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 덮인 산중
늙은 감나무
지는 노을 움켜서
허공에 내어건
홍시 하나
쭈그렁밤탱이가 되어
이제 더는
매달릴 힘조차 없어
눈송이 하나에도
흔들리고 있는
홍시 하나
하늘과 땅 사이에
외롭게 매달린 예수처럼
바람으로 바람을 견디며
추위로 추위 견디며
먼 세상 꿈꾸고 있네
겨울은 아름답고 슬픈 계절이다. 우리는 눈이 내리는 것처럼 서서히 슬퍼지고 성에가 서리는 것처럼 무겁게 흐려진다. 아름답게 슬프기로는, 혹은 슬프게 아름답기로는 시인을 빼놓을 수 없다. 그래서 시인은 겨울을 사랑하고 겨울도 시인을 사랑한다. 가난한 계절이지만 겨울시만은 풍성하다. 그중에서도 이 시는 서둘러 읽어야 할 겨울 초엽의 시다.
시 앞부분은 생명 탄생을 담고 있다. 감나무는 붉은 노을을 그러모아 홍시로 뱉어냈다. 무슨 말일까. 노을은 거대한 피의 주머니, 감나무는 그 생명력의 감응, 마지막으로 홍시는 생명의 표현이다. 세상에 태어난 우리들이 바로 각각의 홍시 한 알인 셈이다. 우리의 붉은 삶은 이렇게 시작되었다.
시인은 점점 우리의 인생을 클로즈업해 간다. 홍시는 어떻게 살고 있나. 홍시는 ‘견딤’으로써 살고 있다. 우리네 삶은 홍시보다 더 즐거운 것이라 생각하고 싶은데 읽다 보면 뜨끔하다. 홍시는 아주 작은 일에 나약하게 흔들린다. 바람과 추위를 피하기보다는 그저 견뎌내야 한다. 이런 구절을 읽고 나니 홍시의 삶이 내 것이 아니라는 말을 하기가 어렵다. 결국에는 홍시가 점점 가엾게 느껴져 응원마저 해주고 싶다.
삶이 ‘즐김’을 바탕으로 한다는 것은 많은 소셜미디어의 문법이다. 그곳에 ‘견딤’의 오늘은 없다. 그래서일까. 잘 즐겼다는 실제 사진들보다 저 홍시 한 알이 더 현실에 가까워 보인다. 세상 곳곳의 홍시들은 오늘도 잘 견디었을까.
나민애 문학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