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의 힘 / 김원순

 

 

밤의 끝엔 언제나 그가 있다. 검푸른 빛 연미복으로 단장하고 댓잎에 이는 바람소리에도 귀를 여는, 긴 고통 끝에 분만한 밤의 옥동자다. 층층이 쌓인 어둠의 지충을 뚫고 움을 튀은 적요의 꽃이며, 슬그머니 빗장을 푼 어둠의 은밀한 미소다. 그 미소를 맞이하려고 긴 기지개를 켜며 두꺼운 커튼을 활짝 열어젖힌다.

이슬로 막 세수를 끝낸 새벽과 마주선다. 그의 싸늘한 체온이 내 혈관 깊숙이 스며들어 잠자는 의식을 하나, 둘 깨우기 시작한다. 깨어난 의식들이 제자리를 찾느라 잠시 부산스럽다. 어제의 절망과 체념은 이제 묻어버리고 힘찬 발걸음을 내딛으라며 가슴을 활짝 열어보인다. 새벽과 깍지 낀 내 손가락 사이로 별보다 많은 희망의 날들이 은하수 강물되어 흘러간다.

흘러가는 시간은 모든 이에게 골고루 나눠준다. 새벽 또한 어제의 출발선을 지우고 오늘의 출발선을 다시 그어선, 내일을 준비하는 이들의 가슴을 마냥 두근거리게 한다. 새벽달, 새벽별을 바라보며 하루의 순항을 간절히 기도하는 이들을 품어 안는다. 낡은 관습의 옷을 벗어버리고, 도전과 용기의 헬멧을 쓴 이들의 편에 서서 힘차게 달릴 채비를 서두른다. 아련히 들려오는 성당의 새벽 종소리, 두부 장수의 절규 같은 종소리가 어둠 사이로 살포시 날아들면, 그제사 어둠의 꽃잎을 한 장씩 펼치는 여명이 붉은 자락을 끌며 새벽을 흥건히 물들인다.

새벽보다 먼저 일어난 사람들로 북적이는 곳이 있다. 인력시장이다. 새벽의 얼굴로 새벽처럼 웅크린 채 하루치의 노동을 지고 가려는 결연한 눈빛들로 가득 찬 절체절명의 곳이다. 비록 남루하고, 거칠고 , 아슬하게 외줄을 타는 노동자일지라도, 한 그릇의 밥이 된다면 어디든지 달려가고픈 살벌한 전쟁터다.

휘어진 등, 기울어진 어깨 위엔 '가족'이란 바위가 천형처럼 짓누른다. 그 바위를 들어 올리려면 바위보다 단단한 인내와 끈기, 바다보다 깊은 마음의 평정을 가져야 한다. 가슴에는 별 보다 많은 꿈과 희망이 반짝여야 하리. 제 몸 하나 던져 따뜻한 밥이 될 수 있다면 기꺼이 그 길을 달리려는 사람들로 새벽길은 언제나 북새통이다. 그 길을 하얗게 지우는 새벽안개는 서리서리 뿜어낸 그들의 한숨일까, 무거운 발걸음을 재촉하는 하얀 말채찍일까.

인력시장은 새벽 공기보다 무거운 긴장감과 간절함이 땅거미처럼 깔려 있는 곳이다. 땅거미를 밟고 모여든 사람들의 열기로 한동안 후끈거리는 곳이며, 저마다의 '노동'을 안고 제일 먼저 팔려나가기를 갈망하는 곳이다. 옥죄오는 가슴에 모랫바람이 일면 페드럼통의 장작불도 꽁꽁 얼어붙은 하늘로 광란하듯 솟구친다. 솟구친 만큼 '절박한 노동'이 제 값을 받아야 하는데, 그들에게 주어지는 그날의 일자리가 그들을 울리거나 웃기기도 하여서, 인력시장은 마치 살얼음판 위에 세워진 서커스 무대 같다.

