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삶의 광택 / 박원명화

 

 

봄이 막바지에 접어드는 늦은 밤.

창가에 놓인 책상에 걸터앉아 어둠에 싸인 아파트 숲을 바라본다. 바둑판같은 창문에는 등불 밝힌 집도 있고 더러는 캄캄하게 꺼진 집도 있다. 모두가 그런대로 행복해 보인다. 가로등이 우뚝 서 있는 주차장 마당에는 어느새 차들이 빼곡히 들어차 있다. 반듯하게 정돈된 차들이 마치 누군가 알뜰하게 매만져준 흔적처럼 반듯하다.

저편에서 내 쪽을 보아도 그리 행복해 보일까? 겉은 그럴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내 속은 주차장의 차들처럼 정연하지 못하다. 무딘 삶에서 일탈을 꿈꾸기도 하고, 비틀비틀 갈지자로 걷기도 하고, 돌부리에 넘어지기도 하고, 웅덩이에 빠지기도 하면서 인생 반년을 지냈지만, 아직도 나 자신 뭣하나 내놓을 것이 없다.

문단에 들어와 꿈으로 소망하던 의지를 불태운답시고 글을 썼다지만 여전히 작품다운 작품을 쓰지 못한 미련은 부끄러운 자책으로 남아 있어 가끔은 가족들에게 미안하단 생각이 든다. 허물을 벗기듯 내 삶의 무늬들을 들추어낸 것을 보면 어설픈 욕심만 가득 차 있을 뿐, 재능도, 감성도, 지식도 없는 듯하다. 꽃이 떨어지는 아픈 자리에 열매가 맺힌다는 지극히 상식적인 이치에 눈뜨기까지 나는 그 많은 세월을 무엇으로 살았을까.

책 읽기를 좋아했던 것이 문학을 하게 된 도화선이었다. 책 속에 묻혀 있을 땐 내 영혼은 멋진 연애에 빠진 사람처럼 달콤한 환상에 젖었다. 하고 싶은 일을 할 때가 가장 행복한 삶이듯 글을 쓸 때의 나는 사춘기 소녀로 되돌아간 듯 가슴은 설레고 뿌듯한 기쁨으로 충만했다. 하늘의 넓이만큼 열심히 쓰다 보면 나도 언젠가 훨훨 날아다닐 수 있을 거라고 믿었다. 그러나 내게 주어진 나날이란, 행복만을 마냥 이어갈 수 없는 당면한 내 앞의 현실이었다.

처음 글을 끄적이던 10대, 소설을 쓰겠다고 덤벼본 20대, 그리고 결혼, 이후 30여 년은 살림에 묻혀 살던 문학의 공백 시절이었다. 시도 아니고 산문도 아닌 낙서 같은 글들을 끼적거려 보긴 했지만, 언감생심焉敢生心작가가 되겠다는 생각을 꿈에라도 했을까. 결혼하고, 애 낳고, 그렁저렁 사는 동안 나름대로 살림에 재미를 붙이고 살았던가 싶다. 그렇고 그런 일상 속에서 그런대로 행복을 건지기도 하고, 몸살 같은 우울증에 시달리기도 하고, 채워지지 않은 목마름을 느끼기도 하며 텅 빈 내 영혼을 달래었다. 가랑잎이 눈부시게 아름다운 계절이면 세월 속에 마모되어 버린 줄 알았던 영감靈感이 스멀스멀 기어오르곤 했다. 그러노라면 나로 하여금 저절로 손에 책을 들게 했고 백지 앞을 서성이게 했다.

