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인 / 김정화

 

 

달인이라는 말이 유행어가 되고 있다. 한 가지 경지에 다다른 사람을 뜻하는 이 말은 오늘날 가장 명예로운 별명이자 대중이 수여하는 훈장과 같다. 수많은 장애물을 헤쳐 온 전문인에게 주어지는 이 호칭은 사람에게 최고의 지위를 꿈꾸게 만든다.

요즈음 한 개그맨의 달인 연기가 큰 웃음을 주고 있다. 외줄을 타고, 매운 음식을 먹으며, 수중 연기와 하이힐 묘기도 하는 등 엉뚱한 연기로 시청자들을 폭소케 하는, 그는 표정연기의 달인이기도 하다. 그 프로그램을 볼 때마다 민간요법의 귀재였던 아버지가 떠오른다. 선친은 민간요법에 남다른 재주를 지녔다. 코피를 흘리면 쑥을 찧어 막아주었고, 귀앓이를 할 때면 아주까리 기름을 귓속에 발라 주었다. 두통에는 고약한 마늘즙이 효과가 있다며 코에 밀어 넣었고, 편도가 부으면 말린 뱀 가루를 보릿대에 묻혀 후후 불어 주었다.

한번은 내가 볼거리를 앓은 적이 있었다. 볼거리에는 산토끼 오줌이 즉발이라고 무릎을 쳤다. 그날, 아버지는 올무를 들고 앞산을 온종일 뒤지다시피하여 내 머리통보다 큰 회색빛 멧토끼 한 마리를 생포해 왔다. 아버지의 손아위에 쥐인 토끼는 얼마나 놀랐는지 눈을 땡깔처럼 치켜뜨고는 환약 같은 검은 똥과 함께 노란 오줌을 밥사발 가득 눴다. 이물질이 들어가면 효험이 없다며 토끼 똥이 담긴 오줌 사발을 건네는 아버지 얼굴이 그때만큼 진지하면서 우악스럽게 보인 적이 없었다. 죽기 아니면 까무러치기로 마셨지만, 밤사이 내 볼은 마신 토끼오줌만큼이나 더 부풀어 올랐다.

병원 길은 멀고도 멀었다. 아버지는 선뜻 양의에 굴복하지 않으려는 기색이 역력했다. 두 번째 처방전은 돼지피로 이어졌다. 아버지는 내 손을 잡고 푸른 싹이 돋은 보리밭을 가로질러 단걸음에 참나무골 도살장을 향했다. 준비해 간 문종이에 돼지 피를 흠뻑 묻혀 부은 내 볼따구니에 붙여주고는 매우 흡족해하였다.

그날 밤 나는 밤새도록 방바닥을 뒹굴었다. 볼퉁이를 훔켜쥔 채 아홉 살 아이가 지를 수 있는 고함은 다 질러댔지 싶다. 그러다가 새벽녘에 까무룩 죽은 듯 지쳐버렸다. 놀란 아버지는 급기야 나를 시골 병원에 입원시키게 되었고, 커다란 수술 자국을 남기면서 볼거리 사건의 대단원은 막을 내릴 수 있었다.

남동생의 충격적인 일화 역시 두고두고 회자된다. 남동생이 열 살 무렵 정수리에 동전만 한 부스럼이 났다. 당시 걸핏하면 부스럼이 아이들에게 생겼는데 그때는 유독 진물이 심했다. 아니나 다를까. 아버지는 동생을 한데아궁이 앞에 앉혀두고 신문지를 둘둘 말아 불씨를 옮겨왔다. 신문지 재가 훨훨 불꽃을 밀어내며 하늘로 올라갔고, 마지막 불꽃은 기이하게도 뜨거운 기름 서너 방울을 떨어뜨려 주었다. 그 기름이 동생 꼭뒤에 정확히 떨어졌다.

그때였다. 엉거주춤 앉아 있던 동생은 단말마 외마디 소리와 함께 벌떡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그러고는 우우우 짐승 같은 광기의 울음소리를 연거푸 지르며 칠십여 호 동네 외퉁길을 미친 듯이 두어 바퀴 돈 후에야 마당 구석에 삭은 볏단처럼 폭삭 널브러졌다. 여하튼 그 덕분인지 모르나 부스럼은 깨끗이 나았다. 후유증도 만만치 않아 기름이 떨어진 자리에는 머리카락이 나지 않고 오랫동안 햇빛에 반들거렸다.

그러니 경중을 가릴 것 없이 환자가 되면, 아버지 입에서 떨어질 해괴한 처방전이 무엇일까 매번 노심초사할 수밖에 없었다. 몸에 이상이라도 생기면 슬슬 피하기 바빴다. 동생은 이가 흔들려도 시치미를 뚝 떼었기에 덧니투성이가 되었고, 나는 떨어진 시력을 숨긴 탓에 심한 근시가 되어버렸다. “어디 아프냐?” 라는 아버지의 달큰한 목소리를 들을 때면 가슴이 철렁 내려앉기 일쑤였다.

아버지는 자연식품 처방전에도 관심이 많았다. 고안해낸 방도 중에서 청개구리는 아버지가 특별히 애용한 민간약이었다. 십 년 째 중풍으로 고생하던 당신은 아침마다 이슬 내린 무화과나무 위의 청개구리 한 마리를 잡아서 날 것으로 삼켰다. 하지만 우리는 아버지의 유별난 처방전을 신뢰하지 못했기 때문에 청개구리 효험도 믿지 않았다. 요즘도 아침 산책길에서 조그만 청개구리를 보면 선뜻 발길을 옮길 수가 없다. 반갑기도 하고 애잔한 느낌이 들기도 하다. 아버지가 지금까지 살아계신다면 이제는 청개구리 포획작전에 슬며시 끼어들어 훼방꾼 노릇을 했을는지도 모를 일이다.

오늘날은 달인이 존경받는 세상이다. 달인은 열정과 노력과 끈기로 이우러진다. 잔꾀도 부리지 않으며 학력과 신분도 초월한다. 그것은 예술적 끼에 가깝기도 하다. 그러면서 타고난 팔방미인과는 달리 우직함을 지니므로 우리는 달인에게 고개를 숙이는 것이다. 어쩌면 아버지의 민간요법은 최고 달인은 아닐지라도 하수 달인 축에는 끼지 않을까. 그것이 딸의 마음이니 남이 뭐라해도 어쩔 수 없다.

아버지가 계시지 않은지 삼십여 년이 되었다. 나는 세상의 수많은 달인 이야기를 떠올리면서 아버지가 지닌 진정한 달인의 모습은 무엇일까 곰곰이 생각해 본다. 작은 일에도 혼비백산하여 도망치던 우리와 달리 어떤 일에도 놀라거나 동하지 않던 초연한 모습이 아니었을까. 보릿짚 북데기에서 뱀을 잡아 올릴 때의 의연함, 산토끼와 기싸움에서 물러나지 않는 묵묵함, 큰물 지던 날 물에 잠긴 방에 더 높은 상을 펴놓고 홀로 집을 지키던 강인함. 끔쩍 않던 그 부동의 자세가 최고 달인의 경지라고 여겨진다.

“요놈, 요놈.” 하며 청개구리를 쫓던 아버지 손등에 돋친 힘줄이 눈에 선하다. 아버지는 당신의 민간요법을 요리조리 파하던 못난 자식을 의식하여 더 열심히 청개구리 뒤를 쫓았던 것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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