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로움의 밀실 / 반숙자

 

 

농막이다. 뒤로는 오성산이 나지막이 엎드려 있고 앞으로는 음성 읍내가 한눈에 들어오는 서향집, 다낡은 구옥이 내 창작의 밀실이다. 봄부터 가을까지 자잘한 채소를 키워먹고 과일나무 서너 그루씩 흉내만 내는 미니과수원이다.

 

 지금 밖에는 태풍이 몰고 온 비가 종일 내리고 있다. 산자락이거나 계곡을 피하라는 텔레비전 보도가 있었지만 몇 그루 안 되는 과일나무와 다 늙어 쇠잔한 농막이 걱정돼서 올라왔다. ​밭고랑에 수로를 따주고 처마 밑에 고무 통을 놓아 물난리가 나지 않게 단속을 하고 소파에 앉는다.

 

 여기에 농막을 지은 것은 33년 전이다. 동네 가운데 편리하고 넓은 집을 두고 길도 변변치 않던 산다랭이 과수원에 집을 지은 것은 순전히 남편의 배려였다. 사람들 속에서 더 외로움을 타는 과수원에 오면 평화로웠다. 하루 종일 혼자 있어도 심심하지 않고 풀을 뽑아도 사과나무 열매솎기를 해도 즐거웠다. 이런 별난 여자를 위해 힘든 작업을 시작할 때 사람들은 이해할 수 없다는 시선을 보냈다. 벽돌을 실은 트럭이 들어올 수 없어 일꾼 둘이 두 달을 손수레로 벽돌을 날라지었다. 인도에 가면 세상을 떠나면서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무덤을 지어 달라는 왕비의 청을 들어 2만 명의 노예들을 부려 22년간 ​'타지마할'을 지은 샤자한 왕이 있지만 우리 집 남편도 그에 못지않은 열정으로 이 집을 지어주었다. 비록 초라한 누옥이지만 누군가를 위해 열정을 다 바쳐 지었다는 점에서는 부족할 게 없다.

 나는 사람보다 과수원이 더 좋아서 이 길을 택한 여자다. 사과나무의 사계에서 사람살이의 이치가 보였고 작은 우주를 느꼈다. 내가 이곳을 창작의 밀실로 치는 이유다. 생각이 엉킬 때 여기로 오면 정리가 되고 몸이 나른할 때 풀을 뽑고 땀을 흘리다 보면 생기가 돌기 때문이다. 처음 글을 쓴 곳도 여기고 등단의 기쁜 소식을 들은 곳도 바로 여기다​. 뿐만 아니라 <몸으로 우는 사과나무>의 배경이 여기고 문역 40년에 서울살이 10년을 뺀 나머지 시간의 켜가 여기 쌓여 있다.

 많은 문필가들이 책이 쌓여있는 공간에서 점잖게 글을 쓰는데 나는 작업복에 호미를 들고 글을 쓴다. 서재가 있기는 하다. 아파트의 구석방이 내 공부방인데 거기서 나온 글은 별반 없다. 바람 따라 나선 길 위에서 쓰거나 농장에서 고구마를 캐면서 글감이 생기면 가을 내내 고구마만을 생각한다. 고추를 따면서 고추고랑에 글의 씨가 떨어지고 밤 이슥토록 고추를 고르는 이웃들의 굽은 등이 원고지 칸칸에 머문다. 아마도 아파트에서만 살라했으면 노상 아프고 속이 허해서 배겨내지 못했을 것이다. 나는 본래적으로 야생이니까.

 이 뜰에는 생명이 있다. 해마다 지하실 헛간에서 새끼를 치는 새가 있고 배가 만삭이 되어 잠자리를 찾아드는 도둑고양이도 있다. 머지않아 고양이는 ​대엿 마리의 새끼를 거느리게 될 것이다. 얼마 되지 않는 땅콩 골을 재집 드나들 듯이 쑤셔대며 여물어가는 땅콩을 따먹는 두더지도 한창 나풀거리는 김장배추와 열무 싹을 모조리 잡수시는 뒷산 고라니도 여기 식구다. 가히 원초 오케스트라라고 해도 틀리지 않을 것이다. 지금은 아파트에서 살기에 집을 통째로 쥐들에게 전세를 준 격이 되었다.

 나는 틈틈이 메모를 한다. 밭고랑에서, 장화 신고 뒷산에 밤을 주우러 가서도, 봄이면 다래 순이나 홀잎을 따러 가서도 메모를 한다. 이렇게 일하며 모아진 생각들이 고고성을 울리는 곳도 바로 여기다. 달력 이면지나 공문서 이면지를 잔뜩 쌓아놓고 초벌을 쓴다. 어느 한순간에 벌어지는 분만작업이다.

 이런 이유로 이곳은 어떤 방문객도 환영하지 않는다. 가장 편한 차림으로 누구의 시선도​ 받지 않고 자연과 내가 온전히 하나 되는 밀실, 노동과 사유가 교신하는 비밀의 방이기 때문이다. 깊어가는 가을 밤, 묵직한 책 한 권 펼쳐놓고 스탠드를 밝히면 밤바람 소리만 유리창을 흔드는 적요가 어찌 그리 충만한지, 이제는 두려울 것도 애태울 것도 없는 깊은 평화다. 세상 모든 문학작품들은 깊은 외로움에서 싹텄다 하지 않던가.

 올해는 갑자기 강의가 늘어 일주일에 일요일밖에 오지 못했다. 그런 연유로 꽃밭도 풀밭이고 마당도 풀밭이다. 아예 '풀집'이다. 뒷산을 오르고 이들이 지나가다 빈집인가 싶어 들마루에 앉아 저들끼리 주고받는 이야기들.

 "이 집 사서 싹 뭉개고 전원주택을 지었으면…."

 "주인이 어디 갔나, 온통 풀 천지라…."

 "경치 하나는 끝내주네. 펜션 지으면 사업 되겠는데…."

 경제논리로 따지면 우리가 무식한 사람들이지만 정신적으로 치면 건강한 사람들이다. 사실은 능력이 없어 전원주택을 보기 좋게 올리지 못하지만 지금 이대로가 나답고 정다운 것은 또 어인 일인가. 내가 가장 확실하게 살아있는 실존이 여기에 있어서인가.

 언젠가 둘이서 사과나무 밑의 풀을 뽑으며 남편에게 말했다. 내가 먼저 떠나거든 재로 남겨 이곳에 뿌려달라. 몸으로 운건​ 1970년대 과수농부 당신이지만 마음으로 울며 산 나는 영원히 사과나무로 남고 싶다고. 여기는 반숙자의 창작의 밀실, 내 수필의 자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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