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아킨 소로야, ‘엄마’, 1895∼1900년.
 침대에 누운 엄마와 아기를 그린 가족화다. 그런데 설정이 기이하다. 침구는 물론이고 벽면까지 모두 흰색에다 아무런 장식이 없고, 이불 위로는 두 사람의 머리만 나와 있다. 게다가 아기는 엄마에게서 떨어져 있다. 갓난아기는 엄마 품에 안기거나 젖을 빠는 모습으로 묘사되는 게 일반적인데 말이다.

호아킨 소로야는 20세기 초, 파블로 피카소가 등장하기 전까지만 해도 생존한 가장 유명한 스페인 화가였다. 1863년 발렌시아에서 태어난 그는 두 살 때 부모님을 콜레라로 잃고 친척집에서 자랐다. 9세 때 그림을 배우기 시작해 로마에 유학한 뒤 파리에서 인상주의를 배웠다. 25세 때 결혼한 후 마드리드에 정착해 세 자녀를 두었는데, 가족은 최고의 모델이 되어 주었다. 이 그림 속 모델 역시 부인 클로티데와 훗날 화가가 된 막내 딸 엘레나다.
 

소로야는 해변 그림으로 큰 명성을 얻었지만, 가장 사랑한 주제는 가족이었다. 고아로 자라 가족의 소중함을 누구보다 잘 알았기에 그에겐 언제나 가족이 먼저였다. 또한 그의 예술적 야망을 실현시켜 준 것도 가족 그림이었다. 그는 ‘모든 관습을 파괴’하는 혁신적인 그림을 열망했지만, 실제로는 대중적 인기와 수입을 보장해 주는 해변 풍경화나 전통 풍속화에 머물러 있었다. 하지만 이 그림은 달랐다. 전통적인 엄마와 아기 이미지를 과감하게 깼다. 만약 아내에게 딸을 안거나 젖을 물리는 포즈를 장시간 취하게 했다면 아름답게 보일지는 몰라도 모델에겐 고역이었을 것이다. 딸은 실제로 곤히 잠든 상태로 보인다. 엄마와 아기는 지금 가장 편안하고 자연스러운 상태에서 그려진 것이다.
 

아이는 잘 때가 가장 예쁘다고 했던가. 잠든 아기를 바라보는 엄마의 표정이 행복해 보인다. 화가는 모녀의 얼굴에 집중하기 위해 주변을 과감하고도 단순하게 처리했고, 노란 붓질을 더해 그림 전체에 따뜻한 온기를 감돌게 했다. 기이한 연출이 아닌 진실된 일상의 장면인 것이다.

 

이은화 미술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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