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 비극을 읽는 이유/ 김헌


''에 두 뿔이 돋아나 ''이 되듯 얼었던 땅과 마른 가지에 싹과 꽃을 피워내며 봄이 찾아온다. 놀랍다. 죽음을 이겨내듯 만물이 소생하는 부활의 계절, . 이맘때쯤 먼 옛날 아테네 사람들은 축제를 벌였다.

막 농사를 시작할 판에 디오니소스신()을 기린 것이다. 디오니소스, 일명 바쿠스는 포도주의 신이다. 하여 그의 은총에 흠뻑 젖어 실컷 놀고 나면 일할 힘이 새롭게 솟아날 테니, 그 축제 정말 그럴 듯하다. 하지만 디오니소스는 술의 신이기 이전에 술을 빚어낼 포도 재배와 추수의 신이었다. 농사를 시작하며 풍년의 기원을 담아 제사를 지낼 대상으로는 안성맞춤이었다.


디오니소스의 아버지는 제우스였다. 제우스는 세멜레라는 처녀를 사랑했고, 한 아이가 잉태되었다. 남편의 외도에 분노한 헤라는 세멜레를 꼬드겨 제우스의 원래 모습을 보게 했고, 세멜레는 그의 번개·광채·열기 때문에 타죽고 말았다.


그 순간에 제우스는 세멜레의 태 안에 있던 아이를 발견했고 재빨리 꺼내 자기 허벅지에 넣었다. 죽음의 고비를 넘긴 아이는 얼마 후 제우스의 몸에서 신으로 거듭 태어났다. 그가 바로 디오니소스였는데, 곡절 많은 탄생으로 그는 부활의 계절인 봄에 가장 잘 어울리는 신이 되었다.


디오니소스에게 바치는 제물은 뿔 난 숫염소였다. 정력, 다산, 건강의 상징이었기 때문이다. 제물은 풍년을 기원하며 신에게 바치는 선물이었다. 하지만 축복을 위해서는 죄로 더럽혀진 자신을 깨끗이 씻어내는 정화와 회개의 의식이 필요했는데, 그때 제물은 죄인을 대신해서 죽는 대속물(代贖物)이었다.

신전에 모인 사람들은 불에 타 재가 되는 제물을 바라보면서 자신의 죽음을 체험했고, 나아가 정화와 부활의 기쁨을 누렸다. 사제가 숫염소를 바칠 때, 제단을 둘러선 합창단이 노래를 불렀다. 이 제의적 합창을 '트라고디아'라고 했는데, '숫염소'(트라고스)'노래'(오데)라는 뜻이며 영어 'tragedy'의 어원이다. 처음에 트라고디아는 합창이었지만 여기에 배우가 추가되면서 점차 연극처럼 되었다. 그래서 우리는 '비극'이라고 옮긴다.


비극의 극장은 단순히 극장이 아니라 디오니소스의 신전이요 예배당이었고, 비극은 제의(祭儀)의 진화된 형식이었다. 무대 위의 주인공은 제단 위에 바쳐진 제물과도 같았다. 합창단의 지휘자는 제의를 집행하듯 무대 위의 사건을 이끌면서 주인공을 파멸시킨다.


예컨대 오이디푸스가 무대의 중앙에 서는 순간 그는 제단의 제물과도 같다. 그는 테베의 왕인데, 테베는 지금 역병에 오염되어 수많은 사람이 죽어간다. 도시가 더럽혀진 것은 전왕 라이오스의 살인자가 도시에 숨어 있기 때문이었고, 그를 찾아내 징벌하고 추방해야 도시가 정화되고 구원된다.


오이디푸스는 그 일을 해내겠다고 약속한다. 그러나 사건이 전개될수록 오이디푸스는 자신이 살인범이라는 진실에 직면한다. 게다가 곁에 있는 아내 이오카스테는 어머니였고, 자신이 죽인 라이오스는 아버지였다. 모든 것이 밝혀진 순간 이오카스테는 자살하고 오이디푸스는 자신의 눈을 찌른다. 운명에 대한 절망이지만, 동시에 도시의 정화와 구원을 위한 자기 징벌이며 시민과의 약속을 실행한 것이다. 비극은 파국적 종말로 끝나지만 거기서 멈추지 않는다.


오이디푸스를 통해 자신을 비춰 본 관객의 마음에 정화와 부활의 기쁨이 함께 차오르면서 비극은 고유한 절정에 이른다. 이 절정의 사건을 제의적 '카타르시스'라 불렀다.


여기에 그리스 비극의 진정한 의미가 있다. 그것은 단지 공포와 연민을 불러일으키며 눈물을 자아내는 슬픈 연극이 아니다. 관객이 무대 주인공과 하나가 되어 뜻하지 않는 운명의 한계에 부딪혀 실수하고 무너지는 체험에서 죽음을 겪고, 마침내 카타르시스의 환희를 만끽하는 데에서 비극은 완성된다.


그래서 날마다 그리스 비극처럼 살 필요가 있다. 고된 하루 일과를 마치고 몸을 씻고 잠자리에 들기 전 거칠었던 하루의 삶을 돌아보면서 후회와 실수, 악한 본성의 앙금을 씻어내고 깨끗한 마음으로 내일을 살겠다는 카타르시스의 습관을 원한다면 말이다.


그것은 날마다 봄처럼 싱싱하고 아름답게 살아갈 힘을 준다. 개인에게는 물론 공동체 전체에도 마찬가지다. 그 옛날 따뜻한 봄날 디오니소스극장에 모여 진지한 태도로 비극을 관람하던 아테네 시민들처럼 나도 오늘 밤에는 그리스 비극을 읽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