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자미 한 토막 정재순

 

좋아하던 것이 갑자기 싫어질 때가 있다그것으로 말미암아 입은 마음의 상처가 컸거나잘못을 저지른 걸 고스란히 기억하고 있어서일 것이다언젠가부터 눈이 한쪽으로 몰린 생선을 멀리한다바다에서 나온 음식은 자다가도 벌떡 일어날 정도로 좋아하지만납작하게 생긴 가자미는 이름이 얼씬거리기만 해도 고개를 돌리게 된다.

옆 동네에 사는 친구에게서 전화가 왔다친정을 다녀왔다며 같이 점심을 먹자고 했다현관에 들어서는데 맛있는 냄새가 진동해 식욕이 돋았다식탁에는 금방 지어서 김이 솔솔 피어오르는 밥과 따끈한 미역국과 몇 가지의 반찬이 깔끔하게 차려져 있었다친구는 가스렌지 불을 끄고 가자미조림을 쟁반에 수북이 담아왔다가자미를 보자마자 멈칫하고 말았다.

몇 해 전만물이 살이 올라 맛을 더하는 가을이었다홀로 지내시는 아버지가 모처럼 딸네 집에 놀러 오셨다친정 부모님은 지금껏 우리 집에 들르면 겨우 밥 한 끼 자시는 게 다였다성정이 대쪽 같으신 아버지와는 그다지 살가운 정이 없었으나 엄마가 떠나시고 홀로 계시니 안쓰러운 생각이 자꾸 들었다하룻밤만 주무시고 가라는 나의 간청에 마지못해 허락하셨다.

한달음에 시장으로 달려갔다당신이 좋아하는 나물 몇 가지를 사고 시장통을 둘러보니 가자미가 싱싱해 보였다엄마가 자주 만들어 주던 기억이 새삼스레 떠올랐다생선이 한창 맛있을 때라 조림을 하면 맛날 것 같아 크고 통통한 놈으로 세 마리 샀다농사꾼의 두툼한 손등만 한 가자미였다.

예전의 아버지는 채식을 즐겼다쌀뜨물에 된장을 풀어 마늘과 청양고추를 다져 넣고 짭짤하게 끓인 된장찌개가 상에 오르면 표정이 환해지셨다호박잎이나 우엉 잎을 쪄서 쌈을 싸거나열무 겉절이와 비벼 먹으면 세상 부러울 것 없다고 했다그런 당신의 식성도 흐르고 세월 따라 조금씩 변해걌다가끔 삼겹살도 구워 자시고 오징어 두루치기도 드셨다.

조물조물 나물 반찬을 바지런히 장만해 놓고나직하고 널따란 냄비에 얇게 썬 무를 깔고 반으로 가른 가자미 여섯 조각을 얹었다아버지 입맛에 맞았으면 하고 갖은 영념을 넉넉히 섞어 정성을 들였다완성된 가자미조림은 양념이 잘 배여 제법 먹음직하게 된 것 같았다.

넓은 접시에 큰 것으로 골라 세 토막을 아버지 상에다 올렸다살이 오져서 이만하면 넉넉히 드실만한 양이라 여겼다그런데 접시에 놓인 가자미가 이내 사라졌다의외였다아버지는 무와 양념까지 말끔히 드셨다더 드린다 해도 얼마든지 자실 것 같았다아이들에게 먹이고 주방의 냄비에는 남편에게 줄 한 토막이 남아 있었다나도 모르게 말이 튀어나왔다.

아버지더 없어서 어쩌지요다음에 또 해 드릴게요.”

망설이지 않고 선을 긋고 말았다아버지는 괜찮다고 하셨지만 미련이 있으신 듯했다그러나 이미 뱉어 놓은 말 때문에 내어 올 수도 없는 처지였다저녁을 드신 뒤 당신은 비워둔 집이 궁금하다고 했다가지 말라고 붙들었으나 기어이 현관문을 나섰다얼마 후 남편이 돌아왔다집에서 먹을 줄 알았는데 밥을 먹었다는 것이다.

다음 날남편의 아침상에 가자미를 올리는 속마음이 편치 않았다자꾸만 아버지가 생각났다당시 아버지의 끼니는 거의 도우미 아주머니의 손을 빌렸으니 엄마 손맛을 본지가 꽤 되었다가까이 있으면서도 남편과 이이들 돌보기 급급해 아버지를 살뜰히 챙기지 못했다좋아하시는 과일은 가끔 사다 드리고 함께 외식은 했지만 따뜻한 밥상을 살피지는 않았다오랜만에 드신 가자미조림이 아버지 구미에 맞으셨건만이 못난 딸자식은 남은 한 토막을 남편 몫으로 꿍쳐 두었다.

남편이 아버지처럼 양념까지 싹싹 굵어먹었더라면 어떠했을까오르긴 해도 앞뒤 견주지 않고 냉큼 냄비 째 갖다 바치지 않았을까출가외인이란 말은 허투루 있는 게 아닌 모양이다내리사랑은 있어도 치사랑은 없다더니 옛말은 그런 게 하나도 없다는 생각이 든다.

그 일이 있고 두어 달도 채 지나지 않아 아버지는 갑작스러운 사고로 먼 길을 떠났다이제 더 맛있고 귀한 것을 해 드린다고 해도 당신은 드실 수다 없게 되었다두고두고 가자미 한 토막이 나의 뇌리에 체한 듯 걸려있다회로 치든지 화덕에 굽든지 납작하게 생긴 생선을 보면 나는 아버지 생각에 젖는다.

친구가 마련한 밥상 앞에서 잠시 속으로 빠져들었다맛있겠다는 소리를 연발하던 내가 뜬금없이 조용해지자친구는 걱정스러운 얼굴로 밥에 돌이 있더냐고 물었다나는 고개를 가로저었다친구는 가자미 접시를 자꾸만 내 앞으로 밀었지만 나는 가자미 접시에 눈도 손도 가지 않았다고개를 숙인 채 가자미조림은 아침에 먹었다고 둘러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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