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청사달(心淸事達) / 오차숙

 

 

마음이 깨끗해야 만사가 형통한다.

 

그러나…

삶이라는 실체가 낙엽의 최후처럼 적막해 보인다.

삶의 흔적으로 명암 한 장을 내민다면 벽에 걸려있는 30호 정도의 가족사진이 아닐까 마음 모퉁이에 색다른 에고ego가 용솟음쳐도 액자 속의 사진은 내 작은 육신을 태연한 듯 묶어 놓는다.

 

그동안 나는 절대적인 것에 지배당하기를 원해 왔는지도 모른다.

신이 나를 지배하고 있으므로 존재하고 있지만 어딘가 모르게 정신 한 구석이 지쳐가는 것 같다 확신은 있지만 따라갈 수 없는 마음, 자신을 하얀 꽃처럼 정제하지 않으면 관념의 유희에서 견뎌낼 만큼 나의 의식은 건강하지 못하다.

에고ego보다 강한 내면의 유희―사람을 통해서든지 이론을 통해서든지 신앙을 통해서든지 자연을 통해서든지 사람을 사람답게 하는 것 살아 숨 쉬게 하는 것 한 모금의 생수가 되어 주는 것이 그리운 순간이다.

세상은 하수구처럼 혼탁해 있으나 환상의 유희는 무엇보다 아름답다.

거리에는 안개가 자욱하게 깔려있으나 환상의 세계는 샘물처럼 아름답다. 환상을 꿈꾸는 것이 나의 우울이기도 하고 기쁨이기도 하지만 정신을 세척시킬 수 있는 기회가 되어준다.

많은 사람들이 인도의 명상가 라즈니쉬 제자가 되어 영적훈련을 혹독하게 거쳤다면 세상은 어떤 모습으로 변했을까.

 

나는 라즈니쉬의 제자였던 전위무용가 홍신자의 정신세계를 존경한다.

책을 통해서도 느낄 수 있었으나 강의를 통해서도 잔잔하게 흐르는 고뇌의 빛깔 치열하게 용솟음쳤던 예술의 끼 추구하는 세계가 선명하게 떠올라 선생님의 고통과 인내, 인생을 사랑하게 되었다.

삶을 사는 동안 사막을 헤매며 방황하더라도 영혼을 지배할 수 있는 대상이 나타나 마주한다면 영적인 부활을 느낄 수 있을 것 같다. 내적인 부활이야 말로 구원과 비교될 수 있는 삶의 에너지―생명의 근원이 되기 때문이다.

주변에도 오아시스 역할을 하는 사람들이 종종 있긴 하다.

바라보기만 해도 평온을 가져다주는 사람 심오한 샘물처럼 향기가 배어나오는 사람 지나치게 세속적인 사람들보다 절제된 자유주의자들과 대화를 나룰 때면 삶의 희열을 느낄 수 있다.

인간은 대부분 평범함에 깊숙하게 길들여져 있으므로 지나친 일탈을 꿈꾸진 않는다. 황금빛 천으로 자신을 포장하며 세련된 위선자가 되고 만다 일상의 권태와 공허 때문에 숨이 막혀 와도 사계절은 순리를 역류하지 않는다.

 

삶은 잔인할 만큼 무자비하다.

가까스로 의식주를 해결하면 마음이 가득 찰 줄 알았는데 정신을 가다듬고 세상을 내다보면 정답은 그곳에 있지 않다. 잡힐 듯하면서도 잡히지 않는 절대적인 세계, 마음을 세척해 줄 수 있는 순수의 대大극치, 연못에 피어난 수련화 같으면서도 핏줄이 용솟음치는 듯한 광기, 이처럼 인간은 불투명한 실체를 찾아 여행을 떠날 수밖에 없는 것 같다.

나는 이때 방안에 숨죽이고 들어앉아 수많은 생각에 잠겨본다.

남편이 ‘몽상가’라며 종종 비웃어도 어쩔 수 없는 삶의 일부분이다. 입안에 물집이 생겨 영양제를 필요로 하면ㅅ허도, 정신의 배낭을 둘러매고 환상여행이라도 떠나본다 앞과 뒤를 훑어보아도 눈물겹도록 초췌한 삶, 강물처럼 어딘가를 향해 질주하지만 불투명한 삶의 방향, 세속화된 삶 속에 처절하게 길들여져 타인에게 속고 타인을 속이며 줄행랑치는 삶, 수만 개의 가면을 뒤집어쓰고 성녀복을 입은 삶, 삶이라는 실체는 압구정동의 불빛처럼 찬란하여 평범함과 겉치레 외앤 아무 것도 없다.

 

절대적인 세계를 갈망해 볼까.

공기가 미소 지을 만큼 투명한 세계, 수덕사의 공기처럼 무거운 세계, 도심 속의 수녀원처럼 절제하는 세계, 때론 상처 부위에서 나체 춤을 추는 핏방울도 닦아보고 환희에도 차보면서 알지 못할 곳으로 여행이라도 떠나볼까.

성녀들의 수도복이 그들을 묶어놓은 굴레인 것처럼, 여섯 식구가 찍은 가족사진이라도 탓해 볼까. 아이들의 초롱초롱한 음성과 눈망울, 아롱이의 촉촉한 눈 맞춤과 삐악거리는 오골계가지 뒤로 접어두고, 영혼의 새가 되어 창공이라도 날아볼까.

이처럼 일상의 권태들이 뱀처럼 꿈틀거리며 나약한 의식을 잡아당기고 있지만 어느덧 환상에서 깨어날 시간―행주치마를 두를 시간이 되어간다.

 

환상 속에서 나만의 삶의 ‘간이역’을 통해 정신의 찌꺼기를 씻어내는 귀한 시간이 되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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