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드 이발소 이재훈

우리 동네 입구에는 허름한 이발소가 하나 있다출입문 위에는 <월드이발소>란 조그만 함석 간판이 삐딱하다처음 나도 그 월드란 단어가 거슬렸다한옥을 개조한 이발소의 규모나 외양에 비해 너무 과장되었다는 생각 때문이었으리라페인트는 언제 칠했는지 곳곳이 녹물자국으로 얼룩져 있고 문짝은 아귀가 안 맞아 쥐가 드나들 것 같다쉴 새 없이 돌아가고 있는 이발소 표시등만이 이발하러 들어오라고 손짓하고 있는 듯하다.

나는 이 동네로 이사 오면서부터 이곳에서 이발을 한다처음 왔을 때 생각이 난다문을 열자 나를 맞은 건 싸구려 향수냄새와 비누냄새였다그리고 알 수 없는 지린내 같은 세월의 냄새가 그 밑에 숨어 있었다다음으로 눈에 들어온 것은 희뿌연 거울 위에 걸려 있는 두 개의 액자였다밀레의 만종과 어미돼지가 열두 마리나 되는 새끼들에게 젖을 물리고 있는 사진이었다어릴 적 어머니를 따라 간 이발소의 그림을 그대로 떼어다 붙여 놓은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흡사했다그밖에도 구공탄 무쇠난로와 그 위에서 김을 뿜어내고 있던 누런 알루미늄 주전자 옆구리는 말라붙은 면도 비누거품 자국이 뚜렷했다.

옛날에 본 이발소의 소품들과 너무 닮아 있었다이발소가 개업한지 사십 년이 되었다는 말이 실감이 갔다그동안 아무것도 바 뀐 게 없는 듯싶었다땟국물이 밴 가운을 입은 무뚝뚝한 표정의 육십 사나이그가 이발사다그는 말 대신 얼굴 표정으로 손님을 의자로 안내한다그는 손님이 밀려도 서두르는 법 없이 자기 페이스를 지킨다.

전기이발기보다 가위로 깎기를 고집했다전기이발기가 빠르고 편하긴 해도 스타일이 살아나지 않는다는 것이 그의 주장이다속도뿐만 아니라 헤어스타일 까지도 자기 판단에 따라 손을 놀릴 뿐좀 치켜 깎아 달라든가아니면 살짝 손만 봐 달라고 주문해야 소용이 없다간혹 인민군 장교 머리모양으로 깎아 놓고도 그는 당당하다그러면서 우긴다.

이발은 예술입니다

면도할 때도 마찬가지다세월의 때가 고스란히 밴 가죽 혁대에 칼을 쓱쓱 문질러 댄다그런 다음 한 눈을 가늘게 뜨고 칼날을 응시하거나 자기 머리카락에 살짝 대어보곤 한다수염을 밀 때는 얼마나 철저한지 수염의 뿌리까지 후벼대는 것 같다좀 살살 해 달라고 해 봐야 묵묵부답그의 방식대로 할 뿐이다머리를 감길 때라고 해서 그의 철학과 신념이 바뀌란 법은 없다내 머리를 세면대 바닥에 닿을 정도로 처박고는 머리를 감긴다겨울에는 채 덥혀지지 않은 차가운 물을여름에는 더운물을 솰솰 부어대기 일쑤다찬지 더운지 묻지 않는다그리고는 열 손가락에 힘을 주어 빡빡 긁어댄다굵고 뭉툭한 손가락이 농부의 거친 손 같다고개가 아파서 좀 들라치면 영락없이 찍어 누른다물고문이 따로 없다그때마다 가까운 곳에 이발소가 생기면 다시는 안 오리라 다짐하곤 했건만 어느새 나는 그의 단골손님이 되어 버렸다.

얼마 전에 큰길 건너편에 헤어숍이 생겼다내가 바라던 그런 곳이다신세대 감각이 물씬 난다깔끔한 아크릴 간판에는 <미랑컬 헤어숍>이라 쓰여 있고그 밑에 머리를 약간 뒤로 젖히고 웃고 있는 미인머리카락이 바이올린 선율처럼 멋지게 휘날리고 있다게다가 현관엘이디 조명이 대낮처럼 환하다문을 열면 나를 맞아 주는 건 상큼한 사과향기와 가지런한 치아를 드러내며 웃고 있는 아가씨다그곳에는 이발소 그림 같은 건 없다커다란 거울 위에 멋진 배우의 사진들이 가득 걸려있다내가 빈 의자에 앉으면 허리에 이발 기구를 꽂은 벨트를 찬 아가씨가 웃으며 다가와 나긋나긋한 손길로 내 머리를 만지면서 묻곤 한다.

어떻게 깎아 드릴까요?”

인사를 건네는 폼부터가 월드이발소 주인과는 다르고강약과 완급을 달리해 가면서 가위질하는 소리도 감미로운 음악에 가깝다머리를 감을 때도 그렇다 물고문을 하듯 하는 일은 없다고개를 뒤로 젖히게 하고 물이 차지 않느냐뜨겁지 않느냐 어디 불편한데는 없느냐고 묻는다몸에서 풍기는 향긋한 체취와 그 상냥한 말씨머리를 감다가 어쩌다 눈을 뜨면 아가씨의 웃고 있는 예쁜 눈과 마주친다천국이 따로 없다머리를 감고 나면 드라이어로 말려 주면서 말한다.

머리모양이 참 잘 생기셨어요

적당히 센 머리칼이 중후해 보여서 좋아요

그때마다 내가 꽤 멋진 남자인 것 같은 기분이 들곤 하는 것이다그런데 간혹 이 헤어숍을 두고 그 이발소에 갈 때가 있다술을 마시고 귀가 하는 날이거나까닭 없이 우울할 때 그렇다그리고 그 무뚝뚝한 이발사의 손에 내 머리를 맡긴다그렇게 하고 있으면 도시에 살다 고향에 돌아온 것처럼 마음이 편해지기 때문이다그러면서 어렸을 때 어머니 손에 이끌려 이발소의 나무판대기 위에 앉아 있었을 때가 그리워진다이발이 끝나고 나면 밤송이 같은 내 머리통을 쓰다듬어 주시던 어머니의 따스한 손길그 이발소에서 잃어버린 어린 시절을 찾아내는 건지 모른다낡고 빛바랜 것들이 주는 편안함추억은 그런 것들 속에서만 살아 숨 쉬는 것일까.

 

profil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