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나무 / 장미숙

 

 

쥐고 있던 긴 칼을 놓았다. 이렇게 끝나는가, 믿기지 않았다. 주위를 둘러보았다. 내 손때가 묻은 물건들이 눈에 들어왔다. 다시는 잡아보지 못할 도구들, 닳고 닳아 반질반질해진 칼자루에 눈이 오래 머물렀다. 시간이 날 때마다 윤이 나도록 닦았던 냉장고며 도마를 쓸어보았다.

보통 가정에서는 보기 힘든, 탁자처럼 길고 큰 도마는 자잘한 칼자국이 몸의 반을 덮었다. 견고한 플라스틱에 새로 줄이 빼곡하다. 새삼 그것들이 가진 무게가 묵직하게 가슴을 눌렀다.

여러 가지 모양의 케이스며 도마 안쪽에 즐비한 식빵도 다시는 만져볼 수 없을 터이다. 정리를 시작했다. 눈을 감고도 찾을 수 있는 재료, 그것들과도 이제는 작별이다. 냉장고에 가득 든 물건을 확인했다. 다시 만질 수 없지만 흐트러진 채로 두고 오긴 싫었다. 근무시간이 연장되더라도 반듯하고 깔끔하게 제자리를 찾아주고 싶었다.

일회용 장갑을 벗고 손을 씻었다. 고단함과 지루함을 달래준 컵과 텀블러를 가방에 담았다. 퇴근 시간 오 분 전, 마지막으로 바닥을 내려다보았다. 그동안 내가 찍었던 발자국을 헤아렸다. 10년도 넘는 시간, 내 몸무게를 감당했던 1.5평 공간도 이제는 기억 속으로 물러앉게 되리라. 원하는 시기에 그만두려 했는데 뜻대로 되지 않은 게 조금 아쉬웠다.

십이 년 전, 매장문을 열고 들어왔을 때의 상황이 떠올랐다. 빵집에서 무슨 일을 하게 될지 전혀 상상하지 못했다. 긴장된 표정으로 앞에 앉은 사람의 말소리에 귀를 곤두세웠던 그때, 연세가 지긋한 여자분이 자신을 사장이라며 소개했다. 나이가 많은데도 받아주는 게 고마워 성실함을 보여주겠다고 각오했다. 건물주와 사실혼 관계에 있던 점주는 아줌마가 더 좋다며 웃었다. 그렇게 시작된 프랜차이즈 빵집에서의 근무는 십이 년을 채웠다.

건물주였던 점주와는 오 년간 일했다. 점주는 내게 매장을 맡기다시피 했다. 굳이 자신들이 일하지 않아도 되는 여건이라 그들은 인색하지 않았다. 팔고 남은 빵은 손님들에게도 주고 아르바이트생들에게도 가져가라고 했다. 하지만 여점주가 유방암을 앓게 되면서 건물주는 가게를 내놓았다. 당시 나도 그만두어야 했다. 인수한 사람들은 삼사십대의 남매였는데 기존의 직원들이 필요치 않다고 해서였다.

나는 어쩔 수 없이 다른 매장을 알아보았고 출근을 결정했는데 남매 점주가 갑자기 찾았다. 건물주에게 소개받았다며 자신들을 도와달라고 사정했다. 본사 직원들이 철수하자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며 여동생은 눈물을 글썽였다. 나는 가기로 되어있던 곳에 사정을 말하고 그들과 함께하게 되었다.

남매 점주와 일하는 동안은 기온에 예민해졌다. 그들은 전기료 때문에 난방이나 냉방에 인색했다. 춥고 더운 날들이 이어졌다. 그나마 그들의 어머니가 좋은 분이었기에 자리를 굳건히 지켰다. 하지만 그들은 장사에 환멸을 느낀 것 같았고 장시간 서서 하는 일을 힘들어했다. 결국, 6년 만에 가게를 정리했다. 두 번째 들어올 사람은 젊은 아이 엄마라고 했다. 조건만 맞으면 계속 있어도 된다는 연락을 받았고 나는 일하기로 했다.

