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스트 코로나 시대다.일상까지 한 걸음 남았다더니 잠겼던 문이 하나씩 열린다. 백신의 등장으로 집단면역이라는 안전지대가 형성되었다는 안도감 때문이다. 요즘은 운전면허증처럼 백신 접종을 완료했다는 카드를 지참하고 다닌다. 나라마다 접종 속도가 다르기에 넉넉히 확보한 미국으로 조카의 처형 부부가 페루에서, 여고 동창은 아들의 성화에 못 이기는 척하며 서울에서 백신 접종 원정을 왔다. 친구는 주사를 맞고 나오며 마음이 편안해지고 공기조차 다른 느낌이라 깊게 호흡을 했단다. 무지개가 그려진 스티커를 들고 인증샷을 보냈다.
그 기분을 나도 안다. 몇 달 전이다. 아침에 비가 갠 후 떠오른 무지개를 봤다. 소원을 빌면 이루어진다는 속설이 있어서 그동안 몇 번이나 무지개를 보며 소원을 빌었는지 헤아릴 수 없다. 쌍무지개를 보며 남편과의 재혼을 결정했을 정도로 믿음을 갖는 편이다. 첫 결혼을 이어가지 못하고 혼자가 되어 세상을 다시 배우고 있을 때다. 이혼한 여자를 바라보는 시선은 만만치 않았다. 좌절하고 지칠 때쯤 프러포즈를 받았다. 대답을 미루고 망설이는데 두 가족이 함께 여행을 갈 기회가 생겼다. 마침 겨울비가 내려 세상이 촉촉이 젖어 마음의 빗장이 느슨해졌다.
숙소 정원에 놓인 벤치에 앉아서 그가 결혼 이야기를 꺼내는데 반대편 언덕 위에 무지개가 나타났다. 그것도 두 개가 나란히 피었다. 자연의 계시인가. 힘든 시간에 대한 보상으로 이제 밝은 날이 온다는 의미로 찾아온 것일까. 순간 쌍무지개는 황홀하게 내 마음속으로 불쑥 들어왔다.
그래, 무지개는 약속이다. 그 분위기에 밀려 승낙했다. 몇 달 전에 본 것은 그날 이후로 내가 만난 무지개 중 제일 환하게 나를 감쌌다. 아마도 주위의 친지와 지인들이 코로나 백신 주사를 맞은 소식을 들어서였나 보다. 두세 시간 차 안에서 대기하다 맞았다는 분, 어제 맞고 왔는데 으슬으슬 춥고 마치 감기 걸린 것 같다는 분. 마치 무용담을 이야기하는 것처럼 그 상황을 알리는 밝아진 음성을 들으니 나도 저절로 들떴다.
현재 나온 백신은 효율성과 안전성에 문제점이 제기되고 있지만 그 자체만으로도 심리적인 안정을 준다.팬데믹 기간 동안은 끝이 보이지 않는 긴 터널에 갇힌 듯 답답하고,검은 구름 가득한 긴 장마에 창밖만 바라보는 것처럼 우울했는데 조금씩 그 사이를 뚫고 빛이 스며드는 느낌이다.
접종카드가 내 지갑안에서 그래도 된다고 부추긴다. 묶었던 사랑을 풀자. 반갑게 만나 포옹을 하고 그동안 미뤄 두었던 정을 나누자. 그리운 사람을 만날 수 있다는 희망에 행복하다. 숙제하듯 만나자는 연락과 모임을 알리는 소식이 밀려든다. 전 세계도 이제는 집단면역이라는 무지개가 하늘에 펼쳐질 날이 머지않았겠지. 바이든 대통령은 저개발국에 백신을 보내준다며 외교에 활용한다. 코로나에서 벗어나고 일상이 열리니 소원이 이루어진 셈이다. 그동안 집안에서 움츠리고 있던 어깨를 펴자. 비가 갠 후 나오는 무지개처럼. 백신은 불안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약속을 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