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를 알리는 군악대장 

 

 

  하얀 돌맹이들로 가득 채운 화단 가운데에 네모난 검은 벽돌로 KING이라는 글자를 그리며 놓여 있다. 그 뒤로 '영원한 불꽃(The Eternal flame)'이 둥그런 청동 화로 안에서 파랗고 붉은 불길이 활활 하늘로 피어올랐다. 영원히 꺼지지 않고 꿈과 희망을 후세에게 전해야할 의무를 부여 받았기 때문이다.

 

  그 위로 올라가니 기다란 계단 식 연못이 있다. 뒷쪽의 벽에는 마틴 루터 킹의 일대기가 사진과 설명으로 전시 되었다. 연못은 그의 평소 의지처럼 비폭력 사랑의 정신으로 잔잔하고 투명한 물결을 이뤘다. 그 가운데 섬처럼 떠 있는 킹 목사와 그의 아내 코레타 스콧 킹의 묘는 신비스러웠다. 그의 비석에는 드디어 자유, 전능하신 하나님, 제가 마침내 자유로워졌나이다!’라는 문구와 부인은 '믿음 소망 사랑 중 제일은 사랑'이라는 성경 구절이 세겨져 있다.

마틴 루터 킹 주니어는 미국의 침례교 목사이자 인권 운동가, 흑인 해방 운동가, 권리 신장 운동가, 기독교 평화주의자로, 미국내 흑인의 인권 운동을 이끈 개신교 목사들 가운데 한 사람으로 꼽힌다. 1964년 노벨 평화상을 받았다.

 

  베트남 전쟁을 반대했던 그는 196844일 멤피스의 한 모텔 2층 발코니에서 미리 잠입해 있던 테네시 출신 백인 우월주의자이자 인종차별주의자인 제임스 얼 레이가 쏜 총에 머리를 맞고 죽었다. 킹목사가 정부내 비밀조직과 마피아 등 거대한 음모의 희생자라고 법원의 배심원들은 평결을 내렸지만, 단독 범죄를 주장했다.

 

  킹목사는 모든 인간의 공통 분모인 죽음이 닥쳐오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는다고 했다. 자신은 죽은 뒤 돈이나 재물도 남기지 않을 것이라고 했는데 웅장하고 화려한 묘지 안에 있는 킹목사는 그 크기만큼 불편하지 않을까. 층층이 흘러내리는 물속에 인종과 피부색과 배경을 가진 모든 국민이 자유와 민주주의의 미국에서 함께 나누며 살자는 그의 꿈이 담겨 있겠지.

 

  스위트 어번가의 한 블록 전체가 역사 지구로 지정되었기에 걸어 올라오다 보면 에벤에셀 침례교회가 있는데, 예배당 안에는 킹 목사의 설교를 틀어놓았다. 장미꽃이 색색으로 피어 있는 곳에 기도하듯 양손을 깍지 낀 모양의 하얀 탑이 마틴 루터킹 사적지라며 반겼다. 띠를 두르듯 긴 벽에 화려한 색상의 벽화가 있다. <Now(freedom)> <Now(Job for all)> <I AM A MAN> 이라는 피켓을 든 흑인들이 결연한 얼굴로 서 있고 가운데에 킹 목사가 연설하는 모습이 그려졌다. 20만 명의 시민의 참여를 이끌어 낸 그를 상징적으로 표현 한 듯했다. 그 옆쪽으로 길게 난 길에 발자국 동판들은 '국제 민권 명예의 전당' 미국을 비롯 전세계 억압받는 민중들의 인권 보장을 위해 헌신한 위인들이라고 한다.

