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님이 돌아가신 후 아버님 집 응접실 있던 서화 3점을 가져왔다. 하나에는 증조할아버지의 시가 있고 다른 2점에는 할아버지의 시가 있다.

 

서울서 작은 아버님이 붓으로 시를 넣고 그림을 그려서 갖고 오셔서 여기서 표구를 해서 갖고 있었다.

 

증조할아버지는 1880년에 태어나서 1934년에 돌아가셨다. 아마도 이 시는 말년에 쓰신 것 같다.

 

        何跡細聽 風雪點

        누군가 발걸음 소리에 자세히 들어보니 바람에 눈보라가 치는 소리요

 

어느 겨울 저녁. 조용한 정각에 홀로 앉아서 호롱불 밑에 책을 읽으시며 문득 친구분이 생각나서 고개를 드시니 발걸음 소리가 멀리서 들리는 듯 보니 함박눈이 바람에 흩날리며 떨어지는 소리였네.

 

        誰來微觀 月登欄

        누군가 오는 기척에 가만히 내다보니 달이 난간 위로 오르고 있네

 

하늘이 맑게 갠 어느 가을밤. 자정이 넘어 사방이 고요할 때 누가 다가오고 있는 느낌이 들어 방문을 열고 마루에 나가보니 하얀 보름달이 처마 위로 올라오고 있었네.

 

몇 년 뒤 증조할아버님은 갑자기 돌아가시고 두 아드님은 기우는 가세 속에 남은 가족들을 돌봐야 했다.  모두가 힘든 일제 강점기.

 

어느 하루해가 저무는 저녁 무렵 할아버님은 집안의 뜰을 보며 이렇게 쓰셨다.

 

        庭草無人綠

        정원의 풀잎은 사람조차 없는데 푸르며

 

        夕陽送客紅

        석양은 손님을 보내고 붉구나!

 

증조할아버님이 돌아가신 3년 후 할아버님도 병환으로 돌아가셨다.

 

살아계시던 어느 날의 그분들 마음을 남기신 시를 통해서 만나 뵙게 된다.

profil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