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여자의 이야기

 

그녀는 약을 샀다. 의사의 얼굴을 마주볼 용기가 없어서 전화로 부탁을 하고 근처의 약국으로 찾으러 갔다. 약병을 열어보니 겨우 일곱 알밖에 없다. 아마도 그녀가 처한 사정을 어렴풋이 알고 있는 의사는 만약을 대비해 일주일치만 준 것이리라. 턱 없이 부족했지만 아직 시간적인 여유는 있다. 마켓을 돌아다니며 일반 수면제를 사 모았다. 돈이 아까워서 싼 것으로 집어 들며 그녀는 코웃음을 친다. 이 상황에서도 돈이 아깝다니. 작은 아스피린 병을 가득 채우고 나니 마음이 든든했다.

며칠 전부터 그녀는 밤이 되면 더욱 바삐 움직였다. 모두가 잠든 틈에 살금살금 부엌으로 가서 냉장고 안을 청소했다. 누군가 열어보아도 흉잡히지 않을 정도로 치우고 나니 마음이 흡족했고, 옷장 안도 정리를 했다. 이민 올 때 가져온 커다란 두 개의 가방에 옷을 차곡차곡 담았다. 맨 위에는 분홍색 공단 한복을-원앙새가 곱게 수 놓여진-올려놓았다. 한국의 친정식구들 앞에서 결혼식 겸 약혼식을 치르면서 입었던 것이다. 결혼에 대한 환상과 미국에 대한 동경에 그녀의 가슴을 부풀어 더 없이 행복한 순간을 담고 있는 옷이다. 또 하나에는 언제인가 크리스마스 때 아이들 할아버지가 사 주신 진남색 스웨터로-그분의 사랑을 많이 받았고, 많이 의지했기에 아끼던 것- 덮으면서 대강 정리를 끝냈다.

아이들은 교회에서 주관하는 여름 캠프에 일주일 동안 갈 것이다. 그날 밤 그녀는 아이들 아빠와 마주 앉아 진지하게 두 사람의 문제와 미래에 대해 대화를 나누어 보기로 마음먹는다. 그래도 서로의 마음이 열리지 않으면 그동안 모아 두었던 것을 한 입에 털어 넣으므로 삶을 마감하려고 한다. 최악의 경우가 발생해도 모든 처리는 아이들이 집에 돌아오기 전에 마무리 되리라는 것이 그녀의 계획이었다.

그녀는 누구보다도 잘 살 자신이 있었다. 미국에서 시댁식구들과 정붙이며 아이들 낳고 평범하게 사는 것이 행복이라며 스스로를 다독였다. 하루에 14시간 일을 해도 이민초기에는 누구나 힘들게 시작해야 된다고 생각하며 불평하지 않았다. 그러나 언제부터인지 틈이 벌어지기 시작한 부부간의 갈등은 허무를 불러왔다. 자존심이 무언지 골이 깊게 파여 갔다. 풀지 못한 채 쌓이기만 한 스트레스와 경제적인 압박이 겹쳐지자 남자는 술에 의지했다. 여자는 안팎으로 밀려오는 고통을 안으로 삭히다보니 우울증에 시달렸다. 힘들어 주위에 도움을 청해보기도 했지만 어쩌겠는가. 집안일이고 부부간의 일이니 누구도 명쾌한 답을 주지 못했다. 나름대로 여러 방법을 취해보고 노력을 했지만 허우적댈수록, 발버둥 칠수록 절망의 늪으로 점점 침잠 되었다. 그녀는 절망했다.

이혼을 생각 안 해 본 것은 아니란다. 겁이 났단다. 이혼녀라는 굴레가 사회의 편견으로 보이지 않는 손가락질되어 그녀에게 향할 것이 겁났다. 스스로가 실패자로 살아가야하기에 두려웠단다. 양가의 가족들이 혼란스러울 것에 미안했고, 특히 사랑하는 아이들이 불안해 할 것이기에 안쓰러웠다. 결혼 후, 일에 휘둘린 채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자신이 불쌍했다. 사는 게 죽는 것 보다 못하다는 생각이, 이렇게 살아서 무엇 하나 차라리 죽는 게 속편하지. 그냥 그녀 혼자만 자는 듯 이 세상에서 사라지면 모든 일이 자연스레 안정되리라는 부정적인 결론을 내렸다. 집안도 정리되고 약도 충분히 모으고 나니 오히려 마음이 가벼웠다. 그녀는 근래 드물게 환한 얼굴이었다.

