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ign In

today:
200
yesterday:
1,638
Total:
1,712,789


좋은 글

Articles 127
2023.01.27 12:58:08 (*.182.188.125)
195

 

 

 
 
            서녘 하늘에 별이 돋는다. 마음이 잔잔해야 보이는 초저녁별, 실눈을 뜨고 별 속에 아는 얼굴이 있나 찾아본다.

지난겨울에는 눈이 자주 많이 내렸다. 눈이 내릴 때마다 우리나라 문화계의 큰 별들이 떨어졌다. 미당 선생이 떠나시고 얼마 후, 온종일 눈이 내리던 날 정채봉 선생이 눈 나라로 가셨다. 이어 운보 선생도 떠나셨다. 그 뒤로는 겨우내 하늘이 낮게 내려앉으면 또 누가 떠나실라 겁이 났다.

 이윽고 건너다본 커다란 눈, 그 웃음 뒤에 끝 모를 서러움이 배어나는 것 같아서 가슴이 서늘했다. 어찌 보면 늘 배고픈 아이 같고 또 달리는 지구에 내려온 어린 왕자 같던 사람.

 

선생의 글을 처음 대한 것은 현대문학지에 연재했던 《초승달과 밤》다. 성장소설이라 하고 성인동화라고도 한 글은 신선한 표현과 등장인물들의 착함에 다음 호가 기다려질 정도로 흡인력이 있었다. 그 후로는 선생의 작품집을 구하는 대로 읽으면서 감동적인 글 뒤에 감동적인 삶이 있었다는 것을 알았다.

나는 오늘 저녁을 농막에서 보내며 별들을 만나려고 한다. 선생께서는 별이 되셨는지도 모르니까. 왜냐하면 해질녘을 좋아하는 스님을 찾아갔다가 찬물이나 한 바가지 떠 마시라는 말씀에 찬물을 받쳐 든 바가지에 별 하나가 돋았더라나.

그래서 천천히 버들잎인 양 별을 불면서 물을 마셨다는 것이다. 별을 불면서 물을 마시는 사람이 세상에 또 있을까. 그 뒤로 간혹 마음이 허할 때면 가슴에 별 하나가 떠오른다는 것이다.

선생께서 민방위 야간 훈련을 나간 날, “불을 끄시오, 불을 끄시오.”외치고 다니다 보니 순식간에 하늘의 별들이 또록또록해졌다. 그때 “별님들도 불을 끄시오.”하고서 혼자 웃었다는 분, 하늘 마음이 아니고는 볼 수도 느낄 수도 없는 글을 읽으며 내가 선생을 두고 어린왕자를 생각하는 연유가 이런 데 있는 것이 아닌가 싶다.

짧은 만남이지만 글에서 만난 사람과 현실에서 만난 사람이 한결같은 느낌을 주어서 더 인상 깊었던 것 같다. 만남 뒤에는 행복했고 용기가 솟았으며 여운이 오래 갔다.

사람들이 자신의 뒷모습을 볼 수 없기에 신이 타인이라는 거울을 우리에게 주고 서로 비춰보며 좋게 살라 하신지도 모른다.

선생의 글 속에 자신을 두고 “비겁자, 나태한, 이중성, 가련한.”이라고 표현한 구절이 나온다. 이러한 쓰라린 어둔 밤을 거쳐 하늘 마음을 찾은 것은 아닐지. 누가 나에게 당신의 뒷모습은 어떠하냐고 묻는다면 가만히 고개를 숙일 것이다. 그러나 아름다운 뒷모습은 아름다운 앞모습이 만들어낸다는 것에 희망을 걸고 기죽지는 않을 것이다.

이쪽의 죽음 순간은 저쪽에 막 태어나는 순간이라고 한 선생은 하얀 세상에 다시 태어나 그토록 그리워한 엄마랑 함께 오늘 밤 내가 보는 별을 바라보고 계실지도 모를 일.

하늘 마음으로 동화를 쓰고 동화 속으로 사라져간 뒷모습의 향기에 젖어 캄캄한 세상을 향해 나도 “별님들도 불을 켜세요.” 하고 웃어본다.

starry_night2_Van Gogh.jpg

 

No.
Subject
Author
Notice 계절 변화 알리는 알람, '24절기'의 모든 것
정조앤
Jan 31, 2022 421
Notice 논어 - 공자의 가르침
LenaLee
Jan 29, 2022 1008
그대 뒷모습 - 반숙자 file
박진희
Jan 27, 2023 195
84 통곡의 철학 - 임헌영
박진희
Jan 18, 2023 126
83 설니홍조 (雪泥鴻爪) / 옮긴 글
박진희
Jan 10, 2023 130
82 수인번호 257번 / 칡뫼 김구
정조앤
Jan 10, 2023 99
81 업어준다는 것 - 박서영
LenaLee
Aug 21, 2022 259
80 그대 앞에 봄이 있다 – 김종해
LenaLee
Aug 14, 2022 137
79 할머니의 열매 / 오신혜 - 제12회 달서 책사랑 전국주부수필공모전 대상
정조앤
Jul 10, 2022 335
78 마음의 마중물 / 박희주 - 제4회 책사랑 전국주부수필공모전 대상
정조앤
Jul 10, 2022 132
77 만灣, 만滿, 만晩 / 윤정인 - 제12회 천강문학상 우수상
정조앤
Jul 10, 2022 115
76 아귀 / 윤정인 - 2021년 평사리문학 대상
정조앤
Jul 10, 2022 99
75 두꺼운 북소리 / 박남주 - 2022 매일 시니어문학상 수상작
정조앤
Jul 10, 2022 110
74 김영란법에 대한 소고/ 이경구
이현숙
Apr 16, 2022 85
73 읽고 쓰기의 쓸모를 생각하다 / 조은(사회학자, 동국대 명예교수)
정조앤
Apr 13, 2022 5665
72 나는 도리깨질에 길들여진 멍석이요 / 이영미
정조앤
Jan 25, 2022 309
71 제1회 우하 박문하 문학상 최우수상
정조앤
Jan 03, 2022 392
70 [유튜브]좋은 글 잘 쓰는 요령 - 한국산문 이재무 시인 특강
정조앤
Nov 18, 2021 129
69 한국산문 10월 TV
정조앤
Oct 28, 2021 83
68 한국산문 9월 TV
정조앤
Sep 19, 2021 8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