처음 수필 문단에 연을 갖게 된 것은 자의 반 타의 반이었다. ‘남이 장에 가는데 나도 따라가는’ 격으로 등단을 했다. 그리고 몇 년 후, 다시《월간 한국수필》을 통해 재 등단하면서 점차 수필의 매력에 빠져들게 되었다. 나의 글쓰기는 항상 시작하는 마음가짐으로부터 출발선에 서 있곤 했다. 쓰고 퇴고하기를 여러 차례, 나 혼자 글 삼매경에 빠져 하얗게 밤을 밝힌 날도 있었다. 그런데도 대부분 미완으로 미뤄지거나 어쩌다 완성한 작품이라 해도 다시 찬찬히 들여다보면 들쑥날쑥한 문맥들이 나를 번번이 실망하게 했다. 그야말로 치졸하기 그지없는 졸문拙文을 써 놓고 나 혼자 감성에 젖어 있는 꼴이 우습게 느껴졌다. 이대로 가다가는 정신이 맑아지기보다는 어쩌면 더 탁해질 것 같은 노파심이 일었다. ‘시’는 울고 들어와서 웃고 나가고, ‘수필’은 웃고 들어와서 울고 나간다는 문우들의 말이 그럴싸하게 들렸다.

일상의 삶에 리듬이 있듯 글쓰기에도 리듬이 있다. 내 마음이 흐르는 대로 글을 쓴다 해도 욕심껏 채워지지는 않는다. 수필은 픽션이 아니어서 더욱 조심스럽다. 내 삶의 고해성사라고나 할까. 경험하고, 보고 들은 대로 맛깔스럽게 요리할 줄 아는 기술과 문학적 소양까지 곁들인다면 작가로서의 내공이 쌓일 만도 하련만 내게는 그 재능마저 부족한 것 같다. 그래서인지 글을 쓰면 쓸수록 자꾸만 겁나고 무섭고 두렵다.

글쓰기는 인격 형성의 묘약이라고 여겨진다. 글쓰기 재료들은 대체로 내 주변 이야기나 가족, 혹은 이웃들의 생활 속에서 얻는다. 얘기의 안과 밖의 대체로 나로부터 시작하여 나로 끝난다. 일상의 범주 속에서 감성을 풀어 내다보니 수필이 신변잡기라고 꼬집는다면 나로서는 할 말이 없다. 그러나 수필의 특성상 글 재료가 작가의 일상에서 비롯되는 것이니 자연적으로 자전적 성격을 띨 수밖에.

주변 이야기를 자주 쓰다 보니 자칫 그게 그것 같은 느낌이 들 때가 있다. 그런 무심함에도 나는 내 삶의 의미에 불을 지펴보겠다는 욕망을 멈출 수가 없다. 조금만 더, 조금만 더 하면서 세월의 나이테를 이룬지 벌써 20년이다. 나름 문학단체에서 일도 하고, 후배를 양성하는 강의도 하면서 보람도 건지고 즐거움도 누렸으니 후회는 없다. 상상의 나래를 활짝 펴듯 한 편의 수필로 수필 극을 써 연출에 각색까지 일인 다역을 소화해 낸 일은 문우들과의 친목을 다지는 계기를 만든 셈이다.

어찌 생각하면 삶은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더 오묘한 몸짓으로 다가온 것인지도 모른다. 보기에는 사소하고 하찮은 것에서도 희로애락의 삶은 이어지고 생활의 질을 변화시킨다. 가랑비에 속옷 젖는 줄 모른다고 하듯 평범한 삶에서도 재미있고 알찬 글감은 쏟아져 나올 수 있다. 아직도 내 가슴에는 하늘을 날고 싶은 봄이 있고, 심신을 풍요하게 꽃피우는 푸른 여름이 있고, 완숙의 햇살에 물든 가을이 있고, 땅속 깊이에서 회춘을 기약하는 겨울이 있으니 언젠가 하늘을 날 기회가 오지 않을까.

내게 있어 가장 아름다운 그림은 역시 가족들이 한자리에 모여 이야기꽃을 피우는 시간이다. 닮을 얼굴들이 둘러앉아 오순도순 웃음꽃을 피워가며 밥 먹는 모습이야말로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풍경이 아닐는지. 누구는 주연으로 누구는 조연으로 등장한 내 글을 읽으면서 흐뭇해하는 가족들, 그 가족이 내가 살아갈 용기이고 희망이고 힘인 것이다.

<좋은수필. 2022년 5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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