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땀 한 땀 정성스레

 

 

한 땀 한 땀 정성스레 바느질한다. 아들과 그의 여자 친구인 미키에게 줄 모자를 만드는 중이다. 병원 응급실에서 일하는데 코로나바이러스가 퍼지면서 병원의 물품이 부족해 모자와 마스크 지급이 제대로 안 된다고 했다. 환자들을 대면하는 일선에서 일하는데 장비가 부족하다니 답답했다. 모자를 만들어 줘야겠다. 집안을 뒤져 헝겊을 찾았다. 인터넷을 검색해 보고 거기에 아이디어를 보태 나름대로 도안을 만들었다. 펜으로 도안을 천에 그리고 가위로 잘랐다. 모양이 어색해 다시 뜯어내고 또 바느질하기를 반복했다. 손으로 하니 삐뚤빼뚤 간격이 일정하지 않고 속도도 느렸다. 전에는 한 번에 꿰던 바늘귀도 돋보기를 써야 끼울 수 있고, 방심한 틈을 타 손가락을 찌르는 바늘의 공격에 온몸에 전기가 오르듯 움찔하며 아프기도 했다. 오랜만에 하는 바느질에 저녁식사 준비를 잊을 정도로 빠져들었다.

중학교 가사 시간에 블라우스를 만들던 기억이 났다. 시침질 공그르기 박음질 등 기본기를 익힌 후에 치수를 재고 옷본을 그렸다. 포플린 천을 사다가 블라우스를 만드는 게 숙제다. 나는 연둣빛 체크무늬를 골랐다. 봉긋한 퍼프소매와 동그스름한 컬러는 양쪽에 대칭되게 만들기가 어려워 몇 번을 고치다 결국 어머니의 도움으로 완성했었다. 한복도 한지에 축소 본으로 만들었고, 원형 틀에 고정해 동양 자수와 십자수도 놓았다. 레이스 뜨개, 대바늘로 목도리와 벙어리장갑도 만들어 사용했었다. 그중 힘들었던 것은 한복 동정 달기였다. 저고리의 끝과 맞추기가 쉽지 않았고 여러 번 만지면 하얀 동정에 때가 타거나 실수로 구멍을 내수도 있기에 조심스러웠다. 가사 숙제가 잘 안될 때는 저녁 식사 후 어머니가 반짇고리를 열 때를 기다렸다.

눈썰미가 좋고 솜씨가 뛰어난 어머니는 손을 놀리는 시간이 없었다. 집안일을 도와주는 식모가 있어도 자식 일곱을 키우는 일이 항상 바빴다. 집에 들고나는 친척들도 챙겨야 했고, 아버지가 동네의 유지로 이런저런 행사의 주최자가 되기에 뒷바라지로도 벅찼다. 좀 쉬면 좋으련만 그 짬짬이 뜨개질에 바느질까지 해야 직성이 풀리셨다.

한창 자라는 극성스러운 아이들의 구멍 난 양말에 전구 알을 넣어 꿰매고 넘어져 구멍이 난 바지의 무릎에는 여러 모양의 헝겊을 덧대어 가렸다. 실내화를 넣는 신발주머니와 학교에서 대청소할 때 쓸 걸레 그리고 가을 운동회에 쓸 오자미는 어머니의 손을 가치면 그냥 뚝딱 튀어나왔다. 아버지의 털 조끼를 풀어내 모자로 변신하기도 했고, 여름이면 모시 한복으로 멋을 부리시는 아버지 때문에 손에서 바늘이 떠날 날이 없었다. 귀가가 가족들을 기다리는 부엌의 밥상에는 조각조각 이은 상보가 온기를 붙잡고 있었고 베개에는 엄마가 수놓은 꽃과 새가 편안한 밤을 지켜 주었다. 그 시절 어머니는 나에게 만능 해결사이자 마술사였다.

바느질하며 어머니를 떠 올린다. 감기는 눈을 비비며 겹실을 꿴 바늘이 어머니의 손끝에서 사랑이 되어 우리의 삶을 풍요롭게 만들었다. 물자가 흔하지 않던 시대에 재활용하며 자식들을 깔끔하고 단정하게 입히려는 마음이었다. 계절에 따라 이불도 바꿔 잠자리를 편하게 해주는 정성이었다. 한 땀 한 땀이 헌신이다. 그 사랑에 지금의 내가 있다. 이제 나는 자식을 위해 바느질을 한다. 내가 만든 모자를 쓰고 아픈 환자를 돌보는 일에 응원해 주고 싶다. 또 불안한 시기에 일선에서 일하는 자식을 병균으로부터 머리를 보호해 주는 엄마의 마음을 담는다. 빼어난 솜씨도 아니지만, 어머니의 마음을 이어받았기에 바늘을 잡으면서 흥분했다.

조각을 맞추고 바느질을 하는 동안 코로나바이러스로 매시간 장식하는 뉴스로 불안하던 마음이 가라앉았다. 갑작스러운 일로 집안에서만 지내는 행정명령으로 자유를 빼앗긴 상실감과 사회적 거리 유지로 불통의 시간으로 줄 끊어진 연처럼 방황했는데 뭔가 할 일을 찾았다. 분주함 속에서 여유를 가지는 것이 절실한 소망이었던 적도 있었다. 이제는 멈춰버린 시간을 바느질감으로 생동감 있게 꿰매야겠다. 손을 놀리지 말고 한 땀 한 땀 바느질하며 정성으로 자식 사랑을 피우자. 새로운 것을 창조하는 시간을 내 것으로 만들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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