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의 틈새, 대중성에 대하여   

석현수 

 

 

 

들어가면서  

 

수필은 미래 문학이라고 한다. 수필이 문학의 중심에 서야 할 때가 되었다고 말하는 이도 있다. 이것은 모두 수필에 거는 기대가 크다는 다른 표현이다. 수필이 미래 문학이 되거나 중심으로 이동하는 것은 말로써 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이런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서는 수필도 시대 조류에 맞게 변해 가야 하며 시대를 선도하지는 못하더라도 최소한 뒤처지지는 말아야 한다. 수필가의 수적 증가에 반해 질적 저하를 걱정하고 있는 현실과 수필이 독자들에게 외면당하고 있다는 사실을 염두에 두고 수필의 변화를 생각해 보아야 할 것이다. 수필에서의 틈새와 대중성 논리는 최선 안은 아니 될지는 몰라도 차선 안은 될 수 있겠다는 생각에서 틈새Niche와 대중성Kitsch을 논해 보기로 한다.  

 

펼치며  

 

1. 용어의 정의

니치Niche와 키치Kitsch란 무엇인가? 니치는 틈새라는 뜻이다. 경제가 제대로 돌아가지 않을 때 틈새시장을 파고든다고 하며, 이때 니치 비즈니스Niche Business란 용어를 쓴다. 이 글에서는 수필가가 아닌 비전문인들이 수필집이란 이름을 달고 나와 서점가를 강타하고 있는 것을 수필을 쓰는 사람의 입장에서 이들의 작품 활동을 니치 비즈니스로 보았다.

키치Kitsch란 꿩 대신 닭으로 대리 만족을 얻는 것이다. ‘저속한 미술품’ ‘사이비 그림’이라는 의미로 19세기 말 급격한 산업화와 교통 통신의 발달, 대중문화의 탄생 등으로 그림에 대한 소유욕구가 확산한 데서 비롯됐다. 한꺼번에 많은 사람의 욕구를 충족할 수 있는 유명 작품을 가질 수 없으니 진품과 버금가는 모조품들로 욕구를 충족시키는 것이다. 이 글에서는 수필의 대중성으로 의역意譯했다. 

 

2. 수필에서의 니치  

 

가. 현실

틈새로 들어오는 바람은 별나게 차다. 옛사람들은 문구멍으로 황소바람이 분다고 했다. 수필에도 바깥바람이 잔뜩 불어와 가뜩이나 추운 수필가들의 몸을 더욱 움츠리게 한다. 수필가들은 대부분이 자가 출판自家出版 형식으로 책을 낸다. 자가 출판이란 출판 경비에 관한 부담을 지은이가 하는 조건으로 책이 나오는 경우를 말한다. 출판사는 작자의 금전적인 지원이 없으면 스스로 수지타산을 맞추어 내기가 밧줄을 바늘구멍에 꿰는 것만큼 어려운 일이라 말하고 있다.  

 

나. 인식의 차이

이와는 반대로 수필이란 이름으로 서점가에서 호황을 누리고 있는 사람들이 있으니 이들은 다름 아닌 비문학인 또는 타 장르의 유명작가가 상재上梓하는 수필집이다. 이들의 인기는 글자체가 훌륭하기도 하지만, 그보다는 지은이의 유명세 때문에도 한몫을 더한다. 이런 유의 책은 수없이 많아 굳이 예를 들 필요도 없다. 유명 종교인들의 글이 그러하고 이름 있는 시인이나 소설가의 수상록이 그러하다. 그러나 수필 쪽에서 바라보는 인식은 전혀 딴판이다. 혹자는 이들이 수필을 쓸 줄 아는 사람이 아니라 단지 유명한 대중작가일 따름이라고 평가절하를 한다. 분명한 것은 아무리 수필가들이 혹평해도 독자들은 수필가 쪽이 아닌 타 장르의 유명작가들에게 관심이 쏠려 있다.     

 

다. 이들의 글도 수필이다.

수필은 반드시 수필가에 의해서만 써져야 하는가? 이들의 글은 수필이 되지 못하는 엉뚱한 것들이어서 그러한가? 애써 구분을 하려는 것은 무리수만 둘 뿐이다. 수필이란 시각에서만 매달리려는 것은 자칫 아전인수我田引水 격인 억지가 될 수가 있다. 베스트셀러 반열에 오른 이들의 글은 수필이란 잣대로 재도 어느 것 하나 수필이 못 될 아무런 이유가 없으며 문장력도 기존의 수필가 글보다 못지않다. 다만, 다른 점이 있다면 등단이라는 관문을 통하지 않고 글을 쓰고 있으며 틈새시장을 공략하여 호황을 누리고 있다는 것뿐이다. 모두가 진솔한 자신의 체험을 이야기하고 있으며 수필을 통해 세상을 보려고 애를 쓴 흔적이 역력歷歷하다. 그들은 나름대로 수필을 썼고, 수필로서 독자들과 승부수를 걸었고, 그리고 수필이란 글로 흥행에 성공하였다.   