처음으로 점주를 대면했을 때 마스크로 가린 인상이 몹시 차가웠다. 그녀는 자신이 십 년 가까이 다른 매장에서 직원으로 일했다고 했다. 가게를 인수할 결정을 한 것도 경험이 있어서였다. 그녀는 가게 돌아가는 상황을 잘 알았다. 맨 먼저 한 일은 직원을 대폭 줄여버린 것이었다. 원래 두 사람이 조를 이뤘는데 한 사람이 감당케 했다. 당연히 일이 많아졌다. 내가 하는 일도 마찬가지였다. 전보다 1.5배로 일은 늘었지만, 점주는 그걸 당연시했다.

다행히 몸이 적응했다. 그동안의 경험이 쌓여 어떤 순간, 어떤 환경에서도 할 일을 끝마쳤다. 점주는 나더러 오래 있어 달라고 부탁했다. 그전에도 5년, 6년을 채웠으니 5년 정도는 거뜬히 있을 수 있다고 장담했다.

그러던 일상에 파문이 일기 시작한 건 점주 시댁 식구들이 가게에 나타나면서부터였다. 시어머니, 시아버지, 시누이가 수시로 드나들었다. 그들은 빵을 먹고 음료를 마시고 더러는 머물다 가기도 했다. 그들의 출입이 잦아지는구나 싶었는데 어느 날 시누이가 일하러 나왔다. 그 바람에 내 근무 일수가 줄어들었다. 시누이 자리를 마련해주기 위해서였다. 부당하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불만을 가질 수는 없었다.

점주 말로는 시누이가 일을 배워서 가게를 차릴 거라고 했다. 그럴 수 있겠다 싶었으므로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그러던 어느 날 시누이랑 같이 일하게 되었다. 미묘한 분위기가 흘렀다. 새로 일을 배우는 아르바이트생이 내게 이것저것 물었다. 그럴 때마다 시누이의 눈초리가 사나워졌다. 그녀는 한 달밖에 일하지 않았으므로 어설프기 한이 없었지만, 자신의 올케를 믿어선지 거만하게 행동했다.

급기야는 시누이의 고자질로 점주에게 이상한 문자를 받았다. 일이 끝나기도 전에 받은 문자에 손이 달달 떨렸다. 내가 주인행세를 한다는 둥, 무례한 말들이 쓰여있었다. 그 순간 그만둘 걸 결심했다. 어찌해야 할까. 문자로 통보하고 싶었지만 그건 예의가 아니라는 생각에 다음 날 출근했다.

그리고 그날, 나는 점주로부터 퇴직을 권유받았다. 자신의 시누이가 다니던 학원을 그만두었다고 했다. 가족회의를 통해 이미 결정된 사항이라고 말했을 때야 나를 내보내기 위해 부러 그런 문자를 보냈다는 걸 알게 되었다. 고민할 필요도 없었다.

단지 12년 넘게 드나들었던 곳이기에 장소에 대한 미련이 남았다. 건물주 사장님으로부터 시작된 한결같은 하루가 그렇게 끝나는 게 허무했다. 아기였던 아이들이 커서 중·고등학생이 되는 걸 지켜본 곳이기도 했다. 폐지 할머니의 북두갈고리 같은 손이 눈앞에 아른거렸다. 오랜 단골들에게 그만둔다는 말조차 하지 못하고 가는 게 조금 아쉬웠다.

가게 문을 닫고 나갈 때 빵 냄새는 의식 밑으로 깊게 가라앉았다. 뭔지 모를 후련함이 온몸을 감쌌다. 매장 안에서 느껴보지 못한 홀가분함이었다. 온갖 달콤한 냄새나 사람보다, 가을이면 풍성함으로 마음을 채워주던 가게 앞 은행나무가 그리울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하며 나는 그 골목을 빠르게 벗어났다.

(『용인문학』. 2024년 하반기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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