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꾸는 사물들 / 박금아

 

 

“사모님, 책 내셨으면 제목 좀 알려주세요. 꼭 읽어보고 싶습니다.”

아파트 경비원의 말에 깜짝 놀랐다. 부끄러워 대꾸도못 한 채로 엘리베이터에 오르고 말았지만, 집에 가서도 계속 머리에 남았다. 책은커녕 갓 등단하여 이렇다 할 글줄 하나 발표한 적 없는 신출내기였고, 아파트에 사는 누구에게도 이야기한 적 없는데 내가 글을 쓴다는 것을 어찌 알았을까.

다음날 용기를 내어 슬쩍 물어보았다. 뜻밖에도 분리 수거된 물품들을 정리하다 보면 본의 아니게 각 세대를 들여다보게 된다고 했다. 식구가 몇 명이고 가족들이 무슨 일을 하며 살아가는지, 출신학교는 물론 종교와 지지하는 정당, 재산 정도까지도 얼추 가늠하게 된다나. 취미와 좋아하는 음식, 구매습관까지도 알 수 있다며 웃음을 흘릴 때는 내 속을 빤히 들여다보는 듯하여 귀밑이 달아올랐다.

재활용창고에 내다 버린 물건들이 생각났다. 습작 원고를 떠올리자 얼굴이 화끈거렸다. 원고지와 씨름한 흔적을 들킬까 봐 식구들에게는 컴퓨터 곁에 얼씬조차 못 하게 했건만, 그에게는 끙끙댄 자국을 고스란히 내보였으니 말이다. 며칠 전에 내버린 교정지 뭉치가 떠올랐다.

폐지 상자를 뒤적여 퇴고를 거친 수정 원고 몇 장을 찾아냈다. 문장이 되지 못 한 글자들은 빨갛게 붓고 퍼렇게 멍이 든 만신창이로 내팽개쳐져 있었다. 지난달 남파랑길 여행 때 실수로 하이패스 구간으로 들어가는 바람에 지불할 수 없었던 고속도로 통행료 미납고지서도 대체 이번이 몇 번째냐며 송곳눈으로 째려보는 듯했다. 얼른 주워 신문지로 돌돌 말아 폐지함 깊숙이 놓아두고는 슬그머니 창고를 빠져나왔다.

분리해 놓은 재활용품들이 새롭게 보이기 시작했다. 빈 물병과 헌책, 빈 캔과 플라스틱 용기, 헌 옷가지들 하나하나에서 그것들의 마음이 읽혔다. 생수통에서는 갈증을 해소했을 때의 쾌감이 느껴졌다. 빈 반찬통에서는 식구들이 좋아할 반찬을 만들어 담아두고 몇 번이고 뚜껑을 여닫았던 마음이, 추가 떨어져 더는 쓸 수 없게 된 압력솥에서는 수많은 쌀알을 익히고 뜸을 들인 시간이 헤아려졌다. 모두 한때는 나에게 절실했던 것들이다.

그런 어느 날이었다. 창고 문을 열고 들어서는데 바닥에서 작은 유리병 하나가 애절한 눈빛으로 나를 올려다보았다. 꽃병 입술에 말라붙은 프리지어 꽃잎에서 아직 향기가 났다. 들고 와 식탁에 두고 개나리 가지를 꽂았더니 며칠 후에 노란 꽃을 피워 올리는 게 아닌가. 버려진 사물들에도 꿈이 있었구나…. 다시 꽃을 피우고 싶었던 그 마음을 알아주어 고맙다는 듯 꽃병이 환하게 웃었다.

그때부터였다. 재활용창고 앞을 지날 때면 갖갖 소리가 들려왔다. 사과를 담았던 나무상자가, 포도주병이, 빨간 홍옥을 담고 싶다고 향기로운 아이스 와인을 다시 품고 싶다고 속삭이는 말이었다. 당장에라도 달려가 어린아이의 헐거워진 이층 침대를 꼭 죄어주고 싶은 작은 나사못과, 어느 꼬마둥이의 세발자전거가 되어 지구 끝까지 달리고 싶은 바퀴들이 전하는 이야기도 가직하니 들렸다. 세상 가장 먼 곳까지 사람들의 마음을 잇고 싶어 하는 전화선과, 상실해버린 의욕을 충전하고픈 방전된 배터리와, 피곤에 지쳐 곱송그린 어깨를 주욱 펴주고 싶은 철제 옷걸이의 꿈도 함께 들려왔다. 창고 구석에서 큰 비닐봉지 하나가 몸속 가득 공기를 품고서 부푼 채로 있는 모습이 훨훨 하늘을 날고 싶은 어린아이처럼 천진스러웠다.

폐지함에 담긴 것들이 내는 소리는 더 도타웠다. 책갈피가 너덜너덜해진 공무원 시험용 참고서에서는 오랫동안 행정고시를 준비하다가 7급을 거쳐 지금은 9급 시험공부를 한다는 403호 청년의 간절한 소망이, 찢어진 은행 대출명세서에서는 빨리 전세 대출금을 갚고 올해는 꼭 아기를 갖고 싶다는 704호 부부의 기도가 들리는 듯했다. 좋은 수필 한 편을 낳고 싶은 나의 바람도 폐지함 맨 아래 파지 뭉치에서 연둣빛 꽃눈으로 움트고 있을 터였다.

언제부터인가 분리수거창고 앞을 지날 때면 헛기침을 한다. 냉기의 시간 속에서 새로운 생을 꿈꾸는 맑은 영혼들에게 알량한 속내를 감출 수 없어서다. 그곳에는 온갖 풍문을 탐한 정보지와 소식지들, 나의 일부를 돈으로 환산한 세금명세서와 욕구를 구매한 내역과 나도 모르는 사이에 저지른 소소한 범법행위까지, ‘동의’하지 않더라도 무한 스캔된 수십 또는 수백 개의 내가 벌거숭이로 존재한다. 한편으론 깨어 일어나 통밤을 새우며 들썩이는 사물들의 꿈속에는 나의 꿈도 들어 있을 거라는 희망도 가져 본다. 사물들은 언제나 나의 일부였으므로.

이른 아침 외출길에 보니 분리 수거된 물품들이 재활용품 운반 트럭에 실리고 있다. 누가 버려진 것들에게 저리도 당당한 옷을 입혀주었을까. 해체해버려 부품으로만 존재하는 사물들도 흐트러진 데라고는 없다. 옹골차다. 큰 배를 타고 바다를 건너기도 하겠지. 저 꿈들의 종착역은 어디쯤일까.

<수필과 비평. 2022년 6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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