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름하고 / 이정림

 

창가에 누워 하늘을 바라본다. 어린 시절에 그토록 많이 보았던 구름을 어린 날이 까마득히 밀려나 있는 지금 다시 보고 있는 것이다.

어린 시절엔 장난감이 없어서였을까. 아니면 살갑게 놀 동무가 없어서였을까. 구름을 바라보고 있으면 하나도 심심하지가 않았다. 하늘에는 날아가는 새들도 없고, 길 잃어 헤매는 연(鳶)도 없고, 오직 넒은 하늘에 한가득 구름밖에 없었다. 파란 하늘이 갑자기 어두워지며 먹구름이 드리우면 어머니는 곧 비가 올 것 같다고 장독 뚜껑을 덮으셨다.

누가 만날 그렇게 멋진 그림을 그렸을까. 하늘 마당에 깨끗이 비질을 한 것 같은 새털구름, 털이 뭉실뭉실 뭉쳐 있는 것 같은 양떼구름, 하얀 목화송이 같은, 아니 커다란 솜사탕이 하늘에 둥둥 떠 있는 것 같은 뭉게구름….

언젠가 택시를 타고 양화대교를 건너는데, 청명한 하늘을 온통 뒤덮을 듯이 뭉게구름이 떠 있었다. 다리 위라서 그랬는지, 구름이 손에 잡힐 듯 가깝게 느껴지고, 머리 위로 곧 내려앉을 것만 같은 그 모습은 실로 장관이었다.

“아, 뭉게구름이 너무 아름답네요.”

나도 모르게 탄사가 새어 나왔다. 이 아름다운 풍광 속에 내가 있다는 사실이 더없이 행복했던 것이다. 그런데 갑자기 정적이 느껴졌다. 운전기사의 침묵이었다. 순간 머쓱해졌다. 그래서 얼른 구름밭에서 헤어 나왔다. 기사가 무슨 말로 젊지 않은 손님의 치기 어린 정서에 호응을 할 수 있었겠는가.

“삐뽀 삐뽀!” 아, 저 기분 나쁜 소리가 느닷없이 행복했던 기억들을 밀어내 버린다. 비를 몰고 오는 먹장구름같이 또 한 사람의 환자가 이곳 병원으로 오고 있는 모양이다. 어디가 아픈 사람일까. 몸이 아프다는 사실을 인정해야 하는 마음이 더 아플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그 아픔에 점차 익숙해지면 외로움이 찾아오겠지. 그러나 외로움이 절망보다 낫다는 생각이 들게 되면 나처럼 구름하고 놀게 될 것이다.

하얀 벽이 마음을 더 스산하게 만드는 병실에서 구름은 내 유일한 친구다. 그러나 조종사들에게는 친구가 아닌 모양이다. “아름다운 여성과 아름다운 구름은 조심해야 한다.”는 말이 있는 걸 보면. 뭉게구름은 지상에서는 아름답지만 거기에는 상상을 초월할 정도의 격렬한 난기류가 있어 그 속으로 들어가서는 안 된다고 한다.

조종사인 생텍쥐페리도 구름과 얼마나 사투를 벌였던가. 그가 처음으로 우편기를 조종하러 나가는 날 상사는 이렇게 말했다. “구름바다 위를 나침반만 가지고 비행하는 것도 재미있지. 아주 운치가 있어. 그러나 기억해 두시오. 그 구름바다 밑은 바로 저승이라는 것을.”

구름과 뇌우를 온몸으로 맞서면서 항로를 개척하고 우편낭을 나르던 그가 구름 속으로 내비치는 한 줄기 빛을 보았을 때 얼마나 안도를 했던가. 그 한 줄기 빛을 따라 영원 속으로 사라져 버린 생텍쥐페리가 오늘따라 못내 그립다. 그는 아마 까탈스러운 장미 한 송이를 책임지기 위해 자기 별로 돌아간 어린 왕자를 찾아갔을지도 모른다. 어린 왕자의 별은 아주 작을 텐데, 둘이서 어찌 지내실까? 생텍쥐페리가 그러지 않았던가, 밤하늘을 가만히 쳐다보고 있으면 우리가 웃는 소리가 들릴 것이라고. 그 소리를 들으면 당신은 슬며시 미소를 짓게 될 것이라고.

장미에는 가시가 있고 과일 속에는 벌레가 들어 있는 것처럼, 모든 것에는 양면성이 있다. 내가 일에 열중했을 때는 나 자신은 뒤에 숨어 보이지 않았다. 그러나 뒷전에 있던 내 자신이 떠밀리어 전열에 나서고 보니, 사막 한가운데에서 무릎을 꺾은 낙타 한 마리가 거기에 있었다. 내가 그런 모습일 것이라고는 한 번도 상상해 본 적이 없다. 내가 그동안 모래 바람 같은 세파를 헤치면서 꿋꿋이 나아갈 수 있었던 것은 책임이고 열정이었는데, 그 열정의 양면성이 오늘날 나를 이렇게 후회스럽게 할 줄은 몰랐다.

나는 이제 모든 것을 내려놓았다. 일도 이름도…. 일도 힘에 겨웠고, 이름도 무거웠는데, 왜 그 속에서 헤어나지를 못했을까. 장자(莊子)는 이름이란 빈[空] 것, 실체 자신이 아니라고 했다. 실체가 주인이라면 이름은 손님 같은 것이라 하지 않았던가. 그렇다고 이름에 연연했던 것은 아니다. 세월이 이름에 얹혀 나를 허상으로 만들었을 뿐이다.

다 잃고 돌아온 나를 구름은 옛 친구처럼 맞이해 주었다. 구름을 바라보고 있으면 통증도 외로움도 잊을 수 있다. 그러나 구름은 한 곳에 머무르지 않는다. 뜬구름…. 그래서 덧없다 하지만, 한 곳에 머무르지 않기에 자유롭지 않은가.

나도 구름처럼 자유롭고 싶다. 그러나 너무 무겁다. 너무 많다. 몸에 걸쳐 있는 것들이, 그 숱한 인연들이. “구름에 달 가듯이 가는 나그네”처럼 그렇게 가볍게, 그렇게 표표히 가고 싶은데….

무원 선생은 하늘을 우주의 여백이라 했다. 나는 지금 그 여백 속에 하나의 점처럼 존재하고 있다. 여백이 너무 커서 허허롭지만, 채울 수 없는 결핍이 오히려 나를 풍요롭게 한다.

누가 또 들어오는 모양이다. 앰뷸런스 소리에 놀라 구름이 달아난다. 나도 따라 올라간다. 아픔과 절망을 허물처럼 벗어버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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