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을 닮은 남자와 니체 / 문윤정

 

 

11월을 닮은 남자를 기억하고 있다. 11월을 닮은 남자는 얼굴선이 가늘고 어딘가 아픈 듯 창백했다. 인디언들이 11월을 가리켜 ‘기러기 날아가는 달’, ‘모두 다 사라진 것은 아닌 달’, ‘꽁꽁 어는 달’, ‘많이 가난해지는 달’ 등의 이름을 붙였듯이 그 남자에게도 이런 고독하고 외롭고 쓸쓸한 느낌의 이름이 어울리는 사람이었다. 담배연기 가득한 지하의 ‘왕궁다방’에서 친구들과 함께 11월을 닮은 남자가 하는 이야기에 귀를 기울였다.

친구의 친척 오빠쯤으로 소개받은 우리는 심약하게 생긴 남자가 하는 말에도 끌렸지만, 검은색 긴 코트며, 도통 우리에게 관심이 없는 듯 초탈한 표정에 이끌렸다. 마음속으로 ‘이 남자는 여기에 나왔으면 우리에게 최대한의 예의를 지켜야지!’ 이런 불평을 했던 것 같다. 이런저런 이야기 중에 11월을 닮은 남자는 ‘니체의 광기’를 이야기하면서 ‘니체의 죽음’을 심각하게 말했다. 니체 같은 심오한 작가를 읽을 생각도 하지 않은 우리들에겐 자존심 상하는 대화였다.

겉멋이 잔뜩 들어 철학책을 옆에 끼고 다녔으나 머리 아픈 철학책들은 읽기 싫었고, 달콤한 연애소설에 더 끌렸다. 지적 허영심에 사로잡힌 우리는 까뮈와 카잔차키스를 이야기했지만 핵심을 찔렀다기보다는 그 언저리를 맴돌았다. 11월의 남자는 우리들이 지적 허영심에 들뜬 별 볼 일 없는 여자들이라는 것을 눈치챘을 것이다.

11월을 닮은 남자는 니체의 죽음에 대해 이야기했다. ‘니체는 아침에 하숙집에서 나오다가 광장에서 한 마부가 말을 때리는 장면을 보고서는 외마디 비명을 지르며 광장을 가로질러가 말의 목을 껴안았다. 니체는 곧 정신을 잃고 고통받는 말을 껴안은 채 땅바닥에 쓰러졌다. 이후로 니체는 예전의 그가 아니었으며, 죽을 때까지 정신병을 앓았다’는 이런 요지였다. 그는 마치 니체의 죽음이 자신의 탓이라도 되는 듯 무척 괴로운 표정을 지었다. 나도 그때 덩달아 슬픈 표정을 지었을 것이다. 지식으로 무장한 11월을 닮은 남자가 무척 멋져보였으니까.

11월을 닮은 남자와 언젠가는 다시 만날 수 있으리라는 기대감으로 헤어졌다. 11월을 닮은 남자가 ‘니체’사상에 경도되어 있기에 나도 ‘니체’를 알고 싶었다. 서점으로 달려가서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를 한 권 샀다. 첫 장부터 머리가 아팠다. 페르시아인으로 조로아스터교를 창시한 조로아스터에게서 왜 초인사상을 차용했는지부터 이해되지 않았다. 언젠가 만난다면 나의 지식을 내보이고 싶었는데, 그런 앙큼한 계획이 무산되는 순간이다. 11월을 닮은 남자에게 인정받고 싶었던 그 마음을 포기해야만 했다.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를 이해할 수 없어 이번에는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 책을 샀다. 잠언형식으로 되어 있어 내가 필요한 부분만 펼쳐서 읽곤 했다. 하지만 다시는 11월을 닮은 남자와 마주치는 일도 없었고 만날 수도 없었다. 11월을 닮은 남자는 그렇게 니체를 남겨놓은 채 다시는 만날 수 없는 사람이 되었다.

내 서가에는 누렇게 변색된 니체의 책 두 권이 아직도 꽂혀 있다. 결혼하고 이사를 하면서도 이 두 권의 책을 끌고 다녔다. 11월을 닮은 남자 때문이 아니라 ‘니체’의 책을 함부로 해서는 안 된다는 나만의 금기사항 때문이다. 니체는 나에게 있어 지적 권력자이다.

니체의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를 읽으면서 다시금 11월을 닮은 남자를 떠올렸다. 지금도 어디선가 심약한 얼굴로 니체를 이야기하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설핏 스쳐 지나갔다.

니체가 로마에서 ‘루 살로메’를 만난 지 몇 일만에 사랑에 빠져 청혼을 하게 되는 이야기는 유명하다. 서른일곱 살의 니체는 장미꽃이 만발한 오월의 어느 날 루체른공원에서 스물한 살의 살로메에게 청혼했지만 거절당한다. 살로메의 일기장엔 “우리는 니체가 새로운 종교의 예언자로 등장하는 것을 보게 될 것이고, 그는 많은 영웅을 제자로 삼는 사람이 될 것이다”고 썼다. 살로메는 니체의 지적인 분위기에 매력을 느꼈지만 결혼이라는 구속이 싫었던 것이다.

니체는 살로메와 헤어진 후 크게 상처를 받았다. 니체는 다른 여자에게서는 품어 본 적이 없는 열렬한 애정을 루 살로메에게 바쳤다는 것과 그녀가 조용히 떠나가 버렸다는 것이, 그를 미치게 만들었다.

니체는 아픔과 고독의 고통을 창작으로 돌렸다. 그렇게 해서 태어난 것이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이다.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라는 작품을 열흘 만에 완성했다고 하니 그의 광기와 열정이 이룩한 성과물이다.

11월을 닮은 남자가 들려주었던 니체의 죽음에 대해 다시 생각한다. 말을 끌어안고 쓰러진 후 니체는 정신적으로 완전히 붕괴되었고, 그는 정신적으로 붕괴된 채 11년을 더 살다가 생을 마쳤다. 니체는 11년 동안 사람들이 이해할 수 없는 세계에 머물면서 살아있되 죽은 것과 다름없는 삶을 살았다.

그러고 보니 11월을 닮은 남자는 또 다른 니체라는 생각이 든다. 그는 니체를 흠모하다 니체가 짊어지고 있던 고뇌를 이어받았을 지도 모른다. 니체의 삶은 ‘생의 의미’를 찾아 헤매는 항해의 과정이었다. 그가 찾아 헤맨 것은 돈과 권력도 아니요, 명예도 아니었다. 그는 진리를 찾아 평생을 항해했다. 11월을 닮은 남자도 어디선가 삶의 여행자가 되어 방랑하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그러고 보니 우리는 삶의 여행자요 방랑자가 아닌가. 모든 것이 없어진 것은 아니지만 황량하게만 느껴지는 11월엔 니체와 사랑에 빠져도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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