많이 생각하는 날 / 정은아
그날은 비가 왔다. 장마철이라 어두침침하고 습했다. 잠든 아이들의 새근거리는 숨소리와 창문을 세차게 두드리던 빗소리. 안과 밖이 극명한 대비를 이뤄도, 내겐 나른한 오후일 뿐이었다. 거실 매트 위에 누워 아이의 분유를 주문하려고 온라인 쇼핑몰을 두리번댔다. 고요를 깨트리며 전화가 울렸다. 전화로 들려온 말이 비현실적이라 거짓 같았다. 어찌할지 몰라서, 거실을 어지럽게 돌아다니며 ‘말도 안 돼’만 중얼거렸다. 심장박동은 제멋대로 날뛰었고, 비바람은 끊이지 않고 몰아쳤다. 그때 나는 ‘아내’의 역할을 잃었고, 아이들의 유일무이한 부모가 되었다. 매년 그날이 다가오면, 태엽을 거꾸로 감듯이 그날 오후 4시로 되돌아갔다. 그러면, 빈 가슴으로 살아가는 내 모습이 또렷이 보였다. 달력에 새겨놓지 않아도, 몸이 그날을 기억하는지 몸살을 앓는다.
나는 성격상 특정한 날을 크게 의미를 두지 않고 살았었다. 남편과 사별 후에는 어떤 기념일도, 어떤 명절도 무심하게 지나가는 게 쉽지 않았다. 어떤 날의 기억은 상처를 헤집어 놓는다. 결혼 후 나의 첫 생일날, 남편은 장미꽃 한 송이를 내게 내밀었다.
“은아야, 장미꽃 한 송이라 미안해. 매년 생일마다 한 송이씩 늘어날 거야. 100송이가 될 때까지 잘 살자.”
약속은 고작 5송이에서 깨졌다. 만약 사고가 없었다면, 장미꽃은 계속 늘어났을까. 누군가를 챙길 일도 챙김을 받을 일도 없는 사람은, 반복되는 평일보다 이름이 붙여진 특정한 날이 더 외로운 법이다. 요즘은 생일날이 돌아오면, ‘삶이 1년 더 갱신되었습니다’라고 알려주는 느낌이 든다. 축하의 의미도 마치 생존의 기쁨을 나누려는 작은 의식 같다. 그래서 죽은 사람은 생일을 잘 챙기지 않는 것일까. 갱신될 삶이 존재하지 않으니까.
죽어야만 챙기는 날이 있다. 옛날부터 ‘제삿날’, ‘기일’, ‘회기’라는 이름으로 불리며, 고인이 된 사람의 가족이나 가까운 사람이 챙겼다. 자기 자신은 챙길 수 없으니, 남겨진 이들에게 의무처럼 주어지는 날이다. 365일 중 하루. 그래도 남겨진 사람에게는 다른 날의 24시간보다 가슴이 뻐근하다. 남편의 죽음이 갑작스러운 사고사라서 뇌 어딘가에 선명한 흔적을 남긴 걸까. 사랑했던 이의 죽음을 기억하는 일은 아픔을 되새김하게 만든다. 나는 남편의 ‘제삿날’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 남편과 좋았던 날들도 많은데, 굳이 사고가 난 날을 고통스럽게 다시 생각해야만 할까. 남편이 이 세상에서 없어진 날 이후로, 기일이 돌아올 때면 하루가 빨리 흘러가길 염원했다.
처음 몇 년간, ‘제사’라는 이름으로 의식을 올렸다. 어머니는 사위를 위해 나물이며 떡, 생선 등의 제사음식을 바리바리 싸서 오셨고, 아버지는 붓글씨로 제문을 써서 오셨다. 부모님에게 제사는 정성스럽게 차린 음식을, 돌아가신 조상에게 예를 갖추어 대접하는 일이다. 그래야만 가정과 후손이 평안해질 수 있는 전통 의식이다.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떠난 사위에게 지내는 제사는, 딸과 손녀를 잘 돌봐주길 바라는 마음과 사위를 향한 안타까움을 전하는 마음이다. 어머니는, 제사가 많은 집안에서 평생을 살아왔으면서도 사위 제사까지 챙기려고 했다. 제삿날 며칠 전부터 제사장을 보고, 새벽부터 음식 재료를 다듬고 삶았다. 어머니가 준비한 음식을, 아버지는 홍동백서, 조율이시를 따져가며 상을 차렸고 제례에 맞춰 의식을 치렀다. 두 분이 애쓰는 것을 보고 있으면, 제사의 여정이 무거운 짐처럼 여겨졌다. 그냥 엎드려 울고만 싶었다. 기일을 다르게 보낼 수는 없을까.
또다시 그날이 돌아왔다.
“얘들아, 오늘은 아빠를 많이 생각하는 날이야.”
A4 한 장을 꺼내 우리만의 제문을 만들었다. 우선, 백지를 3등분으로 접었다. 백지 가운데 부분은 내 자리다. 남편에게 쓰고 싶은 말을 차분히 적었다. 롤링 페이퍼처럼 아이들에게 종이를 돌렸다. 종이 왼쪽엔 큰아이가 아빠에게 들려주고 싶은 말을, 오른쪽엔 작은 아이가 적고 싶은 것을 썼다. 아이들은 할 말이 없다고 하면서도, 뭔가를 적었다. 편지 같은 제문이 완성됐다. 음식은 남편이 좋아했거나 우리가 저녁으로 먹을 음식들을 주로 차려 놓았다. 밥, 소고기뭇국, 치킨, 수박, 바나나. 때로는 보쌈, 떡, 두부 부침, 호박전, 피자…. 그때그때 다르다. 잊지 않고 꼭 챙기는 것은, 그가 좋아하던 캔맥주 한 캔. 핸드폰에 담긴 남편의 사진을 찾아 상 위에 세우고, 간단하게 절을 올렸다. 나는 남편을, 아이들은 아빠를 생각했다. 원래 식성이 좋았던 사람이라, 맛있게 잘 먹고 있을 거다. 편지를 읽고, 왼쪽 뺨에 보조개를 지으며 웃고 있지 않을까. 햇빛이 유난히 쨍한 날, ‘많이 생각하는 날’은 잔잔하게 지나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