똥 꿈 / 강돈묵

 

음주 탓이었을까. 자다 깨기를 여러 차례 했다. 그때마다 코를 많이 골았다는 생각을 했다. 목이 갈갈하고 약간의 통증까지 느껴졌다. 요즈음 음주 후에 자주 느끼던 현상이다. 이제는 음주한 날은 으레 코를 곤다는 생각을 아예 가지고 산다.

 

두 번이나 잠에서 깨어나 목의 이상을 달래다가 다시 잠이 든 것 같다. 그런데 그 짧은 잠결에 이상한 꿈을 꾸었다. 속이 불안한 나는 골목길을 걸어가면서 대변의 충동을 풀어냈다. 바지를 어떻게 했는지는 기억에 없고, 나는 남들이 없는 골목길을 걸어가면서 아랫배에 가득한 삶의 찌꺼기들을 쏟아내고 있었다. 마치 염소가 걸어가면서 콩알 같은 변을 쏟아내듯이 나도 그것을 덜어냈다.

 

이상한 것은 배변을 하면서도 속이 시원하다거나 터질 것 같았던 불안감이 말끔히 제거됐다거나 하는 느낌이 없다는 거였다. 속이 불안하여 견디기 힘들어 쏟아내기 시작한 일이 나에게 준 쾌감은 전혀 없었다. 그런 동작을 하며 골목길을 빠져나올 때에 등 뒤에서 나를 불러 세우는 노파가 있었다. 그 목소리는 아주 부드러웠으나 단호했다.

 

“길에 똥을 싸셨군. 다 치우시지.”

 

순간 꿈속에서도 나는 부끄러웠다. 다행히 모자를 쓰고 있어서 고개만 들지 않으면 나의 얼굴이 노출되지 않을 것 같았다. 노파에 이끌려 나는 내가 빠져나온 골목길을 되돌아가야 하는 신세가 되었다. 되돌아가다 보니 떨어진 똥 덩어리가 서너 개가 보였다. 둥그렇게 모양도 없이 퍼질러 놓은 것도 있고, 묘하게도 나무토막처럼 각이 져서 내뒹굴고 있는 것도 있었다.

 

신문지를 구해 모두 주어 담아 버려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신문지를 펴 놓고 그것을 집개로 담으려 하자 노파는 내게 ‘네 똥인데 뭘 그러노?’하며 손으로 담아 주는 것이었다. 나는 그녀의 지시대로 손으로 그것들을 신문지에 싸지 않을 수가 없었다. 신문지에 싼 똥 덩어리를 끌어안고 나오는데, 골목의 끄트머리에 오니 다른 사람이 퍼질러 놓은 것이 보였다. 나는 그것을 바라보면서 후회를 했다. 내가 못된 짓을 했으니 남이 누운 똥까지 치워야 아는 신세가 되었던 것이다. 그것을 한참 바라보면서 갈등했다. 내가 누지 않은 것인데 치워야 하나, 말아야 하나. 앉지도 못하고 신문지로 싼 똥 덩어리를 끌어안고 서서 고민을 하다가 나는 겨우 꿈에서 빠져나왔다.

 

정말 회한한 꿈이었다. 내가 골목의 중간쯤에 왔을 때는 노파가 내 곁에서 없어졌지만 나는 내게 주어진 벌을 끝까지 감내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것을 치우면서도 고민하고 부끄러워하고 일의 방법을 모색하며 순순히 임하고 있었다.

 

꿈에서 나와 한참을 생각에 잠겼다. 도대체 무슨 꿈일까. 죄 많은 내 삶에 대한 지적은 분명하고. 내 손으로 직접 치우라 한 것을 보면 나의 업보는 내가 받아들여야 한다는 계시임도 분명하고. 그런데 내가 누운 것이 현실의 것과 같았던 처음의 것은 그렇다 쳐도 나중에 각목처럼 되어 있던 것은 뭐지? 여하튼 회한한 꿈인 것만은 확실하다.

사실 이번 여름휴가는 고뇌 속에서 살았다. 저서라도 한 권 쓰려던 계획도 모두 무너지고 온갖 잡념에 싸여 살았다. 아무 일도 할 수가 없었다. 신뢰하고 믿었던 사람에게서의 배신과 상식 이하의 행동으로 나는 이미 공황상태로 추락해 있었다. 정말로 인간이 이런 것이라면 인간이고 싶지 않았다. 마음을 다스리고 겨우 일을 해 보려 하면 그 생각이 떠올라 견딜 수가 없었다. 결국은 일을 포기하고 자리를 차고 일어설 수밖에 없었다. 지독한 고통 속에는 언제나 술이 옆을 지켜 주었다.

 

모든 것은 내 탓이다. 내가 벌려놓은 삶의 흔적은 내가 치워야 함은 당연하다. 그것을 아무 데나 내던지고 만 것은 옳은 처사가 아니다. 이제 적극적으로 내 흔적을 내 손으로 주워 담는 일에 전념해야 할 것 같다. 그래야 지난 세월에 대한 책임 있는 자의 행동이리라.

 

이렇게 나 자신을 다독이는 데도 풀리지 않는 것이 있다. 골목의 끄트머리에서 만난 타인의 것은 어쩌란 말인가. 내가 치워야 하는 일인지, 말아야 하는지. 풀숲에 움푹 움푹 들어앉아 나의 시선을 끌었던 그것들. 그것들은 내게 어떤 존재일까. 갈등을 하다가 치우진 않고 꿈에서 깨어났으니 어쩜 남의 몫에 대해서는 간섭도 말고 욕심도 내지 말라는 계시인 것 같기도 하다. 그래야 앞에서 내가 한 일은 내가 해야 한다고 했던 것과 일치되는 것 같기도 하고.

 

잠결에 일어나 꿈속의 상황에 깊이 빠져든다. 그리고 지나온 날들에 대해 성찰하고 내가 갈 길의 방향키를 잡는다. 내가 한 일은 내가 책임져야 함은 당연한 것을, 이제껏 나 자신에 대해 적극적인 의식이 없이 살아온 것 같다. 나의 일은 내가 갈무리하고 나의 것에 대한 애정도 적극적이되 남의 것에 대해서는 일체 관여치 않는 삶을 꾸려야겠다는 생각이 이 순간 고개를 든다.

 

이런 꿈 풀이를 하고 일어서려는데, 느닷없이 ‘똥 꿈’을 꾸었다는 생각이 든다. 그래, 똥 꿈이었어. 그것도 내가 끌어안고 내려놓지 않은 상태로 꿈에서 나왔으니, 이건 대단한 똥 꿈이야. 어느새 나는 복권을 사야겠다는 생각에 설복 당하여 문을 밀치고 나서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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