. 단풍처럼 한 시절 붉게 물들어보지도 못한 채 낙엽이 되어 떨어지고 있었다. 낙엽은 나무의 마지막이며 나무의 슬픔이다.

얼마 전 허리가 구부정한 칠십 대 할머니가 사무실에 오셨다. 예금이 만기가 되어 새로 가입해달라고 한다. 예금통장을 만드는 동안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할머니는 오랫동안 식당을 운영하며 돈을 많이 모았다고 한다. 하지만 돈을 모으는 일도 예금을 하는 것도 재미가 없다고 넋두리를 늘어놓았다. 삶의 행복이 무엇인지 모르고 지나버린 시간이 야속하기만하다.

삼십 년 넘게 오직 식당 일에 매달려 살다 보니 집 밖의 풍경을 제대로 본 적이 없다는 것이다. 이제 식당 일 접고 여행도 다니고 하고 싶은 일 하시라고 했다. 할머니는 여행을 함께 할 친구도 자식도 없다며 한숨을 내쉰다. 무릎이 안 좋아 많이 걷지도 못하고 돈을 쓰고 싶어도 쓸 기회가 없단다. 아무리 고되어도 힘든 내색 없이 수십 년을 견디며 오직 일만 해왔다. 언제나 청춘일 것 같던 봄날도 가버리고 모든 것이 시들고 소멸해가는 겨울이 와버렸다. 돈을 좇아 몸이 으스러지도록 달려온 지난날이 후회스럽다며 울먹인다. 단풍놀이 한번 가는 게 소원이라고 말하는 할머니의 얼굴이 혹독한 겨울을 외로이 견디는 고목 같다.

할머니의 말을 듣고 있자니 하늘에 계신 어머니를 보는 것 같아 마음이 서글퍼진다. 일곱 남매를 먹이고 공부시키기 위해 집안일과 밭일을 삶의 전부로 알고 애옥살이했다. 어쩌다 비가 오는 날이 유일하게 쉬는 날이다. 살아오면서 힘든 일을 어떻게 풀어냈을까. 자식을 위해 평생을 바쳤지만, 정작 나는 어머니의 속을 들여다보지 못한 못난 딸이었다. 조개가 극심한 고통을 이겨내기 위해 진주를 품는 것처럼, 어머니는 아픔과 고통을 속으로 감내하며 일곱 남매를 품었다.

어머니와의 추억은 서쪽 하늘로 지는 노을 같다. ‘어머니의 손을 꼭 잡고 단풍놀이하며 행복한 추억을 많이 만들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하는 후회와 아쉬움이 가득하다. 하지만 시간은 어머니를 기다려주지 않았다. 무게도 빛깔도 없는 시간이 어제를 만들고 오늘을 만들지만, 사람은 그 시간을 따라가지 못했다.

모든 일에는 때가 있다. 아침에 해야 할 일, 점심에 해야 할 일, 저녁에 해야 할 일이 다르다. 알맞은 시기에 하지 못하면 하루가 헛되이 지고 만다. 며칠 전 사무실에서 대화를 나눈 할머니처럼 ‘조금만 더 일하고 쉬자.’라는 생각을 가진다면 어느새 해는 서산으로 기울어버린다. 하루가 긴 것 같아도 지는 해는 아쉬워할 사이도 없이 빨리 떨어진다. ‘조금만 더’라는 말에는 끝없는 인간의 욕심이 담겨 있다.

인간의 욕심은 어디까지일까. 톨스토이의 단편소설 《사람에게는 땅이 얼마나 필요한가》를 읽다 보면 욕심의 끝은 어디인지, 그 결말은 어떠한지를 잘 보여준다. 러시아의 평범한 농부 바흠은 땅을 헐값에 판다는 소문을 듣고 땅 주인을 찾아간다. 그런데 땅을 파는 방식이 독특했다. 출발점을 떠나 하루 동안 걸어서 돌아온 땅을 모두 주겠다고 한다. 다만, 해가 지기 전에 출발점으로 돌아오지 못하면 모든 것이 무효가 된다는 조건이었다.

다음 날 일찍 출발점을 떠난 바흠은 조금이라도 더 많은 땅을 차지하고픈 욕심에 목마름과 배고픔도 참으며 온 힘을 다해 달렸다. 반환점을 돌아야 할 시점이지만, 눈앞에 보이는 땅들이 아까워 걸음을 멈출 수가 없었다. 어느덧 해가 기울기 시작했고, 해가 떨어지기 직전 가까스로 출발점에 도착했다. 하지만 탈진한 그는 정신을 잃고 쓰러지면서 세상과 작별을 하고 말았다. 결국 그에게 필요한 땅은 자신의 몸이 묻힐 두 평 남짓한 땅이었다. 바흠이 시간과 재물에 대한 욕심을 조금만 내려놓았다면 더 값진 것을 얻을 수 있지 않았을까.

사람들은 지금 가진 것의 고마움을 모르고 항상 부족하다고만 생각한다. 또한 더 많은 것을 손에 넣고자 바동대며 평생을 보낸다. 적당한 때를 보지 못하고 무심코 지나쳐 버린다. 욕심은 마치 풍선과 같아서 공기를 불어 넣을수록 점점 커지지만, 멈춰야할 때를 놓치면 터지고 만다. 필요 이상의 것을 탐하면 모든 것을 잃을 수도 있다. 앞으로 우리가 사용할 수 있는 시간이 얼마나 남아있을까. 볼 수도 만질 수도 없는 시간은 강물같이 흘러가며 영원을 만든다.

어느덧 산의 정상에 다다랐다. 오르는 내내 단풍은 보이지 않고 싸늘한 바람만 산허리를 휘감아 돈다. 단풍이 있어야할 계절에 단풍이 없다. 흡사 살아온 인생에 붉은 시절보다는 오점만 남은 것 같아 씁쓸하다. 이제 단풍을 보기 힘들다고 생각하며 하산하는 데 고목에 붉게 물든 단풍이 눈에 띈다. 반가운 마음에 가까이 다가갔다. 말라버린 나무들 사이에서 어찌 저리 곱게 물들었을까. 자연의 순리를 거스르지 않고 때에 맞춰 아름답게 익어가는 것이 바로 저 모습이 아닌가 싶었다.

어려운 시절마다 인생에 답을 주는 건 말없이 흘러가는 시간이었다. 절망과 고통을 이겨내는 힘도, 이해하기 어려운 세상일에 대한 원망도, 누군가를 용서하기 위한 사랑의 메시지도 흘러가는 시간 속에 해답이 있었다. 외롭고 아픈 이들에게 줄 수 있는 가장 아름다운 힘은 고통을 함께하는 시간 속에 있다. 슬픔과 후회의 시간은 망각으로 이어지고, 그 속에서 다시 희망의 시간은 소생되었다. 있는 듯 없는 듯 밤에는 보이지 않다가 낮에 잠시 나타났다 사라지는 시간, 그들이 다녀간 자리에서 삶은 깊어진다.

시간에 밀려 가을은 다시 떠나갈 것이다. 단풍은 한 시절 동안 이 세상을 붉게 물들이다가 사라진다. 힘들게 살아온 지난 시간 속의 아픔과 슬픔을 모두 털어버리겠다는 듯이, 잎을 떨구기 전 마지막 붉은 향연을 벌인다. 붉게 물든 단풍은 시간의 아픔이지만, 시간의 희망이다. 오랜 세월을 힘들게 살다 가신 어머니와의 추억에도 단풍이 곱게 물들기를···.

 

<좋은수필 2022년 3월호>

profil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