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도상의 어떤 지명이 의미를 갖게 되는 건, 아딘가가 나와 닿아있기 때문이다. 『어린 왕자』에서 여우가 어린 왕자에게 의미 있는 것은 그가 길들였기 때문이듯이.
몇 년 전 아이들을 데리고 7번 국도를 따라 동해안을 여행했다. 숙소를 예약하지 못한 채 날은 저물고, 철 지난 바닷가에서 마음에 드는 민박집을 찾기란 쉽지 않았다. 어렵게 찾은 그러나 만장일치로 마음에 든 그 민박집엔 파도가 담벼락에 와 철썩 부딪쳤다 가곤 했다. 소변이 마려워 한밤중에 깬 둘째를 데리고 화장실을 찾아 밖으로 나왔던 그 새벽 바닷가의 맑은 하늘에서 무수히 내리꽂히던 별똥별을 어제인 듯 기억한다. 우연히 나온 그 시각이 바로 사자자리 유성우의 절정이었던 것이다. 지금도 둘째는 별똥별을 본 건 제 공이었다며 우쭐거린다. 우리 아이들에게 동해는 지도상의 동해가 아니라 별똥별 현란했던 그 민박집의 밤이다.
한때 청마 유치환에 매료되었었다. 그의 애틋한 시를 가슴 떨며 읊조리고 다니던 때가 있었다. 통영은 청마의 문학관이 있는 데다 박경리의 「김약국의 딸들」에서도 동양의 나폴리로 너무나 아름답게 묘사되어 있어 그냥 아무렇게나 가서 봐버리고 싶지 않은, 꼭꼭 아껴놓고 싶은 곳이다. 그러나 지금 통영은 가슴이 짠해지는 도시가 되고 말았다.
부족하기만 한 막내며느리를 딸처럼 예뻐해 주셨던 시아버지였다. 그해 여름, 안부 전화를 했는데 평소와 달리 목소리가 너무 쓸쓸하게 느껴져 일정을 바꿔 아버님이 사시는 통영으로 갔다. 아버님과 남망산 공원을 함께 걸었다. 청마의 시비가 있는 곳에서 멈추어 서서 “네가 좋아하는 시가 여기 있구나.” 하셨다. 며느리가 좋아하는 시를 어떻게 아셨을까. 아, 그때 나는 아버님의 팔짱을 끼고 싶었다. 딸이 없는 아버님에게 막내딸처럼 살갑게. 하지만 그러지 못했다. 그런데 그때가 마지막일 줄이야. 두어 달 후 아버님은 갑자기 돌아가셨던 것이다. 남쪽 바닷가의 통영은 아버님이 떠올라 눈이 젖어 드는 지명이다.
금산 보리암에서 바라본 아름답던 남해, 이제 남해라는 지명엔 이제까지 이웃이었던 아름다운 한 사람을 떠올리게 될 것이다.
우리 아파트 우리 줄에 살던 이웃이 어제 이사를 갔다. 예순쯤 되었을까, 초등학교 선생님이었던 그분은 늘 웃는 얼굴이었고, 스무 살도 더 차이가 나는 새댁에게도 하대下待하는 법이 없었다. 이른 아침이면 경쾌한 톤으로 “좋은 아침” 하고 먼저 인사했다. 어쩌다 머리끝에서 발끝까지 성장盛裝한 그분을 만날 수 있었는데, 아직도 나를 불러주는 학교가 있다며 발그레한 볼로 소녀처럼 즐거워했다. 오늘 저 선생님을 맞이하는 학반의 아이들은 행복하리라. 무릇, 세상의 모든 선생님은 행복해야 한다. 그래야 그 넘치는 행복감이 아이들에게 전해져 아이들의 하루도 행복해질 것이므로.
주변에 좋은 일이 생겼을 때, 아주 순수한 마음으로 축하해주기는 쉽지 않은 것 같다. 그 흔한 축하한다는 말 속에 시기와 질투도 섞여 있음을 느끼곤 한다. 그러나 축하나 칭찬보다 더 따뜻한 질책도 있을 수 있는가 보다.
“이 집 딸이 전교 회장이 되었다면서요. 공부도 잘한다더니 예쁘게도 생겼네.”
큰아이와 함께 엘리베이터를 타고 가다 쏟아지는 칭찬에 무슨 말을 해야 할지 우물쭈물하고 있을 때, 그분이 내리면서 한 마디 했다.
“애 너무 떠들어서 키우지 마세요.”
머리를 한 대 얻어맞은 것 같았다. 우리는 예전부터 잘생긴 이이에게 ‘그놈 범상이다’ 라고 했고, 고종의 어릴 때 이름도 ‘개똥이’ 였다지 않은가. 좋은 일에 잘 낀다는 ‘마魔’를 경계하고, 아직 제대로 익지도 않고 자만에 빠질까 염려하는 ‘어른의 말씀’ 이었다. 민방해하면서도 칭찬을 은근히 즐겼을지도 모를 팔불출 엄마에게도 겸손한 마음 잊지 말라는 나무람 아니었을까?
친구를 만나고 돌아오는 길에 우연히 그분을 만났다. 내일 남해로 이사 가게 되었다 했다. 새로 살게 될 집엔 사람의 손길을 기다리는 나무가 많더란다. 그 나무와 꽃에 사랑을 불어 넣을 생각인지 얼굴엔 웃음이 가득했다. 남해에 여행 오는 길 있으면 자고 가라면서 빈말 아니라고 강조하는 것이었다.
집에 돌아와서도 계속 그분 생각이 맴돌았다. 진심은 통하는 것이고, 선물은 마음 가는 만큼만 한다는 평소의 생각대로 부담스럽지 않을 조그만 선물을 하나 사고 쪽지를 썼다. ‘존경할 만한 어른이 없는 세상, 무슨 일 있으면 달려가 의논하고 싶은, 참 좋은 이웃 어른 한 분을 잃은 느낌’이라고. 이삿날은 경황이 없을 것 같아 저녁에 미리 인사드리고 찾아갔더니 안 계셨다. 들고 간 선물을 어떡하나 잠시 망설이다 우편함에 넣어 놓고 왔는데 늦은 시각 인터폰이 울렸다. 뜻밖의 선물과 아름다운 마음에 감동했다는 말에 내가 도로 선물 받은 느낌이었다. 그런데 “부산 오시면 연락하세요.” 해놓고도 끝내 전화번호를 가르쳐 드리지도 묻지도 못했다. 남해에 오면 묵어가라는 말을 계산에 넣고 한 행동으로 오해할까 봐. 아, 내 소심함이여. 하지만 혹 아는가, 어느 날 남해 그 아름다운 바닷가에서 바다 냄새가 묻은 엽서 한 장이 날아들지.
이제 아름다운 섬 남해는 밝은 미소로 주변을 환하게 만들며 살아가고 있을 그분이 있어, 더 아름다운 섬으로 내 안의 지도에 자리하리라.
산다는 것은 하나씩 하나씩 추억을 만들어가는 것이다. 늙어진 어느 훗날, 가만히 눈감고 추억의 책장을 넘기면 갈피마다 가득할 나의 역사. 아름답고 즐겁거나 슬프고 아픈 모든 추억엔 장소가 함께 하기 마련이니 산다는 것은 내 마음속에 하나씩 지도를 그려가는 것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