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풍기 / 목성균 

처서가 지났다. 그늘에서는 더 이상 바람이 필요 없으니 올여름도 다 갔다.

언제부터인지 선풍기가 거실 구석으로 밀려나서 한가하게 쉬고 있다. 소임을 잃은 선풍기의 모습이 너무 초라해 보인다. 바람개비를 감싸고 있는 안전망이 군데군데 도장이 벗겨져 녹이 슬었고, 눈처럼 하얗던 플라스틱 몸체는 빛이 바래서 누렇다. 막내 진국이를 낳고 산 선풍기다. 진국이 나이 스물일곱 살이니깐 선풍기 나이도 스물일곱 살이다. 기계의 나이치곤 고령이다. 선풍기가 우리 집 형편을 돕느라고 무병장수해 주는 것 같아서 고마운 생각이 든다.

진국이는 복지경에 태어났다. 산모가 세 이레를 지났는데도 원기를 못 찾고 땀을 줄줄 흘리면서 헐떡거렸다. 갓난 것 이마에도 땀띠가 송골송골했다. 우리는 달동네 서향 문간방에 세 들어 살았다. 그 해 유별나게 더웠다. 나는 큰맘 먹고 선풍기를 하나 사 왔다.

“무슨 선풍기예요, 더우면 부채질하면 되지.”

그렇게 말하던 아내의 감격에 떨던 목소리가 지금도 기억에 생생하다. 그때 달동네 사람들에게는 선풍기도 큰 문명의 이기였다. 아내가 갓난 것 발치에다 선풍기를 미풍으로 틀어 놓았다. 새근새근 고른 숨소리를 내면서 잠든 갓난것이 시원해서인지 배냇짓을 하는 건지 생긋생긋 웃었다. 아내와 내가 마주보고 웃었다. 과감한 투자의 부가가치가 얼마나 큰 것이었던가!

선풍기는 제가 차지한 거실의 구석자리조차 염치없다는 듯한 모습으로 초라하게 움츠리고 있다. 며칠 전까지만 해도 선풍기는 거실 복판에 떳떳한 모습으로 앉아 있었다. 식구들은 모두 선풍기의 위치를 존중했다. 삼복지경, 선풍기는 온종일 바람개비를 돌렸다. 모터가 들어 있는 머리에 손을 대보면 뜨거워서 손을 데일 지경이었다. 시원한 바람을 생산해서 우리 식구들의 더위를 식혀 주느라고 정작 제 몸은 발열(發熱)이 사경(死境)을 헤매고 있었다.

그래도 식구들은 번차례로 선풍기 앞을 차지하고 모터 회전 속력을 강풍으로 높여 놓고도 ‘‘좀 더 시원하게 불어 봐. 이놈에 고물 선풍기야’ 하는 표정이었다. 선풍기의 나이대접은 전혀 하지 않았다. 삼복 지경이면 잠시도 제 더위를 식혀 볼 새 없이 식구들의 땀을 들여 주던 선풍기의 그 많은 세월을 생각지 않는 것은 사람의 도리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특히 진국이는 그러면 안 된다.

선풍기는 손님 접대도 했다. 아내는 땀을 흘리며 내방한 손님을 선풍기 앞으로 모시고 계면쩍은 얼굴로 “선풍기가 많이 낡았어요. 그래도 지금 새로 나오는 선풍기보다 소리도 조용하고 바람도 시원해요. 옛날 물건이 더 좋아요” 했다. 나는 아내가 낡은 선풍기를 손님 앞에 내놓고 구차스러운 말을 하는 게 살림의 주변머리 없음을 변명하는 것 같아서 싫었다. 차라리 아무 말도 하지 말든지, 선풍기 나이가 얼만데 늙은이 건강 믿을 수 없다는 말처럼 말끝에 멈추기라도 하면 어쩌려고 그런 말을 하나 싶어서 맘이 조마조마했다. 그러나 선풍기는 주인 맘을 무참하게 하는 일은 저지르지 않았다.

이제 아내는 내게 “선풍기를 치워요” 할 것이다. 그 말은 선풍기의 먼지를 닦고 기름칠을 한 후 비닐 자루에 담아서 다락 구석에 잘 모셔 두라는 말인데, 선풍기에 대한 그런 조처는 예우일까, 내년에 또 써먹기 위한 욕심일까. 여하튼 우리 집의 낡은 선풍기는 명퇴도 못하고 명을 다할 것 같다. 어느 날 바람개비가 회전을 멈춘다면 아내는 선풍기가 돌아가게 해 보라고 닦달을 할 것이다. 나는 기계에 대해서는 숙맥이다. 선풍기를 동네 전기제품 가게에 가지고 가서 고쳐 와야 한다. 생각만 해도 끔찍한 일이다. 가게 주인은 측은한 눈으로 나를 쳐다보며 ‘쯧쯧, 주변머리하고는, 선풍기를 새로 하나 사시지.’ 속으로 그럴 것 같아서다. 그래서 선풍기가 고장 나지 않기를 바란다.

내 마음을 아는지 아직까지 선풍기는 한번도 고장이 나지 않았다. 선풍기가 고장나면 나는 선풍기를 고치러 들고 가서 가게에 주고 새로 사 오려고 맘먹고 있다. 가게 주인은 선풍기를 해체해서 장기 이식하듯 고장 난 다른 선풍기를 수리하는 데 쓸 게 분명하다. 우리 선풍기는 그렇게 최후를 마치게 해주는 것이 도리다. 늙을 대로 늙어가며 우리 식구들의 더위를 덜어 주던 물건이다. 거리 모퉁이 냄새나는 잡쓰레기 옆에 버려져서 사람들에게 구차한 모습을 보인다면 충직했던 늙은 머슴의 주검에 수의도 안 입혀서 묻는 것과 같이 몰염치한 짓이다.

올 초여름 아내가 시장을 다녀오더니 땀을 흘리며 숨넘어가는 사람처럼 선풍기를 찾았다.

“선풍기를 새로 살까?”

“멀쩡한 선풍기를 두고 왜 새로 사요.”

나는 다락에서 선풍기를 내려다가 비닐을 벗기고 단자에 코드를 꼽으며 속으로 ‘안 돌아가도 탓하지 않을 테니 내 맘대로 해.’ 그렇게 말했다. 선풍기는 퇴출당할까 봐 전전긍긍하던 늙은 공원처럼 건재를 과시하듯 바람개비를 힘차게 돌렸다.

아내는 선풍기가 돌아가는 것을 보자 만족한 표정이었다. 마치 27년 전 처음 선풍기를 진국이가 자는 발치에다 틀어 놓고 좋아하던 표정과 흡사했다.

아내가 선풍기를 죽지도 못하게 부려먹는 것은 소중한 추억의 반추인지 모른다. 더위가 힘겹게 산모에게 미풍을 선사해 주던 선풍기가 기계 같지 않은 모양이다. 아내는 선풍기가 안 돌아가도 닦고 기름을 쳐서 다락에 보관하라고 닦달할지 모른다. 그것은 선풍기를 사올 줄 안 내 마음을 잘 간수하려는 마음이라고. 나는 지레 짐작한다.

사는 게 즐겁다는 생각이 들게 하는 선풍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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