먹을 것이 없어도
배가 고파도
우리는 살아 나갈 것을
약속합시다.
세상은 그리 아름답지
못하나
푸른 하늘과 내
마음은 영원한 것
오직 약속에서 오는
즐거움을 기다리면서
남보담 더욱 진실히
살아 나갈 것을
약속합시다.
시인 박인환이라고 하면 다방과 미남, 멋과 낭만을 연상하게 된다. 영국에 바이런이 있다면 한국에는 박인환이 있다고나 할까. 훤칠한 장신이었고 누구보다 옷차림에 신경 쓰는 멋쟁이였다고 한다. 밥은 굶어도 커피는 굶지 않는 신조가 있었고, 입담이 좋고 발이 넓어 어디를 가나 환영받는 인사였다고도 한다.
그에 관련된 가장 유명한 이야기는 시 ‘세월이 가면’이 노래로 탄생하는 장면이다. 요청을 받아 박인환이 즉석에서 시를 쓰고, 곁에 있던 작곡가가 바로 곡을 붙이고, 함께 있던 음악가가 바로 노래를 불렀다는 것이다. 문학과 음악이 만나 마법을 부린 듯해서 이 이야기를 들으면 감탄할 수밖에 없다. 이렇게 박인환에 전해져오는 이미지들은 다소 화사하거나 화려하기까지 하다.
그런데 박인환을 멋진 낭만주의자로만 생각하면 시인이 좀 억울해할 수 있다. 박인환의 낭만은 ‘세월이 가면’과 ‘목마와 숙녀’와 같은 시로 대변되지만, 그의 시를 읽다 보면 낭만이 아닌 ‘삶’ 혹은 ‘생명’에 대한 진실함이 중심인 경우가 많다. 그는 단순히 화려한 낭만주의자가 아니었던 것이다. 박인환은 사석에서 농담을 즐겨 했다고 하지만 실제로는 누구보다도 현실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했던 사람이었다. 그래서 오늘은 박인환의 진실한 시편을 소개하고자 한다. 엄청 멋지다는 감탄사는 나오지 않지만 박인환의 맨얼굴을 여실히 드러내는 소박함이 돋보인다. 시인은 고단한 삶을 극복하는 푸른 희망을 이야기한다. 박인환의 낭만이란 기실, 이렇게 따뜻한 희망 위에서 피어났던 것이다.
나민애 문학평론가
박인환(1926~1956)
인제 출신의 시인으로 1945년 경성 제일고보를 거쳐 평양 의학전문학교에 입학하였으나, 광복과 함께 중퇴하고 서울 종로에서 서점 '마리서사'를 운영하였다. 학생 시절부터 시작에 몰두하여 1946년 국제신문에 '거리'를 발표하였고, 1949년 김경린, 김수영 등과 함께 합동시집 '새로운 도시와 시민들의 합창'을 간행하여 도시적 문명과 현실에서 시의 테마와 언어를 찾는 모더니즘의 기수로 각광 받았다. 1949년 경향신문 기자, 1951년 종군기자, 1955년 대한해운공사에 입사하여 상선을 타고 미국을 다녀오는 등 보헤미안적인 체험과 성향으로 이국적인 정서를 한껏 표현한 시가 담겨있는 "박인환 선시선"을 1955년에 발간하였다. 1950년대의 도시적 우울과 감상을 신선하고 리듬감 있는 언어로 노래한 그는 대표작 '목마와 숙녀'에서 서구적 감수성과 분위기를 강하게 풍기면서 전쟁 후의 어두운 현실과 풍속을 서정적으로 묘사함으로써 폭넓은 공감을 불러 일으켰다. 1956년 3월 31세 때 서울 명동에서 술을 마시고 돌아와 심장마비로 사망하였는데, 사망하기 1주일 전에 쓴 '세월이 가면'은 노래로 만들어져 널리 애창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