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리굴비 한 상자 / 박금아

 

 

 

추석을 앞두고 아파트 택배 보관함에는 선물 상자가 쌓여 있다. ‘보리굴비’라고 적힌 상자에 눈길이 간다.

삼십여 년을 남편이 다니던 직장의 사원 아파트에서 살았다. 주민 대부분이 같은 회사 가족이다 보니 일반 아파트에서는 느낄 수 없는 애환이 많았다. 회사에서 일어난 일이 그날 해가 지기도 전에 전해졌고, 곤혹스러워하는 쪽은 주로 가장들이었다. 상대적으로 아내들은 행복해했다. 현금으로 지급되던 보너스 소식까지 고스란히 전해져서 한 푼도 새 나갈 수가 없었다. 너나들이하며 지내는 사이에서는 집집의 숟가락 개수까지 알 정도였다. 그러다가도 인사 발령 때나 명절 즈음이면 만나기를 삼갔다. 다른 사람들은 몰라도 내 경우는 그랬다.

추석이 가까워지면 선물을 실은 차량이 아파트 마당을 쉴새 없이 드나들었다. 우리도 선물 상자 한두 개는 받았다. 비누나 치약이 담긴 생활용품이나 스팸, 참치 같은 통조림 세트들이었다. 우리 집 아래에는 남편과 같은 부서 소속의 동년배가 살고 있었는데 우연히 그 집 문 앞에 배달된 선물들을 보게 되었다. 우리는 한 번도 받아본 적 없는 고가품들이었다. 좀 잘 나간다는 이야기는 들었지만, 소문보다 훨씬 잘 나가는 것 같았다. 선물 상자로 직장에서 가장의 위치가 가늠되는 듯하여 은근 신경이 쓰였다.

언젠가 택배기사와 엘리베이터를 같이 탔다. 그가 누른 층을 보니 그 사원의 집으로 가는 듯했다. 바닥에 상자 세 개가 포개져 있었다. ‘소갈비’ 가방과 ‘보리굴비’라고 쓴 스티로폼 상자, ‘특품 배’ 상자였다. 문이 열리고, 발길이 역시나 그 집으로 향했다. 잠시 도와달라는 말에 승강기를 정지시킨 채 짐을 다 옮기기를 기다리자니 마음이 복잡해졌다. 생파같이 송곳눈이 떠지면서 보지 말아야 할 것을 보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몽따려* 해도 속내를 감출 수 없었다. 마지막 상자를 들고 내리자마자 재빨리 ‘닫힘’ 단추를 눌렀다. “고맙습니다.” 하는 기사의 인사말은 승강기 문에 끼어버렸다.

택배기사에게서 우리 집 가장의 무능을 확인받기라도 한 것 같았다. 자존심이 상했다. 소갈비이거나 보리굴비이거나 사다 먹으면 될 일이었다. 다음 날 굴비를 사러 갔다. 그런데 가격표를 보고 깜짝 놀랐다. 몸에 금빛 새끼줄을 두르고 비스듬히 누운 모습이 ‘잘 나가는’ 가장을 연상케 했다. 그것으로 보리굴비와의 인연은 끝이었다.

한 단체에서 혼자서 일을 감당하느라 힘겨운 시간을 보낸 적이 있다. 어느 날 한 여성이 찾아왔다. 자기는 할 수 있는 일이 없지만 함께 있어 주고 싶다고 했다. 다음날부터 그녀가 와서 한 일이란 내가 일하는 동안 곁에서 기도하고, 식사 때면 식당으로 내려가서 같이 밥 먹고, 하루 일을 마무리할 때까지 지켜보아 주는 것이었다.

추석을 앞둔 어느 날이었다. 사무실에 들어선 그녀의 얼굴에 걱정이 가득했다. 지하철 위 칸에 보리굴비 상자를 올려두고 깜빡하고 내렸다는 거였다. 여기저기 수소문했지만 찾을 수 없다는 대답만 돌아왔다. 곁에서 보기에도 안타까웠다. 식구들과 맛있게 먹은 셈 치라고 했더니 실은 나에게 추석 선물로 주려고 가지고 오던 것이었다는 게 아닌가. 내 것이었다고 생각하니 마음이 달라졌다. 이번엔 내가 나섰다. 탔던 지하철 노선과 시간, 차량 번호를 물어가며 사방으로 알아보았지만 허사였다. 상심해하는 그녀에게 선물로 받은 거나 다름없으니 잊어버리라고 했다. 그런데 내 속내를 읽었던 걸까. 손을 잡으며 일렀다.

“그래요. 그 굴비는 분명히 어느 가난한 집 가장에게 갔을 거예요. 그건 자매님** 거니까 자매님이 선물한 겁니다.”

굴비와의 인연은 또 그렇게 끝나버렸다. 안타까운 마음은 꽤 오래 갔다. 애초 그 굴비는 내 것이 아니었다고, 언감생심 보리굴비를 받을 복은 내겐 없었던 거라고 단념했다가도 여간 서운하지 않았다.

그런데 희한한 일이다. 어느 해부턴가 매년 추석이면 보리굴비 한 상자를 선물 받는 기분이 든다. 그뿐 아니다. 내가 어느 가난한 가장의 손에 굴비 한 두름을 건네는 듯한 착각까지 한다. 십수 년 전에 그녀에게서 받은 선물 때문일까. 어찌 굴비 한 상자뿐이랴. 모두가 떠난 자리에서 혼자 사무실을 지키던 나를 찾아와 함께 해 준 일은 평생을 두고도 잊지 못할 선물이었다.

올 추석에도 지하철 1호선 3호 차량 선반에는 우리 집으로 오는 보리굴비 상자 하나가 실려 있을 것이다.

 

*알고 있으면서 모르는 체하다.

**가톨릭교회에서 여성 신자들 사이에 부르는 호칭

 

 

<한국산문 2021년 9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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