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또개 / 이상수

 

 

담벼락 아래 어린 감이 여럿 떨어져 있다. 감꽃과 함께 풀 섶이며 길바닥에도 나뒹군다. 지난밤 세차게 불어대던 바람에 그만 버티지 못하고 낙과하고 말았다. 생을 다 살아내지 못한 감또개를 보면 가슴 한쪽이 아릿해진다.

고샅길을 돌아가면 큰 기와집 대문 앞에 오래된 감나무가 있었다. 봄이면 감꽃이 팝콘처럼 매달려 눈이 부셨다. 여름이면 넓은 그늘에 동네 어른들이 자리 깔고 더위를 피했다. 가을엔 주렁주렁 홍시가 달리고 새들이 몰려들어 나누어 먹었다. 곁을 지날 때마다 어린 나는 감나무를 가진 집이 부러웠다.

간밤에 바람이 불거나 비가 다녀간 이튿날 아침은 평소보다 일찍 눈이 떠졌다. 아버지가 외양간 아궁이에서 쇠죽을 끓이고 있었다. 나는 아직 눈썹 밑에 붙어있는 잠을 비비며 동생과 함께 감나무를 향해 달렸다. 혹 누가 먼저 와서 주워가면 빈손으로 돌아와야 하기 때문이었다. 숨을 헐떡이며 도착하면 대개 우리가 제일 먼저였다.

운이 좋은 날은 양손 가득 감을 주워왔다. 전리품처럼 장독대 위나 담장 위 기왓장에 자랑스럽게 올려두었다. 야속하게도 감은 한꺼번에 익는 게 아니라서 겨우 한두 개로 동생들과 나누어 먹어야 할 때도 있었다. 기다림의 시간은 길었고 달콤한 순간은 짧았다. 아쉬워 입맛을 다실라치면 어느새 뒤란으로 돌아간 엄마가 항아리에서 삭힌 감을 꺼내주었다.

오월이 되면 마을이 흐붓했다. 대낮인데도 달빛이 비치는 것처럼 집집마다 환했다. 어쩌면 굴뚝마다 몽글몽글 연기가 피어올라 한꺼번에 감꽃을 피우게 하는지도 몰랐다. 초록 잎에 살짝 가린 흰 꽃들은 마치 크리스마스트리에 달린 작은 전구처럼 반짝거렸다. 나는 자주 감나무를 올려다보며 그 집 앞을 서성거렸다.

어느 날, 놀다가 집에 오니 붉은 고추와 숯을 엮은 새끼줄이 안방 앞에 처져 있었다. 방안에서는 갓난아기 울음소리가 들렸다. 막냇동생이 태어난 것이었다. 그 이후 나는 농사일로 바쁜 부모님을 대신해서 동생을 돌봤다. 고무줄놀이할 때나 비석치기할 때도 껌딱지처럼 등에 붙이고 놀았다. 마치 박수근의‘아기 업은 소녀’처럼.

막냇동생이 조금 자라자 함께 온 마을을 쏘다녔다. 앞산은 식량창고이자 놀이터였다. 진달래가 지천으로 필 때면 우리 입술도 보랏빛으로 변했다. 산딸기나 개암을 만나면 최고의 행운이었다. 통통한 찔레를 꺾으러 들어갔다가 똬리 튼 뱀을 발견하곤 비명을 지르며 줄행랑친 적도 있었다. 다시 뱀이 나타날 것을 대비해 닥나무로 만든 새총을 가지고 산을 올랐지만 어쩌다 만나는 녀석은 우리보다 빠르게 도망쳤다.

만약 내가 형이었다면 칼싸움을 하고 강에서 헤엄치는 법을 가르쳤을 것이다. 그러나 누나를 둔 동생은 보들보들한 황토로 밥을 짓고 풀을 뜯어 반찬을 만드는 소꿉놀이에 초대되는 단골손님이었다. 그러다 싫증 나면 아직 잎이 벌어지지 않은 도라지꽃을 손으로 터트리고 호박꽃에 앉은 벌을 잡는 일에 열을 올렸다. 가만가만 나무 울타리에 앉은 잠자리를 잡았다간 쳐다보는 굵은 눈망울 때문에 살며시 놓아주기도 했다.