이윽고 우렁한 호명 소리가 새벽 공기를 가르며 옥죄인 가슴을 파고든다. 미지의 누군가가 그들의 '절박한 노동'을 찾는 구원의 소리이자 존재의 이유를 알리는 신호탄이다. 호명된 사람들은 그제사 웅크린 허리를 펴고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젖은 그림자를 끌고 새벽 그 깊은 지층 속으로 총총 사라진다. 호명되지 못한 사람들은 페드럼통 속의 불길처럼 가뭇없이 사위어가고, 그러면 인력시장은 또다시 깊은 침묵의 늪 속으로 한없이 빠져드는 것이다.

호명되지 못한 그림자 몇몇이 모래알처럼 흩어져 있다. 간혹 사위어가는 페드럼통의 불씨를 뒤적이기도 하는데, 그것은 제 마음속의 불씨가 꺼지지 않기를 기도하는 경건한 의식이다. 어쩌면 삶의 무게와 존재의 상실감을 불길 속에 던져버리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기다림 끝에 피는 꽃이 제일 아름답고 향기롭다지만, 꼭 그런 것만은 아니라는 것을 인력시장에 와서야 비로소 깨닫는다.

새벽을 기다렸지만 어쩔 수 없이 접어야 하는 노동의 꽃송이들 어깨를 짓누르던 '가족'이란 바위가 '와르르' 굴러내린다. 정처없이 굴러가다가 그들이 멈춰 선 곳은 과연 어디일까. 그곳에서도 또다시 새벽을 기다릴까. 내일은 부디 그들의 이름이 호명되기를, 어제 피우지 못한 노동의 꽃송이를 활짝 피우기를, 새벽은 어김없이 그대들을 찾아올 테니 그 끝자락을 단단히 잡고 있기를….

병풍처럼 폈다 접는 일상 속에서 우리는 매일 새벽 인력시장처럼 호명되거나 호명되지 못한 채 살아가고 있다. 제가 하고 싶은 일에 호명되었을 때는 삶에 생기가 돌지만, 그러지 못할 때는 일의 노예가 되어 막막하고 쓸쓸해진다. 그 쓸쓸함을 떨쳐버리기 위해 거리로 나서면, 쓸쓸한 거리엔 쓸쓸한 사람들이 낙엽처럼 이리저리 쓸려다닌다. 지하 계단으로 순식간에 빨려들었다가 밤이면 도처에서 불나방처럼 쏟아져 나온다. 쓸쓸한 거리는 또 하나의 거대한 인력시장이다. 저무는 새벽이다. 아니다. 인생의 주인공으로 살아가게 하는 찬란한 삶의 무대다.

주사위처럼 던져진 오늘, 새벽이 그어놓은 출발선 위에 오뚝이처럼 선다. 오늘도 어제 같고 내일도 오늘 같다면, 새벽은 영영 나를 찾지 않을지도 모른다. 그래서 나는 새벽이 등을 보이기 전에 새벽보다 일찍 일어나 새벽의 마음으로 하루를 힘차게 연다. 내게 있어 새벽은 무한한 긍정의 힘이며, 열정의 불씨이자, 도전의 발판이다.

새벽에 태어난 외손자 낙현이가 새벽을 흔들어 깨운다. 그놈 목소리 한 번 새벽닭처럼 우렁차구나 싶다. 새벽의 힘을 수혈받아서일까. 새벽에 일어나 밤늦도록 노는 아이를 볼 때면, 나도 모르게 새벽의 힘을 수혈받은 듯 힘이 불끈 솟는다. 새벽은 꿈을 가진 이들의 푸른 날개며, 긴 인생 항로를 인도하는 나침반이다.

희붐한 골목길 끝에서 잠자리 날개 같은 새벽이 서서히 날갯짓을 서두른다. 호명되지 못한 얼굴들 여명 속에서 속절없는 꽃잎처럼 지고, 또 지고 있다. 그러나 내일은 절대로 지지 않을 것이다. 어기차게 다시 필 것이다. 출발선에 주저앉은 사람들을 우뚝 일으켜 세우는 새벽이 있는 이상은.

새벽은 희망과 도전을 소리 높여 외치는 젊은 나팔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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