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의 짜장면 /강 표 성

 

 

 

첫 외식은 짜장면이었다면소재지에 있는 중국집은 차부 옆에 있었는데 멀리서 보아도 붉은 등이 눈길을 끌었다아버지는 오촌 당숙네와 고모할머니까지 중국집으로 초대하셨다첫아들을 얻은 기념으로 거하게 한턱 쏘신 것이다돌잔치 삼아 청요리를 시켜 먹고 사진관에 가서 사진도 한방 박았다그날의 사진 속에는 아들을 안은 부모님의 얼굴이 보름달처럼 환했다.

 

두 번째 외식도 짜장면이었다이번에는 읍내로 나갔다육십 년대 후반인 당시로서는 외식 자체가 사치였고 큰맘 먹어야 가능한 일이었다아버지는 대처로 이사 가기 전에 고향에서의 추억을 만들어주고 싶으셨던 것일까가족들을 읍내 중화요리집으로 데리고 가셨다내친김에 영화도 한 편 보기로 했다그런데 극장 시간이 빠듯하여 부랴부랴 중국집 문을 열고 나와야 했다영화관 의자에 앉아서도 마음은 꿩밭에 가 있었다.

 

먹다 만 짜장면 가락이 눈앞에서 오락가락했다암갈색 소스에 하얀 면발을 척척 비벼서 한 입 베어 물면 말이 필요 없다입안에 착 감기는 단맛과 쫄깃한 면발의 조화는 밀고 당기는 힘이 있다라면처럼 경망스럽게 후루룩 마시는 것은 짜장면에 대한 예의가 아니다그것은 입뿐만 아니라 눈과 코로도 먹는 음식이다비로드처럼 윤기 흐르는 면발은 보는 것만으로도 침이 고이고달큰하고 살짝 떫은 소스맛은 코가 알아서 먹는다그다음은 입안을 부드럽게 채우는 굵은 면발씹을수록 마음도 두둑해진다조금 질린다 싶어 단무지를 한 조각 베어 물면 느끼하던 입맛이 순간에 가라앉는다걸죽한 야채들 속에서 도톰한 돼지고기라도 씹히면 금상첨화다.

 

대식구인 우리 가족은 짜장면 하나면 족했다졸업식이거나 우등상을 탄 날은 형제들도 계를 탄 날이다식구 수보다 적은 수에 곱빼기를 추가하면 우리는 부자가 된 듯했다굳이 상을 차리지 않아도 된다방바닥에 신문지를 깔고 둘레둘레 모여앉으면 된다빠른 젓가락질로 검게 빛나는 입술들을 보면서 깔깔거렸다내기라도 하는 양 마지막 소스까지 달달 긁어먹는 우리를 아버지는 깊은 눈매로 한참 바라보시곤 했다.

 

결혼 이후내가 사는 소도시에 물난리가 났다갑자기 둑이 터져서 어린 남매를 데리고 인근 여관방으로 대피할 수밖에 없었다남편도 직장을 복구하는 일에 동원되었고 통신과 도로망도 단절되어 완전 고립상태였다배를 쫄쫄 굶다가 다음 날 점심시간이 기울어서야 짜장면 한 그릇을 시켰다억지로 삼키는 시늉을 하는데내 눈치만 보던 아이가 벌떡 일어섰다하부지다겨우 말을 배우던 아이의 즐거운 비명이었다정말 아버지가 서 계셨다교통사고로 한쪽 다리에 깁스를 한 채, TV 뉴스를 보자마자 달려오신 것이다택시기사에게 갑절의 경비를 대면서 위험하고 낯선 물 폭탄 도시로 들어오실 때 아버지 심정이 어떠셨을까.

 

돌이켜 보니 그 이후로 아버지와 함께 짜장면을 먹은 기억이 별로 없다어린 시절 아버지가 사주신 게 세상에서 제일 맛있었다고갑자기 찾아가서 팔짱을 끼고 중국집 문을 열었어야 하는데탕수육 그릇이라도 살며시 앞으로 내밀었어야 하는데내 사는 일에 바빠 혼자서 팽이처럼 맴돌았다숙제를 하듯 내 앞의 일에만 정신 팔려있을 때아버지의 식탁이 점점 비어가는 것을 눈치채지 못했다.

 

왜 예전처럼 외출하지 않으시냐고 여쭤본 적이 있는데이젠 만날 친구가 없다고 쓸쓸하게 대답하시던 아버지였다명절 때만 되면 설탕 포대를 자전거 뒤에 싣고 오던 대학 동기상처한 후로 기원에서 줄바둑을 두던 전직 교장선생님은 아버지의 짜장면 친구분들이다그 어른들이 세상을 뜨고 나자 아버지의 무릎은 한꺼번에 꺾이다시피 했다짜장면 한 그릇 시켜놓고 세상일을 나누고 삶의 애환을 나누던 작은 행복도 사라진 것이다.

 

지난 연초에 친정에 갔는데 현관 밖에 짜장면 그릇이 놓여 있었다그것도 면발이 퉁퉁 불어 있었다긴 병으로 바깥출입도 삼가던 어른에게 웬 밀가루 음식이냐고 잔소리 아닌 잔소리를 했다나의 이런 수선에 결정적인 한 마디가 들려왔다내가 먹고 싶어 그랬다아버지의 단호한 한 마디였다딱 자른 그 말씀 속에는 무언의 말 줄임표가 숨어있는 듯했다.

 

검은 면발 위로 아버지 얼굴이 겹쳤다저리 불어 터진 게 어찌 음식뿐일까 싶었다아버지는 잊혀가는 자신을 들어다 보고 계셨을 것이다시간 바깥으로 밀려난 노년의 고적함을 견뎌내며 누군가의 발자국 소리를 그리워하셨으리라학창 시절의 친구들과 젊은 날의 가족들과유명을 달리한 노년의 지기들을 생각하며 먼 시간 속으로 여행을 떠나셨을 터이다고장 난 테이프처럼 늘어진 시간들을 되감으며 스스로에게 짜장면을 대접하신 어른겨우 눈과 코로 한 그릇을 비우셨나 보다.

 

얼마 지나지 않아 아버지는 세상을 뜨셨다퉁퉁 불은 그것이 마지막이 되고 말았다내게 있어 세상에서 가장 맛있는 짜장면도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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