그 날의 해가 밝았다. 아이들은 아무것도 모른 채 유난히 꼬옥 끌어안는 엄마의 품을 답답하다며 밀치고 신나게 여행을 떠났다. 시간이 빨리 가는 듯 느리게 오는 듯 느껴지는 아침나절에 한통의 전화가 걸려왔다. 세상에 살고 갔다는 마지막 몸부림으로 목젖까지 올라온 슬픔을 시로, 하늘에 먼저 가 계신 아버지가 그리워 행복했던 어릴 적 추억을 수필로 옮겨 한 문학단체에 보냈었다. 시와 수필이 동시에 신인상으로 뽑혔단다. ‘어어…’하는 신음이 잠시잠깐 그녀의 머리카락을 잡아 당겼다.

오후에 지인에게 전화가 왔다. 할 이야기가 있으니 일을 마치고 자신의 집으로 꼭 와야 한다는 부탁이었다. 거절을 하니 전화기가 몸살을 앓을 정도로 계속 연락이 왔다. 나중에는 간청에 협박까지 하기에 귀찮아서 술에 취한 아이들의 아빠를 들춰 세워 그 집으로 갔다. 눈도장만 찍고 바로 나오려는데 어딘가로 전화를 걸더니 반강제로 수화기를 그녀에게 떠안기더란다.

낯설지만 거절할 수 없는 음성이 들려왔다. 만나 적도 없는 사람인데 기도 중에 자꾸 그녀의 얼굴이 떠올라서 억지를 부렸다면서 울먹이더란다. 자신의 고통을 헤아리고 흘리는 그의 눈물이 한 가닥 지푸라기가 되어 늪에 빠진 그녀를 잡아 당겼다. ‘어어 이게 아닌데……. 순간 어떤 따스한 손길이 등을 쓰다듬는 느낌이 들더니 그동안 쌓였던 고통이 통곡되어 그녀의 온몸으로 쏟아져 나오더란다. 그렇게 그녀의 계획은 두 통의 전화로 무너져 내리고 깊디깊은 늪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6년이 지난 지금, 그녀는 잘 살고 있다. 힘든 고비를 넘기고 이혼이라는 길을 택해 홀로서기를 했다. 죽음보다 못할 것이라 생각했는데 무슨 밭에 굴러도 이승이 났다며 웃는다. ‘그때 만약에…….’라는 단서를 붙인다면 얼마나 많은 것을 잃었을까. 자신의 키를 훌쩍 뛰어넘은 아들이 어깨동무를 하면서 능글맞게 던지는 농담에 눈을 살짝 흘리며 받아 넘기는 즐거움을 느끼지 못할 것이다. 팔십이 넘으신 엄마가 햄버거를 드실 때 입가에 뭍은 빵 부스러기를 떼어 내는 다정한 모녀의 모습을 그려내지 못했을 것이다. 언니가 만든 닭볶음탕을 손가락 쪽쪽 빨면서 맛있게 먹을 수도 없었을 것이다. 얼마 전 친구가 선물한 새 전화기의 기능을 익히느라 짧은 영어 실력으로 안내책자를 읽어내느라 끙끙대는 수고는 안 해도 될 것이라고 농담처럼 말한다. 세상은 살 만하다고 살아내니 더 살맛이 난단다.

그녀는 아침이면 약병을 연다. 건강이 행복의 지름길이라며 친구가 비타민을 여러 병 사 주었기에 열심히 챙긴다고 한다. 더불어 감사라는 영양제를 하루에 최소한 세 알 이상을 섭취하니 하루하루가 즐겁다고 했다.

“감사하세요. 그게 최고예요. 돌아보면 얼마나 감사할 일이 많은지 몰라요. 그리고 주위를 돌아보세요. 당신의 손길이 필요한 누군가가 곁에 있을지 누가 알아요.”

어느 집안이나 뚜껑을 열어보면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거기서 거기라는 말이 있다. 그녀만의 이야기가 아닐 수 있다. 고민이 안으로 쌓이고 그것이 생각을 극단적으로 치닫게 해 또 다른 불행을 불러온 경우를 주위에서 보아 왔다. 그 어느 여자는 나 자신의 모습일 수도 있다. 그 누군가가 지금 겪고 있는지도 모른다.

열심히 사는 그녀에게 박수를 보내며 용기를 북돋운다. 우리에게는 ‘내일’이라는 가보지 않은 그날이 항상 대기하고 있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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