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에 있는 시간이 늘어나면서 나만의 성을 새로 쌓는 재미에 푹 빠졌다. 책 욕심이 있어 사들인 책들이 책장에 숨도 못 쉬고 쌓여 있는데 요즘 한 권씩 꺼내 읽고 있다. 부풀어 오르는 꿈에 이 세상이 다 내 것 같던 사춘기 시절로 돌아간 듯하다. 그 시절 신체의 변화가 오니 이제 여성이라는 생각에 정신적으로도 달라져야 한다는 압박 같은 것이 나를 들었다 놓았다 했다.
어느 날 학교의 등나무 그늘이 있는 벤치에서 책을 읽고 있는 친구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자석에 끌리듯 다가갔다. 옆자리에 앉아서 우두커니 그 책을 바라보았다. 인기척을 느낀 그녀가 미소를 띠며 손에 들고 있던 책을 보여 주었다. ‘폭풍의 언덕’이다. 그날 처음으로 문고판 책과 만났다. ‘제인 에어’는 손에서 놓지 못하고 읽었다. 영어 시간에 책 사이에 끼워서 읽다가 선생님께 들켜서 혼났던 기억이 있다.
니체의 철학 소설인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는 내용을 이해할 수 없어 대충 페이지를 넘겼지만 어설픈 나의 허영을 채워주었다. ‘햄릿’이 있어서 셰익스피어를, ‘노인과 바다’로 헤밍웨이를 알았다. '데미안’으로 전혜린이라는 여성 작가를 선망의 대상으로 받아들였다.
당시 친척 중에 누군가가 책 외판원을 했기에 도와주는 의미로 아버지는 세계문학 전집을 두 질 샀다. 금장을 두른 채 거실의 책장에 전시용으로 놓였기에 손도 대지 않았다. 한 자리라도 비면 안 되는 줄 알았다. 그림의 떡이었는데 책의 매력에 푹 빠진 나에게 아버지는 책장의 문을 활짝 열어주셨다.
학창 시절 내가 부린 사치는 책을 하나씩 사는 일이었다. 가끔 학교 근처의 분식집에서 친구들과 수다를 떨다가 옆 테이블에 근처 남학교의 학생들이 있으면 은근슬쩍 가방에서 책을 꺼내 내 앞에 올려놓기도 했었다. 나 문학소녀야. 콧대를 세웠다. 허기 들린 듯 한 권씩 모으면서 내 몫의 언어로 소화하려 했다. 고등학생 때에는 속독을 배워 종로에 있는 서점들을 전전하며 문이 닫힐 때까지 몰래 읽기를 게임처럼 즐겼었다.
미국에 이민 온 후 삶에 치여 일하랴, 자식 키우느라 책과의 거리가 멀어졌다. 서점이 한인타운에 한 군데 있었는데 가끔 지나치며 들릴까 말까 고민하다 ‘읽을 시간도 여유도 없으니 사치야’ 하며 포기했었다. 어느 날 훅하고 치고 올라온 더운 바람에 정신이 들며 허수아비 같이 텅 빈 나를 발견했다. 다시 책을 붙잡으며 그 안에서 세상을 만나고 소 우주를 찾았다.
그리고 이제 글을 쓰고 내 이름을 단 책을 출판하며 떼려야 뗄 수 없는 사이가 되어버렸다. 성장기에 나를 키워준 문고판 책은 문학을 향한 나의 마중물이자 내 삶의 터닝포인트다. 이제 집에서만 지내야 하는 시기에 게걸스럽게 삼켜버렸던 열정을 차분히 끌어올리려 한다. 다시 내 앞에 놓인 책들, 책장과 책상에 쌓여 내 손을 기다린다. 행복하다.
브라보!
Thumbs u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