 

라. 인정해 주는 여유가 필요하다.

이런 상황에서도 이들의 글을 수필이란 족보에 들 수 없다고 매도하며 우리들의 글만 수필의 법통을 지킨다고 자위하고 있어야 할까? 독자가 많지 않아 자가 출판을 하고 있으면서 배고픈 양반 행세를 하는 느낌이지 않은가?

서양에는 시인도 소설가도 수필가도 등단이란 관문이 없다. 칼럼을 쓰면 칼럼니스트요, 수필을 쓰면 에세이스트며, 시를 쓰면 시인이다. 수필 영역 밖에서 수필로 성공하고 있는 이들을 수필가로 부르지 못할 이유가 없다. 서양 기준으로 한다면 이들도 수필을 쓰고 있는 사람이니 수필가로 불러도 좋을 것이다.

한동안 법정의 『무소유』는 하늘 높은 줄 모르게 값이 올라 귀한 책이 되지 않았던가. 법정을 수필가로 불러준다고 해서 수필의 체면이 구겨질 것도 아니며, 그분 또한 생전에 손사래 칠 일이 아니었을 것임을 미루어 짐작해 본다. 박완서 작가가 그러하였을 것이며 박경리가 또한 그러하였으리라. 분명한 것은 수필이란 위상이 한층 더 높아지지 않았을까 싶다. 비전문 베스트셀러 수필 작가도, 수필계도 다 같이 이기는 윈윈win win 방법이란 이들에게도 수필가라는 칭호를 달아주는 일이다.   

 

마. 헤드헌터는 비즈니스에서만 있는 것이 아니다.

수필이 중심문학으로 들어가는 길은 문학의 틈새시장을 뚫어야 할 때이다. 문틈으로 들어오는 바람이 차다고 싫어만 할 것이 아니라 아예 문을 열고 나서서 틈새 바람을 맞이하는 것이다. 유독 추위를 타고 있는 수필계의 불황을 타개하는 방법으로 훌륭한 비전문 수필인도 숫제 수필 본영으로 맞아들이는 화해의 방법을 제안하고 싶다. 헤드헌터를 통해 전문가를 영입하는 회사가 많다. 춥다고 아우성치기보다는 원군援軍을 얻어 수필 영역을 넓혀 나갔으면 하는 바람이다.  

 

3. 수필에서의 키치Kitsch 

 

가. 현실

수필은 자기 고백적 문학이다. 일인칭 문학인 수필에서 글의 품위는 작자의 품위와 일치함을 생각할 때 수필은 자기 체험적이고 진실성이 있어야 한다. 수필은 다른 장르와는 달리 인생을 관조하는 문학으로 고상한 글쓰기라는 것을 자위하고 있다.

이런 추세가 지속할수록 수필은 점점 더 독자로부터 외면당하고, 수필가에 의한 수필가를 위한 글이 되어 갈 것이며, 문학의 중심으로의 이동은커녕 스스로 입지조차도 잃어 갈 우려가 다분하다. 종국에는 읽는 이도 없는 소외된 글들이 되어 선반에나 올려놓을 장식용 책으로 전락할까 두렵다.   

 

나. 키치의 필요성 대두

촌스럽고 싸구려 티 나는 물건들이 젊은 층의 취향과 맞아떨어져 패션뿐만 아니라 문화 전반에 걸쳐 복고바람이 불고 있다. 젊은이들은 고상하고 우아한 것을 찾기보다는 오히려 편하고 몸에 맞는 촌티 나는 패션을 더 선호한다. 이것이 키치적 사고이다.

수필은 교양 있고 품위 있는 사람들이 쓰는 글이라는 고정관념을 과감히 깨뜨리고 독자 쪽으로 다가서야 한다. 키치는 ‘싸다’라는 언어의 뉘앙스에 ‘무거워 보이지 않고 가벼워 보이는 패션’이라는 의미가 포함되어 있다. 움베르토 에코Umberto Eco는 “쉽게 소화할 수 있는 예술의 대용품인 키치는 어렵게 이해하려고 애쓰기보다는 별로 힘들이지 않고 미의 가치 체계를 즐길 수 있기를 바라는 게으른 청중에게는 이상적인 음식이다.”라는 말을 했다. 새로운 것, 신기한 것, 감각적인 것이 키치의 주된 의미가 되겠다. 따라서 수필문학에서의 키치란 수필에 재미를 가미하여 대중성을 높이자는 것이다.    

