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개비 / 이능수

 

 

요양원 마당에 오색바람개비가 돌아간다. 노인들이 마당가에 삼삼오오 모여앉아 넋을 잃고 바라본다. 어린 시절, 골목길에서 뛰어다니며 돌리던 바람개비로 기억력을 되살리려 설치한 것이라 한다. 화단에 활짝 피어난 바람개비들이 봄꽃 같다.

 

"안녕하셨어요?"라고 인사를 드려도 삼촌은 멍하니 얼굴을 쳐다보다 시선을 창밖으로 돌려버린다. 동행한 아버지가 삼촌의 손을 잡고 '빠야'를 외치며 기억을 되살리려 애를 쓴다. 혈육의 정이 애잔하게 다가와 눈물이 글썽인다. 가슴속의 회한을 풀어내기 위해서일까? 당신은 수백 번도 더한 '바람개비 얘기'를 오늘도 꺼낸다.

어른들은 논밭에 가고 열 살의 아버지가 다섯 살 삼촌을 돌보고 있었다. 잠에서 깨어난 삼촌이 계속 울어대자 '빠야'를 만들어주겠다며 달랬다. '빠야'는 이제 막 말을 배우기 시작한 삼촌이 바람개비를 부르는 이름이었다. 아버지가 대나무와 낫을 들고 방으로 들어와 바람개비를 만들기 시작했다. 삼촌은 신기한 표정으로 바투 다가와 앉았다.

 

앗, 순간이었다. 미끄러진 낫이 동생의 눈을 스쳤다. 눈동자가 찢어져 피가 얼굴에 쏟아졌다. 당황하여 허둥대고 있을 때 부모님이 돌아왔다. 할아버지는 작은아들을 업고 병원으로 내달았다. 찢어진 눈동자를 당시 의술로는 봉합할 수가 없었다. 시간이 지나면서 상처가 아물고 눈의 부기가 가라앉았지만 결국 한 쪽 시력을 잃고 말았다.

몸이 천 냥이면 눈이 구백 냥이란 속담이 있다. 삼촌은 왼쪽 눈에 하얀 안대를 끼고 살았다. 친구들이 외눈박이라 놀리며 따돌렸다. 미움이 마음속에 똬리를 틀자 사람만 보면 시비를 걸었다. 술에 취하면 밤낮 없이 아버지를 찾아와 눈을 고쳐내라 악을 썼다. 잘못했다며 용서하라고 사정해도 통하지 않았다. 집안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제삿날엔 특히 더 했다. 심적 갈등은 극한상황으로 치달아 수면제를 먹고 병원을 찾는가하면 언덕에서 아래로 굴러 팔을 부러뜨리기도 했다.

 

그러던 어느 날, 지금까지 자신의 행동을 후회하고 공부를 시작했다. 삼촌 손에는 항상 책이 들려있었고 도서관에서 밤을 새웠다. 노력 끝에 상위성적으로 유명대학교를 졸업할 수 있었다. 삶의 희망을 찾은 삼촌은 취업전선에 뛰어들었다. 입사원서에 학교장추천서까지 받았지만 결과는 낙방이었다. 필기시험엔 우수한 성적이 나왔으나 면접이 문제였다. 다른 회사도 마찬가지였다. 장애인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 제대로 정립되지 않은 때였다. 삼촌은 다시 어둠 속을 헤매었다.

 

외모장애(障碍)는 배우자 선택에도 걸림돌이 되었다. 학창시절 사귀던 여자 친구들이 취업에 문제가 생기자 곁을 떠나갔다. 맞선은 조건이 너무 복잡하였다. 삼촌이 좋아하면 여자가 싫어하고 여자가 마음에 들어 하면 삼촌이 퇴짜를 놓았다. 고집스러운 성격은 조건을 낮추어 혼인을 성사시킬 생각도 없었다. 백여 회가 넘도록 맞선을 보았지만 성사되지 않았다.

 

아버지는 동생에 대한 죄의식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사랑하는 마음으로 출발한 일이 평생의 한을 안겨주게 되었기 때문이었다. 의술이 허락한다면 자신의 안구를 이식해주고 싶다며 동생의 손을 잡고 통곡하곤 했다. 삼촌의 개비를 돌리는 바람이 되려고 노력했지만 끝내 이루어지지 않았다.

 

바람이 불자 바람개비의 날개가 움직인다. 하나 둘씩 돌아가는 소리가 창을 넘어온다. 병실 사람들이 밖을 바라보며 생각에 잠겨 있다. 저마다 어릴 적 골목을 뛰어놀던 때를 떠올리는 것일까? 가끔씩 미소를 짓기도 한다.

 

오후 회진시간이 되어 의사선생이 병실에 들렀다. 요즘 삼촌의 기분이 많이 가라앉아있다고 말을 꺼낸다. 얼마 전까진 옆 사람과 대화도 하고 식사를 잘하더니 이즘은 밥도 남기고 혼자서 멍하니 창밖을 내다보는 날이 많아졌다고 한다. 삼촌은 결국 세상과 화해를 못 했지만 스스로 치매 속으로 들어가면서 자신의 분노를 거둔 것일까? 그 고단했던 삶을 잊어버리기 위해.

 

문병을 마치고 요양원 마당을 걸어 나온다. 화단의 바람개비들이 힘차게 돌아간다. 하나를 골라 날개에 꽂힌 못을 뽑아 하늘로 던진다. 옥죄었던 장애에서 벗어난 개비는 자유를 찾아 허공을 날아간다. 날개 위에서 삼촌이 활짝 웃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