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 / 최민자 

사내가 사정없이 내 몸을 주무른다. 어깨며 목이며 등줄기 요소요소에 숨어 있는 경혈을 침을 놓듯 콕콕 잘도 찾아 누른다. 절묘하게 파고드는 찌릿찌릿한 통각. 아악, 소리를 속으로 삼킨다.

"아프세요?"

"갠차나요?"

사내가 짧은 우리말로 묻는다. 곤장을 맞는 자세로 엎드려 있는 나는 그의 얼굴을 볼 수가 없다. 땅딸하고 촌스러웠던가. 어깨가 벌어지고 우락부락했던가. 상관없다. 몸에서 몸으로 전해오는 에너지, 살아 있음의 고苦와 쾌快를 동시에 통감케 하는 손기술만이 그와 나의 접점일 뿐이니. 젊은 날 축첩을 많이 한 남정네가 말년에는 음식 잘하는 여인 하나만 데리고 산다 하듯 여기저기 쑤시고 아픈 데가 많은 나는 구석구석 시원하게 주물러주는 손맛 매운 사내가 제일 반갑다.

"돌아누세요."

그의 손이 발부리에 가 있다. 미끈거리는 오일을 잔뜩 발라 발등을 훑고 발바닥을 문지른다. 발가락 사이사이에 손가락을 넣어 힘주어 잡아 빼기도 한다. 낯모르는 이방 남자에게 민감한 신체 부위를 무방비로 내맡겨두고도 이리 태평하고 편안할 수 있다니. 일생 어떤 남자가 내 발가락을 이리 조물락거렸던가.

몸과 몸이 닿아도 사사로운 감정이 일지 않는 것, 돈이 개입되어 있어서이다. 사람과 사람의 접촉면을 만들어내는 돈, 돈은 피부다. 인간이 구축한 어떤 신뢰 시스템보다 공고한 보편성을 획득한 돈은 사람과 사람을 이어 붙이기도 하고 갈라 세우기도 한다. 전도체인 동시에 절연체인 셈이랄까. 복잡해진 세상을 돈 탓으로 돌리는 사람도 많지만 돈이 없는 세상은 더더욱 복잡했을지 모른다.

김이 알맞추 오르는 타월로 사내가 정성스럽게 발가락 사이를 닦는다. 눈을 감고 있어도 사내의 손놀림은 선연하게 감지된다. 어떤 사내는 돈을 주고 여자를 만지고 어떤 사내는 돈을 받고 여자를 만진다. 돈을 주고 만지는 남자는 돈을 받고 만지는 남자만큼 여자의 구석구석을 섬세하게 만지진 못할 것이다. 돈을 받고 몸을 내주는 여자는 정확히 돈만큼만 제 몸뚱이를 허락할 것이므로. 하긴 이 남자도 정확히 돈만큼만, 돈으로 환산한 시간과 에너지만큼만 나에게 나누어줄 것이다. 다림질이 필요한 옷가지나 수선을 요하는 전자제품같이, 그의 앞에 널브러져 있는 나는 몇 끼 밥과 맞바꿀 고마운 일거리에 다름 아닐 터이므로.

"끝났습니다."

칭얼거리는 근육과 투덜거리는 관절들을 골고루 다스리던 사내가 어느 사이 나를 일으켜 앉힌다. 양팔을 잡아당겨 늘여 빼고 비트는가 싶더니 합장하듯 마주 붙인 손바닥으로 뒷덜미를 쾅쾅쾅, 경쾌하게 두드린다. 내 주머니의 돈이 그의 주머니로 무사하게 옮겨 앉았다는 신호다. 돈의 위력과 비애 사이에서 삶은 그렇게 물고 물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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