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생, 기척을 내다/노혜숙

 

기척 하나

 장흥長興으로 가는 길은 멀었다. 유치면有治面의 골짜기들은 그보다 더 멀고 깊었다. 지리산 줄기의 웅장하고 호쾌한 산세 속에 인간의 길들은 초라했다. 헐떡거리며 겨우 산으로 기어들고 있었다. 길을 에워싼 숲은 강성했다. 억세고 거친 푸름 속에서 내뿜는 숲의 냄새는 비리고 달았다. 어둑시근하고 서늘한 숲은 안쪽에 가파른 벼랑을 숨긴 채 적막했다. 가로 지름을 허락하지 않는 산길은 산세를 따라 요동치고 굽이치듯 흘러갔다. 안간힘을 다해 골짜기를 파고 들던 길은 마침내 두 채의 인가 앞에서 꼬리를 감추었다. 박모의 심심산골에서 인간의 기척을 만나는 일은 눈물겨웠다. 나무에 묶인 개가 혼자 빈 집을 지키고 있었다. 개는 순해터지게 우두커니 서서 꼬리만 흔들었다.

 마당가의 백일홍은 저 홀로 농염하고 장마 통에 웃자란 풀은 꽃나무 밑을 치받쳐 오르고 있었다. 건너편 집 창문에서 흐린 불빛이 새어나왔다. 거기 사람이 살고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골짜기는 넉넉히 아늑했다. 문득 사람이 없는 풍경이란 얼마나 쓸쓸한 것인가 싶었다. 부대끼며 상처를 주고받으면서도 인간의 마을에서 떠나지 못하는 이유가 거기 있으리라. 사람과 사람 사이의 온기, 그것은 어쩌면 서로를 의지한 채 가파른 벼랑을 견디는 나무들의 생존의지 같은 것이 아닐는지. 나는 인가가 있는 마을로 내려와서야 비로소 평안했다.

 기척 둘​

 장흥 재래시장에 토요 장이 섰다. 초대가수와 반라의 무희들이 노래와 춤으로 한껏 사람들의 흥을 돋우었다. 주민들의 노래자랑도 질펀하게 이어졌다. 삼십대쯤으로 보이는 한 남자가 무대 아래서 춤을 추었다. ​노래가 끝나도 춤을 멈추지 않았다. 열기로 달아오른 얼굴은 불콰했다. 무아의 지경을 헤매는 듯 초점이 없는 눈을 하고 있었다. 썩 잘 추는 춤은 아니었으나 못 추는 춤도 아니었다. 사람들은 두 푼쯤 모자라는 그를 장흥의 명물이라고 불렀다. 장이 서는 날 사람들은 여지없이 무대 아래서 그 남자를 볼 수 있었다. 벌어진 판인데다 저 좋아 하는 짓이니 굳이 흉 될 일도 아니었다. 그의 춤은 나날이 발전해서 주변에선 꽤 알아주는 명물이 되었다. 장터 사람들은 따끈한 한 끼 밥과 술로 그를 대접했고, 남자도 그 이상 바라지 않는다고 했다. 춤을 추는 남자의 얼굴은 무구해 보였다. 한 판 춤에 한 끼 밥과 한 잔 술로 행복할 수 있는 사람. 다소 모자라 보이긴 했으나 행복지수는 결코 모자라 보이지 않았다. 사람들은 나를 그남자보다는 멀쩡한 사람으로 구별할 것이다. 멀쩡하기 때문에 나는 더 행복했던가. 오히려 그 멀쩡함으로 타인을 판단하거나 나를 옭아매어 불행하게 하지는 않았던가. 나를 이롭게 하지 못하고 타인에게 덕이 되지도 못하는 멀쩡함이 두 푼 모자람보다 나은 게 무엇인가? 낯선 여행지에서는 내가 더 선명하게 들여다보였다.

 기척 셋​

 용케 하루를 비켜 간장맛비가 오늘은 드디어 손님맞이를 제대로 할 모양이었다. 새벽부터 텔레비전에서는 연신 장마 전선이 남하했다는 소식을 내보냈다. 금방이라도 비가 쏟아질 듯 하늘은 어두컴컴했고, 습기를 머금은 대기는 축축하고 후텁지근했다. 장흥의 가지산迦智山보림사寶林寺로 가는 길은 한적했다. 한참 만에 타이탄 트럭과 낡은 승용차가 지나갔을 뿐이었다. 풀숲에선 찌르레기소리가 요란했고, 도로 옆 불어난 개울물은 물풀들을 쓰러뜨리며 소리 내어 흘렀다. 골짜기에서 피어오른 물안개는 능선을 타고 온 산으로 번져갔다. 빗방울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바람이 거세게 불고 빗줄기는 이내 장대비가 되어 쏟아졌다. 물은 금세 도랑을 이루고 흘렀다. 운동화에​ 물이 스미고 바짓가랑이가 젖어들었지만 숙소로 돌아갈 생각은 하지 않았다. 젖은 신발 안에서 물이 찔꺽거렸다. 아예 신발을 벗어들었다. 아스팔트의 단단한 질감과 함께 물의 차가운 기운이 발가락 사이로 스며들었다. 유쾌한 장력이이었다. 직립보행의 생생한 실감이 온 몸으로 전해졌다. 맨발의 가벼움이 온 몸의 가벼움으로 연결되고 있었다. 발가락은 모처럼 원시의 활기를 되찾고 씩씩했다. 한 걸음씩 내디딜 때마다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는 관절들의 조화는 감격스러웠다. 맨발의 자유, 오랫동안 잃어버렸던 몸의 야생성 앞에 나는 한껏 쾌락했다. 포개진 산맥 아랫자락 농무 속에 보림사는 고요했다. 빗속을 뚫고 들려오는 목탁소리. 그보다 명징한 사람의 기척이 어디 있으랴. 정신의 볼모를 일깨우는 소리, 그것으로 충분했다. 나는 산문을 들어서지 않고 보림사를 그냥 지나쳤다.

 生生​

 산다는 것은 기척을 내는 일이다. 그렇다면 여행은 기척을 확장하는 일이리라. 낯선 곳에서의 기척은 헐겁고 신선하다. 골짜기의 불빛이나 장터의 명물, 보림사의 목탁소리도 모두 산 인간의 기척이 아니던가. 떠나는 일은 나의 기척 위에 너의 기척을 포개는 일이다. 그렇게 생생生生, 살아있음을 확인하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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