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백의 미학/김영화

 

 무슨 일이든 빈틈없이 완벽한 사람을 보면 두렵다. 좀 어딘가 빠진 구석이 있고 느슨하고 여유 있는 사람이 편하고 정감이 간다.

 

 나는 철아 들어서 부터 지금까지 해마다 일 년 계획을 세웠다. 매달마다 할 일을 계획했다. 새벽이면 일어나 하루 시간표를 만들어 생활하고 저녁이면 점검한다. 조금도 실수하면 안 되는 직업 탓도 있었겠지만 완벽을 추구하며 살아왔다. 그런 습관이 결혼 전 까지는 다른 사람들에게 불편한 감정을 줄 수 있겠다는 생각을 하지 못했다. 오히려 주위 사람들의 칭찬을 받으며 살아왔다. 결혼 후 그리고 두 아들을 키우면서 이 빈틈없는 생활방식이 가족과 내 자신에게도 스트레스가 되고 있다는 것을 늦게 깨닫게 되었다. 물론 나와 함께 일 한 사람들도 쉽지는 않았으리라 생각한다. 나름 나 자신에게는 엄격하고 다른 사람에게는 관대하려고 노력했지만 함께 일하는 동료로부터 내 옆에 있는 것만으로도 긴장이 됐다는 말을 들었을 때 매우 미안했다.

 

  지난주에는 그림을 배우는 동료들과 함께 놀톤 사이먼 뮤지엄(Norton Simon Museum)에 다녀왔다. 그 곳에는 14세기에서 20세기의 유럽의 예술 작품들과 인디아와 동남아시아의 작품들이 전시 되어있다. 나는 유화 물감으로 공백이 없이 그려진 색채와 원근감, 입체감 있게 그려진 서양화보다는 선과 여백을 살려 그린 동양화를 선호한다. 서양화는 흰색처럼 빈공간이 없이 화지를 색칠로 꽉 채워 그림의 밀도가 높다. 동양화는 여백을 강조한다. 여백은 그저 빈 것이 아니라 기로 꽉 찬 공간이다. 동양화를 감상할 때에 무엇인가를 생각하게 하는 여유로움을 서양화에서는 가질 수 없다. 동양화는 마치 우리 말 속에 쉼이 많아서 일일이 말로 다 하지 않아도 추리하며 이해하게 하는 것 같다. 신위의 묵 죽화와 빈센트 반 고흐의 아이리스 를 비교해 본다. 동양화는 서양화에서 느낄 수 없는 빈공간이 주는 편안함이 내 영혼을 나비처럼 자유롭게 한다.    

 

 MT. JACINTO 로 등산을 다녀왔다. 트램을 타고 8500 feet까지 올라가니 햇볕은 따갑지만 시원한 바람이 불었다. 방학 때라서 인지 어린아이들 에서부터 노인들까지 많은 사람이 하늘 높이 솟은 산림을 즐기고 있었다. 파란 하늘에 새털구름이 춤을 춘다. 제프리 소나무(jeffrey pine) 곁에 머물다 바람에 실려 온 바닐라 향기, 버터 스카치 향기가 발을 멈추게 한다. 수백 년 자란 아름드리 나무들이 쓰러져 있다. 그들은 빽빽한 숲 속에 쓰러져 누워서 여백을 만들어 주고 있다, 그 옆에 새로 자라는 나무들에게 거름이 되어주고 있다. 바람이 놀다 갈 자리를 만들어 준다. 비어진 자리에 온갖 아름다운 야생화들이 있어서 벌, 나비들의 즐거운 놀이터가 되고 있다. 토끼나 사슴 등 산 짐승들이 마음껏 숨바꼭질하고 뛰어다닐 길이 되었다. 숲 속의 나무가 여백이 없으면 숨을 쉴 수 없어서 병이 드는 것처럼 사람도 다른 사람이 함께 할 공간이 없는 사람은 아름다울 수 가 없다.

 

 

  도종환 시인의 여백이란 시가 생각난다.

 

여백이 없는 풍경은 아름답지 않다

비어 있는 곳이 없는 사람은 아름답지 않다

여백을 가장 든든한 배경으로 삼을 줄 모른 사람은

 

 

셸 실버스테인(Shel Silverstein) 이 쓴 잃어버린 조각(My Missing Piece) 동화에서 완벽함의 불편함을 완벽한 동그라미를 통해서 풍자했다. 그리고 한 조각이 떨어져 나가서 빼뚤빼뚤 구르는 동그라미처럼 조금은 부족하게, 느리게, 넘어지며 꽃 냄새도 맡고 노래도 불러가며 함께하는 여백이 있는 삶이 더욱 의미 있고 행복할 수 있음을 얘기했다. 아주 어렸을 때 이 동화를 읽었을 때 보다 노년이 돼서 읽으니 더욱 공감이 된다.

 

 여백이 있어서, 편안함을 주는 동양화와 숲 속의 아름다운 풍경처럼 되고 싶다. 비록 불완전한 동그라미 일지라도 넘어지면서 주위를 돌아볼 수 있는 여유를 누리며 살고 싶다. 나의 노년의 삶에 빈 마음을 만들어 더 많은 정을 담을 수 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