맨꽁무니 / 김단영

 

 

남편은 에어컨 설치기사다. 우리지역에는 2인1조로 꾸려진 설치 팀이 50여개 정도 있다. 연중 상시근무 팀도 있고 한시적으로 하절기에만 계약하는 팀도 있다. 에어컨 설치작업을 하려면 규정상 보조기사가 필요한데, 군복무를 앞두거나 갓 전역한 청년들이 파트타임으로 잠깐씩 일했다. 올해는 코비드가 터지고 걱정이 많아졌다. 소비가 위축되어 에어컨 판매량이 대폭 줄어들 것이라는 예상 때문이었다. 판매가 줄면 설치작업 건수도 줄어들기 마련이다. 최저임금도 오른 데다 일거리가 줄어들면 보조기사 일당도 제대로 챙겨주기 힘들다. 보수가 적으면 성실한 보조기사 구하기도 어려워진다.

 

마침 직장을 그만두고 쉬고 있던 터라 내가 보조를 하겠노라 자처하고 나섰다. 일자리 구하기도 힘든데 어차피 지출되는 인건비라면 내가 대신하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는 계산을 댔다. 특별한 기술이 없어도 메인기사의 작업공정을 거들어주면 될 일이다. 처음부터 잘 하는 사람이 어디 있나, 시키는 대로 배워가며 일하면 될 것이라는 생각을 했다. 하지만 그건 오산이었다. 에어컨은 여느 가전제품 배달과는 차별성이 있다. 전기코드만 꽂으면 끝나는 간단한 배송이 아니다. 실내공기를 차게 만들기 위해 실외기와 실내기를 설치하고 연결시켜야 한다. 에어컨 설치는 무척 힘든 작업이었다. 아니 보조기사 노릇이 서툴러서 나만 힘이 든 것일까? 기술이나 실력이 없으니 맨주먹으로 보조역할을 하는 맨꽁무니가 따로 없다.

 

에어컨 설치를 하려면 챙겨야 할 장비가 많다. 먼저 실외기와 실내기, 배관 자재, 기본으로 공구박스가 두 개, 벽을 뚫기 위한 장비와 진공청소기, 배관이 벽체에 매립되어 있으면 휴대용 용접 기기도 필요하다. 사다리, 카펫, 진공게이지, 에어컨 가스와 질소 가스도 있어야 한다. 이렇게 필요한 장비가 많은데, 엘리베이터가 없는 다세대 주택 고층에 설치 건이 뜨기라도 하면 대략 난감해진다. 남편이 공구가방을 들고 먼저 올라가서 상담을 하는 동안 보조인 내가 작업도구를 하나씩 옮겨 놓는다. 일을 모르면 할 일도 없는데, 작업공정을 알수록 자질구레한 할 일이 늘어났다.

 

무거운 짐을 들고 계단을 오르내리는 일은 무척이나 고됐다. 평소에도 운동 부족이라 맨몸으로 움직이는 것도 힘든데, 양팔에 짐을 잔뜩 들고 옮기자니 어깨가 빠질 것만 같았다. 손목은 죽죽 늘어져 고릴라처럼 땅바닥에 끌고 가는 느낌이었다. 마스크까지 착용한 얼굴에 점점 땀이 배기 시작했다. 콧등에서 안경이 흘러내렸다. 아침저녁으론 시원해도 낮에는 여름 날씨다. 눈썹을 타고 흐른 땀방울이 눈을 쿡쿡 찔렀다. 계단을 두어 칸 오르면 헉헉 숨을 몰아쉬었다. 또 두세 칸 오르면 한번 쉬었다 올라야 했다. 덩치는 산만해도 저질 체력임을 반박할 수 없었다. 마스크가 없어도 숨이 차고 답답한데 들숨날숨에 마스크가 코와 입술에 붙었다 떨어지기를 반복했다. 숨이 턱까지 차오르고 체력은 급속히 방전되어갔다. 남편은 남편대로 땀범벅이다. 벌써 이렇게 힘들면 한여름은 어찌 견딜까 슬그머니 걱정이 되었다.

 

에어컨 실외기를 수월하게 놓을 수 있는 장소는 드물었다. 실내 공간을 한 뼘이라도 넓게 쓰려는 듯 베란다 난간에 보조대를 설치해서 매달거나 옥상에 올려두는 것이 보통이었다. 한 번은 14층에서 바깥으로 실외기를 들어 올린 적이 있는데, 안전벨트는 착용했지만 정말 아찔했다. 요즘은 이사하면서 보일러를 떼어가는 사람은 거의 없다. 보일러는 건물을 지으면 기본으로 시공된다. 그러나 에어컨은 이사하면서 철거했다가 다시 재설치를 많이 한다. 그 덕분에 우리가 먹고사는 거겠지만 국가적으로 자원낭비가 아닐 수 없다. 아직까지 에어컨은 생활필수품이라기보다 기호품에 가까운 모양이다.

 

코비드의 영향으로 일감은 날거리로 들어왔다. 이틀에 한두 건이라도 일거리가 있음에 감사했다. 작업이 끝나면 에어컨 작동여부를 인스톨하는 과정이 있다. 남편이 에어컨 시운전을 하는 동안 고객에게 리모컨 작동법을 알려주라고 하는데 솔직히 당황스러웠다. 그동안 남편과 함께 살면서 에어컨 작동법을 익히지 못했다. 그런 일은 언제나 남편에게 미루고, 전혀 신경 쓰지 않고 지냈던 탓이었다. 손수 집을 지을 만큼 기술이 좋다 보니 항상 남편이 알아서 처리하는 것을 당연하다 여겼다. 실내 온도, 제습, 공기 청정 등 에어컨 기능을 테스트하는 동안 보조기사인 나는 조용히 뒷정리하는 쪽을 택했다.

 

작업을 끝낸 장비는 다시 정리해서 차량으로 옮겨 싣는다. 거실형 에어컨의 포장박스는 내 키를 훌쩍 넘었다. 거기에다 포장재와 작업하면서 발생한 배관 자재 쓰레기를 한데 넣고 단단히 묶어준다. 남편의 보조로 따라다니며 평소에 보지 못했던 낡은 신발이 눈에 들어왔다. 부부로 살면서 살뜰히 챙겨주기는커녕 부족함을 지적할 줄이나 알았지 남편의 수고로움과 성실함을 칭찬해 주지 못했다. 고마운 줄도 모르고 살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떤 사람은 남편을 보고 기술직이라 좋겠다고 말하기도 한다. 젊었을 때는 남들이 못하는 일을 한다며 어깨를 으쓱하기도 했지만 나이가 들어서도 계속하려니 기운이 딸리는 걸 느낀다. 남들이 안 하는 일을 해야 먹고 살 수 있다니 서글픈 생각도 들었다.

 

우리보다 형편이 나은 사람들과 비교하면서 나는 남편이 세상의 맨꽁무니라고 생각했다. 남편을 보조하며 함께 다니다 보니 새삼 부부는 하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에어컨 실외기와 실내기가 한 세트인 것처럼 하나가 아닐까 싶다. 아파트 베란다 난간에 매달려 윙윙거리는 실외기는 남편을 닮았다. 실내 공기를 식혀주기 위해 부지런히 작동하는 실외기는 언제나 뜨겁다.

<한국산문 2020년 7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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