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실 ― 정한모(1923∼1991)
초롱초롱한 눈들이 한곳으로 빛날 때
교실은 초록색 짙은 향기를 풍긴다
집중해오는 의욕의 초점에서
나의 점잔은 분해되어
꽃송이처럼 환한
하나하나의 동자 안에 자리잡는다
제각기 다른 얼굴이 된 내가
빤히 나를 쏘아보며 묻는 것이다
(…)
지난날
초록빛 짙은 향기로 가득 찼던
어느 교실의 나 같아서
밉기도 귀엽기도 한
내 과거와
이제는 내가 따라갈 수 없는 파릇한 꿈들 앞에서
나의 점잔은 다시 기침이 되어 나온다
정한모 시인은 ‘가을에’, ‘어머니’와 같은 시로 유명하지만 나는 그가 다른 시들로도 기억되기를 바란다. 정한모 시인은 서울대 교수를 지냈고, 장관을 지냈던 학자로 유명하지만 나는 그가 지위가 아닌 인품으로 기억되기를 바란다. 단체사진을 보면 정한모 시인은 키가 땅딸막했지만, 전해오는 이야기로 보면 그는 그늘이 넓은 큰 나무였다. 점잖고 따뜻했다. 사려 깊고 인자했다. 그런 시인의 품성은 시에서 숨길 수 없이 드러난다. ‘교실’이라는 시에는 교육자이며 아버지이며 스승이며 어른이었던 시인의 모습이 잘 나타나 있다.
시의 중심에는 초롱초롱한 눈망울을 지닌 어린아이들이 있다. 그들은 존재 자체로 초록색이고, 초록 향기를 뿜어내는 데다가 푸른 꿈을 지니고 있다. 그런데 문제는 어린아이들이 아니다. 어린아이들은 언제나 푸르렀고, 눈부셨다. 다만 그 소중한 대상을 소중하게 여기느냐, 여기지 않느냐가 문제다. 정한모 시인은 소중한 대상을 귀히 여기는 시들을 주로 썼다. 그중에서도 그는 어린 사람에게 특히나 정중했다. 어린 그분들의 눈동자 앞에서 두려워하는 마음이 이 시에도 있다. 이런 자세가 바로 품위이며 교양이라고, 어린이들 머무는 어느 곳이건 크게 써놨으면 좋겠다.
나민애 문학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