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문학의 철학적 물음, 비트겐슈타인과 뒤샹의 샘 /  한상렬


  철학자 비트겐슈타인은 조그마한 시골 마을의 초등학교 선생을 지냈다. 자신은 이미 모든 철학의 문제를 해결했다고 생각했다. 그런 어느 날 그가 산짐승들에게 둘러싸여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게 목격되었다. 주변 사람들은 그를 신비한 인물로 보았다. 초야에 묻혀있던 그가 어느 날 돌연 철학계로 귀혼했다. 무언가 아직 미해결의 문제가 남아 있었던가.

 

  그는 초기의 견해를 포기했을까? 그 중 하나는 그의 철학이 가진 묘한 역설 때문이었을 것이다. 자연언어의 결함을 제거하려던 그의 작업이 끝내는 이에 의존할 수밖에 없었던 한계 때문이었다. 그는 자신의 철학을 사다리에 비유하며, 일단 지붕 위에 올라간 다음에는 그 사다리를 치워버려야 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실상은 사다리를 치우기 이전에 벌어졌다. 결함투성이의 사다리를 타고서도 그는 지붕 위로 올라간 것이었다.

 

   최초 그가 구상한 이상언어는 세계의 거울이었다. 그 속에서 말과 사물이 1대1 대응관계를 맺고 있었다. 하지만 그의 후기철학에서는 말과 사물 사이에 이런 거울과도 같은 반영관계가 단절된다.

 가족관계를 예로 들어보자. 부자父子가 눈이 닮았고, 모자母子가 입이 닮았다고 할 경우, 이들 세 사람의 공통적인 특징은 없으나 유사성이 존재한다. 이 교차되는 공통성을 근거로 하여 한 가족임을 타자들은 인지한다. 언어의 사용도 이와 다르지 않다.

 

   일상언어에서 보듯 사물들의 공통된 특징은 없으나, 사물들 사이에 엇갈리는 공통성이 있어, 이를 근거로 하여 '하나'의 낱말로 지칭하게 된다. 미국의 미학자 웨이츠M,Weitz는 이를 미학에 대입하여 예술의 본질을 "예술은 모방이다.", "형식이다.", "이념의 감각적 현현이다.", "현실의 반영이다." 등의 답을 내렸다. 하지만 이는 예술의 여러 장르가 그렇듯 공통된 특징이 있는 게 아니다. 단지 유사성이 있을 뿐이다. 이를 '본질주의의 오류'라고 부른다.

  

  예술의 본질이 없다면, 이의 정의를 내리기는 불가할 것이다. 따라서 개념 정의를 통해 닫기 보다는 열린 개념이 필요할 것이다. 이제, 마르셀 뒤샹 Warcel Duchamp(1887~1968)쪽으로 시선을 돌려보자. 그는 주로 미국에서 활동하였고 다다이스트로서의 활동 무대는 유럽, 특히 취리히와 파리였다. 다다이스트들은 이른바 문명을 조롱하고 전통을 파괴하였으며, 선망하던 예술을​ 포함한 모든 가치를 전복하려 하였다. 예술이란 '아무 것도 아닌 것'이라 하여, '애들 장난감'쯤으로 만들고자 하였다. 이는 일종의 '반예술적(다다이즘)'인 것으로 뒤샹의 작품들은 이를 잘 보여준다. 1920년에 발표된 뒤샹의 작품 <L,H,O,O,Q>은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모나리자에 콧수염을 그려 넣고, 거기에 이런 작품명을 붙여놓았다. 이 글자는 프랑스어 발음에 따라 읽으면 '엘 아쇼 오 퀴'로 읽힌다. 이는 "Elle a chaud au cul"이란 문장과 발음이 동일하다. 즉 "그녀의 엉덩이가 뜨겁다."이다. 독일의 화가 슈비터스가 "예술가가 뱉어 놓은 모든 것은 예술이다." 라고 했듯, 1917년 뒤샹의 '변기'가 이런 맥락에서 파악된다. 이른바 뒤샹의 '샘'이 그것이다.

   

  미국 뉴욕에서 열린 전시회였다. 남자 화장실에서 보는 변기가 공장에서 나온 상태 그대로 놓여 있었다. 작가는 뒤샹이요, 작품명은 <샘>이었다. 전시회에 참가한 사람들은 실색했다. 대단한 작품이거니 기대했던 이들은 실망했다. 공장에서 생산한 변기가 왜 놓였을까? 작품에 들인 작가의 수고라면 변기 왼편에 'R, Mutt'라고 사인 대신에 변기제조회사의 이름을 써넣은 것뿐이었다. 그렇건만 왜 작품명이 <샘>이어야 했을까.

    

  이 작품은 우리들에게 몇 가지 예술에 대한 근본적 질문을 던지고 있다. 도대체 이것도 예술이란 말인가? 예술작품이라면 동일한 재료로, 같은 공장에서, 같은 날 생산된 변기 중에서 유독 이 변기만 '예술 작품'이 되는가?

   

  그 답은 물리적 속성이 아닌 제도에서 찾아야 한다. 미국의 분석미학자인 조지 디키George Dickle는 이를 '예술계'라는 제도에서 찾았다. 즉 예술계가 예술작품으로서 이에 대한 자격을 부여했다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예술계가 자격을 부여하자 변기까지도 작품이 되었다는 말이겠다. 사실 애처 이 작품에 대한 예술적 평가는 거부되었다. 그러나 합의에 의해 일단 전시실 한켠에 두기로 결정했는데 이는 아마도 뒤샹이라는 작가에 대한 예우였을 것이다. 이렇게 예술계의 자격 부여는 세상의 모든 게 예술작품이 될 수 있다는 가능성을 열어주었다.​

  

   그렇다면 뒤샹이 창조한 예술은 무엇일까? 전설한 바와 같이 '변기'는 물리적 대상으로서 예술작품이 아니다. <샘>을 만드는 것은 변기 공장의 노동자들이다. 뒤샹은 이를 통해 코드code 즉 하나의 변기를 예술작품으로 보는 '사회적 관습'을 창조한 것이었다.

 

   당시에는 변기에 대한 사회적 관습을 부여하는 하나의 코드가 없었기 때문에, 전시  즉시 이 작품은 '커튼'이 드리워 있었다. 그러나 현재는 이를 작품으로 인정하고 있다. 여기서 우리는 뒤샹이 그의 작품을 전시회에 출품한 것은 다름 아닌 작가의 유희적 본능, 장난이었다는 데 있다. 그는 유희적 장난을 통해 하나의 코드를 창조한 것이었다.

 

   변기까지도 예술작품이 될 수 있다는 그런 코드를 창조함으로써 그만의 독특한 세계를 구축한 것이었다. 사물의 오브제화, 무엇이든 명명을 통해 예술이 될 수 있다는 이런 발상은 어쩌면 발칙한 상상은 아닐까 싶다.

   

  로만 야콥슨Roman Jakobson은 모스크바 스타니슬파프스키 극단에 입단할 때, 배우는 '오늘 저녁에'라는 두 마디의 대사로 40가지의 상황을 연출하는 시험을 본다고 말한 바 있다. 이는 대사가 어떤 상황에서 발화하느냐에 따라 그 상황에 따라 동일한 어휘도 얼마든 의미가 달라질 수 있다는 말이다.

 이처럼 다양한 언어 상황 속에서 어휘의 쓰임에 달라지듯 사회적 관습에 따라 무엇이든 예술작품이 될 수 있음을 비트겐슈타인이나 뒤샹은 보여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