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키타카 / 장영은

 

 

‘햇살이 아프도록 따가운 날에는 비가 끝도 없이 쏟아지는 날에는’ 아무 생각 없이 혼자 흥얼거렸다. 갑자기 옆에서 따라 걷던 친구가 ‘휘날리는 깃발처럼 기쁜 날에는 떠나가는 기차처럼 서글픈 날에는’을 연결해 부른다. ‘어떤 날’이라는 가수의 ‘그런 날에는’이라는 노래는 잘 알려지지 않았고 쉬운 가사도 아니다. 그런데도 응대해주니 새삼 코드가 잘 맞는다는 생각이 든다.

 

티키타카는 스페인의 장난감에서 나왔다. 양쪽에 방울이 달려서 오른쪽, 왼쪽으로 흔들리면서 딱딱 소리 내는 tiqui-taca에서 유래했다. 그 후에 축구경기에서 짧은 패스가 계속되는 것을 이르는 스포츠 용어가 되었다. 사전적으로는 탁구공이 빠르게 왔다 갔다 한다는 의미가 있다.

 

누군가 얘기를 할 때 한귀로 흘려듣거나 알아차리지 못한다면 거기서 대화는 끝나버린다. 또 한쪽이 일방적으로 몰아붙이는 대화를 하거나 호통을 치는 경우에도 소통은 성립되지 못한다. 거칠고 험한 말이 오가는 사람, 타인에게 아무렇지도 않게 상처를 주는 사람이라면 관계는 단절되고 만다.

 

큰아이가 예닐곱 살 정도 되었을 때 표정으로 이어가는 대화를 했다. 얼굴로 감정을 표현하는 놀이였다. 누가 가르쳐 준 것도 아니고 어디서 배운 것도 아닌데 작은 아이와 셋이서 종종 표정 대화를 나누었다. 행복, 분노, 슬픔, 놀람, 배고픔 등등 말이 없어도 셋이서 티키타카를 이루었다.

 

그랬던 큰아이와 요즘엔 대화가 잘 이루어지지 않는다. 꾸안꾸, 꾸꾸꾸, 슬세권이라는 사전에도 없는 단어를 쓰면서부터이다. 아이는 내게 라떼는 말이야 하고 놀리기도 했다. 전혀 말이 통하지 않아 대충 넘어가기도 하고 어떨 땐 쉬운 말로 하라며 역정을 내기도 한다. 아이와는 점차 티키타카가 되지 않았다.

 

‘그녀’라는 영화는 사람 테오도르와 인공지능 운영체제 사만다의 교류를 다루는 이야기이다. 주인공은 컴퓨터로 사람들의 편지를 대필해주는 작가로 정작 자신의 아내와는 사이가 좋지 않아 별거중이다. 외로움을 느끼던 그는 목소리뿐인 인공지능과 대화를 나누며 생활의 활력을 찾고, 살면서 놓쳤던 부분도 깨닫게 된다. 한 마디로 잘 맞는 커플이다. 감정을 드러내지 않는다는 게 얼마나 상대방을 외롭게 하는지, 누군가와 삶을 나눈다는 게 얼마나 좋은 건지에 대한 메시지를 내포하고 있다. 현대인의 고독이 얼마나 깊으면 기계와 사랑을 나눌까 싶어 한편으로 쓸쓸하기도 했다.

 

아이들이 타지로 떠나간 요즘 종종 혼자만의 대화를 나눈다. 썰렁한 집에서 오늘 이러이러한 일들이 있었어 하며 혼잣소리로 중얼거리곤 한다. 뭐 먹고 싶은 거 있어? 빨래는 다 널었니? 음악은 어떤 걸 들려줄까? 커피 한 잔 할래? 한참을 그러다 내가 뭐하고 있는 거야? 하며 피식 웃다가 멈춘다. 나도 인공지능을 하나 구입해서 대화를 나눠볼까 하는 생각이 많이 드는 요즘이다.

 

실존주의 철학자 샤르트르와 보봐르는 평생을 연인이자 지적 동반자로서의 관계를 유지했다. 그들은 독립적인 삶을 살았지만 또 더불어 함께였다. 샤르트르는 보봐르의 도움 없이 발간한 책은 단 한 권도 없다고 말했다. 두 사람은 서로의 개성을 존중하며 영혼의 교감을 나눈 사이로 유명하다.

 

추사 김정희가 유배 중 그린 세한도는 원래의 크기는 그리 큰 작품이 아니었지만 지금은 10미터가 넘게 되었다. 청나라 학자들의 감상문이 붙으면서 길어진 것이다. 벗의 그림을 보고 시를 적는 것이 그 시절의 문화였다. 바로 옆에 있어야 공감이 이뤄지는 것만은 아니다. 예술이 어떻게 교류를 이루는지 보여주는 사례라 할 수 있다

 

사람과 사람 사이에도 이런 경우가 있다. 이러이러한 소재로 글을 쓰려고 한다고 하면 이런 건 어떠냐며 벌써 아이디어를 내주는 문우가 있다. 표현하고자 하는 것을 알아채고 받아준다. 그녀의 얘기 끝에 내가 덧붙인다. 감정의 교류가 잘 맞는다.

 

얼마 전, 타지에서 근무하는 큰아이가 휴가를 내어서 경주로 내려왔다. 아이의 언어를 배우고자 인터넷도 찾아보며 혼자 나름 습득했다. 딸을 반갑게 맞으며 “너는 꾸안꾸 패션이 멋지구나. 엄마는 꾸꾸꾸야. 우리 슬세권인 집 앞에 편의점에 가서 라떼라도 한 잔 할까?” 했더니 깜짝 놀란다. 신세대가 사용하는 줄임말을 써보니 나름 재미도 있고 젊어진 느낌도 든다.

 

오래된 친구와는 말이나 제스처 뿐 아니라 노래로도 관계가 형성된다. 요즘처럼 사람 만나기가 두려운 때에는 문자로 서로의 쓸쓸함을 달래주기도 한다. 마스크 너머 변치 않는 티키타카를 애정하며 노래는 계속 이어진다. ‘난 거기엘 가지. 파란 하늘이 열린 곳. 난 거기엘 가지. 초록색 웃음을 찾아’

<에세이문학 2021년 겨울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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