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향 생각이 나면
시래기국집을 찾는다.
해묵은 뚝배기에
듬성듬성 떠 있는
붉은 고추 푸른 고추
보기만 해도 눈시울이 뜨겁다.
노을같이 얼근한
시래기국물 훌훌 마시면,
뚝배기에 서린 김은 한이 되어
향수 젖은 눈에 방울방울 맺힌다.
시래기국을 잘 끓여 주시던
할머니는 저승에서도
시래기국을 끓이고 계실까.
새가 되어 날아간
내 딸아이는
할머니의 시래기국 맛을 보고 있을까.
지금이야 도시에서 흔히 볼 수 없게 되었지만 예전에는 집집마다 시래기가 흔했다. 무는 잘라 먹고, 이파리랑 줄기만 남으면 그 무청을 엮어 처마에 매달아놓곤 했다. 시래기는 겨울 내내 혹은 봄까지도 좋은 식재료가 되어 주었다. 어머니는 그것을 물에 불리고 빨래하듯 치댄 후에 이것저것 다양한 반찬을 해주셨다. 된장찌개에도 넣고, 고깃국에도 넣고, 들기름 친 나물로도 해주셨다.
그중에서도 이 시는 시래기국(시래깃국)을 소재로 선택했다. 시인은 배가 고프기보다는 마음이 고픈 상태다. 영혼의 허기를 채우기 위해서 그는 자신의 가장 따뜻한 기억을 찾아 나섰다. 시래기국은 할머니가 끓여주시던 유년의 음식, 시인이 아는 가장 행복한 음식이다. 이것은 시인의 실제 위장보다는 마음의 위를 채우기 위해 선택되었다. 시인은 시래기국을 먹으며 할머니도 만나고 딸도 만난다. 아니, 할머니와 딸과 고향을 만나기 위해 시래기국을 먹는다는 편이 정확하겠다. 그러니 이 시에 등장하는 ‘시래기’는 굳이 시래기가 아니어도 좋다. 누군가에게는 무국, 누군가에게는 국수, 누군가에게는 우동이 될 수도 있다.
날이 추워지니 점점 뜨끈한 국물 한 사발이 생각난다. 추운 끝에 몸이 아프다거나, 연말 끝에 마음이 아파지면 국물 생각은 더 절실해질 것이다. 목구멍을 넘어가는 뜨끈함에 안도하면서 우리는 고향이나 연인, 부모나 친구들을 떠올릴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그게 바로 영혼의 음식이다. 영혼의 음식은 제각기 다르지만 언제나 있고, 언제든 필요하다.
나민애 문학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