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모티콘 천국 / 허숙영

 

세상에는 다양한 언어들이 있다. 국가별로 정해지기도 하며 지방에 따라 나뉘는 말도 있다. 손짓과 몸짓, 표정에 따른 언어도 있고 더듬어 읽을 수 있는 점자까지 소통을 위해 통용되는 것은 모두 언어라고 할 수 있다.

인터넷과 휴대전화 속의 이모티콘도 하나의 약속된 언어다. 아니 만국 공통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거기에는 표정, 문자, 감정 등 여러 상황의 표현법이 있다. 이 그림말은 사람의 감정이나 의사를 표현하는 것으로 문자와 기호를 조합하는 데서 출발한다. 기계로 오가는 딱딱한 의사소통을 좀 더 부드럽게 하여 인간적으로 만들기 위함이 아니었을까. 지금은 수천 개의 그림말이 만들어져 쓰이며 때로는 값을 지불하고 써야 하는 것도 많다. 한 번의 클릭으로 나의 생각과 행동에 알맞은 것을 찍어 전달할 수 있으니 이보다 편리하고 쉬운 말이 어디 있겠는가. 말로 하기 어려운 것을 대신 전하는 역할 대행이다.

이모티콘은 한 문장도 쓰기 싫어하는 사람에게, 특히 애정표현에 서툰 중년 남자들이 사용하기 딱 좋다. 글이라면 읽기조차 싫어하고 표현력도 부족한 나의 남편도 예외는 아니어서 오달지게 애용한다.

술을 마시고 밤늦게 올 일이 있으면 두 눈에서 하트를 뿅뿅 발사 시키고 뽀뽀를 하는 이모티콘을 보내며 넌지시 숙취해소에 좋다는 헛개 차를 부탁한다. 귀여운 몸짓의 고양이를 내세워 뭐해 뭐해?’를 물어오고, 일찍 들어오라는 문자에 대한 응답으로 큰절하며 ‘성은이 망극하옵니다.’라고 하니 웃지 않을 수 없다. 설령 그것이 아무런 생각 없이 손가락 하나로 꾹 찍어 보내는 것이라 해도 슬며시 웃음이 나오고 대답을 하게 만든다. 그러니 별로 말이 없는 우리 부부 사이를 돈독하게 만드는 마력을 가졌다는 생각을 할 때도 있다.

마치 압축 풀린 마술처럼 호기심을 불러일으키며 나조차도 글 대신 적당하게 쓸 수 있는 것을 뒤적인다. 마음속에 품었다 내놓고 싶은 무수한 말들을 글 솜씨 고민하지 않고도 해결할 수 있다. 그러면서도 전달력은 훨씬 강하다.

이 신통한 물건은 시공을 초월하여 일상화되고 있다. 가까운 지인의 아들이 대학 디자인 공모전에 입상했다는 소식이 단체 카톡에 뜨자 일순간 난리가 났다. 가상공간에서 꽃다발을 전달하는가 하면 빙글빙글 축하의 춤을 추고, 최고라며 엄지손가락을 척 올려주고 좋아서 팔짝팔짝 뛰기도 한다. 순식간에 회원들의 인사와 답례까지 모두 마친다. 축하 인사는 가벼운 것 같았지만 서로 부담 없이 좋은 일을 공유하는 것을 즐겁다.

예전 같으면 어림도 없는 일이다. 축하 전보를 치거나 꽃다발을 만들어 직접 만났을 때 한마디 건넬 수밖에 도리가 없다. 그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서운하고 인사를 받아도 부담스럽다.

물론 늦은 밤이거나 미처 휴대폰을 들여다보지 못해 시간을 놓쳐 무안한 경우도 있다. 하지만 무서운 속도로 변하는 정보의 시대가 아닌가. 한발 늦은들 어떠랴 싶다. 그 위에 새로운 소식들이 쌓여가니 잊기 또한 쉽다.

때로는 원시로 다시 되돌아간 것처럼 느껴질 때도 있다. 울산 반구대 암각화도 그래서 태어난 것이 아닐까. 통신 수단이나 문자가 없던 그때 왔다 갔다는 표시도 하고 고래를 잡았다는 것도 알려야 했을 것이다. 원시 때의 그림이 지금의 이모티콘 기원일 수도 있겠다 싶다. 앙코르와트 사원의 긴 화랑을 따라 걸으며 본 부조벽화는 크메르 제국의 역사를 들려준다. 이것이 글로 남았다면 그렇게 감동적이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림문자는 한눈에 읽을 수 있어서 더 좋다. 간단한 글과 그림만으로도 마음을 담뿍 담아 전달할 수 있다면 도타운 인간관계를 만드는 언어로 제 몫을 톡톡히 하는 것이다.

친구가 그녀 남편의 승진 소식을 문자로 알려왔다. 축하기에 알맞은 이모티콘을 찾느라 오늘도 검지가 바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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