 

다. 키치Kitsch 가능성 

 

① 허구성

진실성이 있는 체험의 글이란 전제 때문에 제약을 많이 받았다. 그러나 지금의 추세는 문학성을 높이려는 한 방편으로 문학적 상상이란 이름으로 이를 받아들이고 있어 글의 전개가 한층 흥미로워질 것이다.

 

② 자기 독백적인 일인칭 문학

삼인칭 화자를 끌어들이는 화법을 많이 사용하는 추세에 있다. 작가 자신의 신체 부위나 영혼 또는 독특한 생각이나 추상 명사 등을 화자로 내세워 작자와 삼인칭 화자가 대화를 이어나가는 형태로서 독자들에게 재미와 의미를 더해 주고 있다. 단 제삼자인 타인을 지칭하는 삼인칭이 아님을 유념해야겠다.

 

③ 수필의 길이

15매 정도로 한정하는 규제도 유명무실해지고 있다. 혹자는 단短 수필은 이미 실험이 실패로 끝난 것이라며 버려야 한다는 주장을 하는 이도 있지만, 많은 사람이 짧은 수필을 즐겨 쓴다. 극히 짧은 초미니 아포리즘 형태의 것은 가히 수필의 혁명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독자들의 시선이 긴 치마보다는 짧은 미니스커트에 가 있음을 작가가 인식한 것이다. 수필을 길이로 재단裁斷하려는 것은 점점 무의미해지고 있다.

 

④ 소리로 감상하는 수필

수필은 오직 책을 통해서만 작자와 소통하는 글이라고 해서 낭송 불가론이 있었다. 그러나 근간에는 부쩍 수필이 많이 낭송 되어 청취자들로부터 호평을 받고 있다. 호응이 좋다면 굳이 낭송이나 방송을 마다할 이유가 없을 것 같다.

 

⑤ 수필도 시대의 변화를 따라야 한다.

시대를 따라가는 것을 넘어 시대를 앞서 가고 선도하는 문학이 되어야 한다. 접목이니 퓨전이니 융합이니 하며 시와 소설과 만나기도 하고 그림과 어울리기도 한다. 심지어는 마당극과의 접목을 시도하려는 마당수필이란 용어까지 선보인다.

 

⑥ 수필에서 정답은 없다.

내 이론은 맞고 네 이론은 틀린다고 할 수 있는 처지가 아니다. 저마다 이론이 다른 상황에서 누구의 것을 전범典範으로 삼는다는 것이 가능하겠는가? 될 수 있으면 많은 사람이 말하는 보편타당한 것들만 따라주어도 좋을 것이다. 경직된 규제는 오히려 부작용만 낳을 뿐이다.  

 

위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문학에서의 키치는 모조품을 만들자거나 수필의 질을 저하하자는 뜻이 전혀 아니다. 더욱 흥미롭고 감명 깊은 읽을거리를 제공하여 문학의 가치를 높이자는데 목적이 있다. 독자가 작가보다 훨씬 앞서 가고 있어 글쓴이에게 흥미를 느끼지 못한다면 수필 고객인 독자의 수준에 맞추기 위해 문턱을 내려주어야 한다. 내린다는 말은 천박淺薄하라는 말이 아니며 기존의 틀을 넘어 다양한 모습을 보여주자는 것이다. 보통사람의 고만고만한 살아가는 이야기에 질려 하는 수필 독자들을 향해 이제는 수필 쓰는 사람들이 독자에게 화답을 보내야 할 차례라고 본다.   

 

나가면서   

 

유명작가들은 여기餘技로 에세이집 한 권쯤 내 보지 않는 분이 없고, 내놓은 것이 어느 것 하나 히트를 하지 않는 것이 없다. 수필의 영역을 넓히는 한 방법으로 이들에게도 수필가란 문패를 달아주어 수필 통 속으로 묶어 주는 방법을 제안한다. 이들을 문틈으로 불어오는 불청객으로 여기기보다는 오히려 이들과 더불어 수필 분야의 상승기류를 기대해 보는 것이 어떨까 싶다.

아울러 수필의 대중화를 위해 수필에서 키치를 주장한다. 글의 문턱이 너무 높아 독자가 흥미를 잃어가고 있다는 가정 하에 수필의 문턱을 내려주자는 주장이다. 수필의 본령本領을 그르치지 않는 범위 내에서 글 속에 대중성을 담아내야 독자의 흥미를 유발할 수 있다고 필자는 보았다.

글을 쓰는 사람의 마음가짐도 변해야 하고 글 이론도 시대의 흐름에 맞게 변화해야 하겠다. 빗장을 거는 맹목적인 수필 옹호는 쇄국정책에 다름 아닐 것이다.  

 

 

참고

움베르토 에코Umberto Eco; (1932년~ ) 이탈리아의 기호학자, 미학자, 언어학자, 철학자, 소설가이다. 현재 볼로냐 대학의 기호학 교수이다. 저서《장미의 이름》, 《푸코의 진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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