 

  박물관 앞에 비폭력 운동을 주도했던 허름한 옷에 지팡이를 들고 간디의 동상이 서 있다. 비폭력적인 사회변혁을 찾아가는 그에게 빛을 던져준 등대였다. 간디의 완벽한 정직성과 헌신성에 그를 따르게 됐다고 말했다. 킹 목사는 헨리 데이비드 소로의 <시민 불복종>에서 많은 영향을 받았다. 소로는 6년 동안 인두세를 내지 않아 체포되어 감옥에 들어간 적이 있다. 노예제도에 혐오감과 불의를 지원하는 전쟁에 반대 의견을 갖고 있으면서도 자금을 보태거나 그것에 쓰일 세금을 내야하는데 분노했다. 감옥에 가더라도 전체 집단을 발효시킬 효모가 되길 원하는 비폭력 저항주의자였는데 소로도 간디와 나란히 서 있을 자격이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도덕적 인간이라면 불평등에 순응하지 말고 대응해야 한다는 그는 꿈은 몽고메리 버스 보이콧 운동으로 시작됐다. 앨러배마 주 몽고메리에서 사는 로사 파크스 여인이 버스에서 흑인 전용 좌석에 앉았지만, 백인 운전사가 백인이 앉을 좌석이 부족하니 자리를 양보할 것을 요구했다. 그녀는 버스기사의 요구를 거절했고, 결국 경찰에게 연행됐다. 킹목사는 자신의 권리를 위해 일어설 줄 아는 용기를 갖고 단결하자며 버스를 이용하지 말자는 운동을 펼쳐 흑인들의 적극적인 참여로 성공을 거두었다. 당시 비가 오는데 걸어가는 흑인 할머니에게 차에 타기를 권했지만, 나 자신을 위해 걷는 것이 아니라 자식들과 손자들을 위한 일이라고 답할 정도였다.

 

  박물관 안에는 마틴 루터 킹의 역사가 담겨 있다. 교회에서 설교할 때 그의 단호한 입매와 민중 앞에서 연설하며 불끈 쥔 주먹은 거부할 수 없는 리더쉽을 보여줬다. 장례식 때 사용했던 마차의 나무은 닳고 닳아 금방이라도 사그러질 것 같다. 당시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그의 마지막 길을 함께 했는지 평소에 그에 대한 사람들의 존경이 느꼈졌다. 군데군데 당시의 시대상을 보여 주는 사진이 있다. For White Only. 백인 전용이다. 동물원도 백인과 흑인이 방문할 수 있는 날이 다르고 공용의 물을 마실 수 있는 간이식 수도도 갈라져 있다.

창으로 들어오는 빛을 향해 한 방향으로 걸어가는 사람들을 실제크기의 인형을 세워 놓았다. 어른, 아이, 흑인, 백인, 장애인, 비장애인 할 것 없이 한 방향으로 나가는데 그 씩씩한 발걸음에 나도 그 뒤에 서 봤다. 셀머에서 몽고메리까지의 투표권을 얻으려고 걷던 시민권 항의자들이 아닌지.

 

  196325만 명의 관중이 운집한 가운데 유명한 <I have a Dream> 이라는 연설을 한 곳을 재현해 놓았다. 조지아주의 붉은 언덕에서 옛 농장주의 자식과 옛 노예의 자식이 함께 탁자에 앉는 것으로 시작되어 피부색으로 평가 받는 것이 아니라 인격으로 평가받는 세상이 오길 바란다는 내용이다.

 

  킹목사는 위대한 도덕적 힘과 웅변으로 아메리칸 드림을 심어주었다. 그 꿈은 오늘이나 내일 이루어지지는 않을 것이지만, 마음속에 간직하고 노력하는 것 자체가 훌륭하다. 죽은 후에 헌신적인 인생을 남기고 싶어 했다. 정의를 알리는 군악대장으로, 평화를 알리는 군악대장, 평등을 알리는 군악대장으로 불러 달라고 했다.

 

  그는 하나님께 20세기 후반에 몇 년간 살 수 있게 해달라고 기도했다. 그때와 지금은 무엇이 달라졌을까. 킹 목사가 지금의 미국을 본다면 뭐라고 할까. 자유를 원한다던 그의 외침이, 그의 노력과 꿈이 박물관 안에 메아리친다. 언젠가는 그 약속의 땅에 도착하겠지만, 아직 우리에게는 용기가 필요하다. 갈 길이 멀다. 인종간의 피부색간의 불화는 좀처럼 그 틈이 좁혀지지 않는 것은 왜 일까.

 

 

 

 

  박물관 벽에 붙은 사인처럼 이끌어줄 용기있는(Courage to Lead)  군악대장이 필요 시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