방학이 시작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이웃 마을에서 반창회가 열렸다. 나는 친구들과 버스를 타고 우리 집 앞을 지나가게 되었다. 먹구름과 파란색이 반으로 섞인 하늘 아래 우두커니 서 있는 동생과 눈이 마주쳤다. 호리호리한 몸에 흰색 러닝셔츠를 입고 검정 고무신을 신은 까까머리 열 살짜리 남자아이는 슬로모션으로 촬영되는 영화 속 등장인물 같았다. 차가 마당 앞을 스쳐 지나가는 동안 우리는 서로에게서 눈을 떼지 못하고 오랫동안 바라보았다. 다시는 보지 못할 사람과의 이별처럼.

여름은 어김없이 태풍을 몰고 왔다. 어둠이 내리자 비바람이 점점 거세지기 시작했다. 커다란 손이 나무를 잡고 뿌리째 뽑을 것처럼 흔들어댔다. 마당에서 세숫대야가 날아가고 지붕에선 양동이로 물을 퍼붓는 듯 세찬 소리가 들렸다. 바람이 문고리를 잡고 마구 흔들어댔다. 벽장 속에 숨은 아이를 찾아다니는 범인의 발소리처럼 무섬증이 일어 이불을 끌어당겨 머리끝까지 뒤집어썼다.

며칠 동안 동생의 이마가 불같이 뜨거웠다. 지척에 병원이 없으니 물수건을 자주 갈아주는 수밖에 없었다. 앞집 할아버지가 목신이 들었다며 향나무 우린 물을 억지로 마시게 하고는 왼쪽 팔뚝에 한자로 된 긴 주문을 적었다. 어린 내 눈에는 글자가 매우 엄숙해 보여서 금방이라도 열이 내리고 배시시 웃으며 일어날 것만 같았다. 평소에 엄하기만 하던 아버지가 업어 주었지만 등에서 주르르 흘러내렸다. 뒤늦게 병원으로 달려갔다.

동생 옷가지며 사진이 마루에 수북하게 쌓였다. 굳이 말하지 않아도 선명하게 알아들을 때가 있는데 바로 그때가 그랬다. 대문을 들어서는 부모님 등 뒤엔 캄캄한 허공이 업혀져 있었다.‘이제 다시는 돌아오지 못하겠구나.’눈앞이 뿌옇게 흐려지며 동생이 서 있던 마당이 깊은 물속으로 가라앉는 듯했다.

마을회관 근처에서 소독약 연기가 피어올랐다. 사람 입장은 서로 달라서 뇌염으로 세상 떠난 동생을 애도하기보다 어디엔가 남아있을 빨간집모기를 박멸하는 일이 우선이었다. 그걸 인지상정이라 한다면 세상인심이 너무나 야박했다. 모든 이별이 어찌 슬프지 않겠냐만 작별인사를 건넬 수 없는 것만큼 안타까운 것이 또 있으랴. 아무리 둘러봐도 첫눈 뜬 오리처럼 나만 졸졸 따라다니던 동생은 보이지 않았다.

하필 그날 아침 아버지는 아픈 아들이 신발을 질질 끈다고 야단을 쳤을까? 요구르트를 먹고 싶다던 동생에게 나는 왜 건성으로 없다고 말했을까? 제 형은 말 안 듣는다고 주먹을 한 대 쥐어박기까지 했을까? 바쁜 농사 탓에 제때 병원에 데리고 가지 못했다고 엄마는 가슴을 치고 울었다. 시간을 거꾸로 돌릴 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으랴. 너무 일찍 죽음을 알아버린 나는 그때부터 삶에 대해 과묵해졌다.

감또개를 하나 주워본다. 다행히 상처 하나 없이 매끈하다. 손으로 쓱쓱 문지르니 반지르르 윤기가 난다. 자신의 생을 다하지 못한 것들에선 언제나 쓸쓸하고 안타까운 마음이 든다. 어쩌면 동생은 하늘나라에서 크고 튼실한 감이 되어 있을지도 모르겠다.

“누부야! 왜 그렇게 서 있노? 빨리 감 주워야지?”

하늘 저쪽에서 들려오는 초록빛 목소리를 가슴에 묻는다.

<에세이문학 2022년 가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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