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아이는 지금 어디에

 

오늘 신문기사를 읽다가 너무나 황당해서 그만 피식하고 헛웃음이 새어 나왔다. 위스콘신 주 세보이칸 카운티 셰리프 국 마약 단속반이 19살 된 한인 양모 씨를 구속했다. 23살 된 다른 남성과 팀을 이뤄 가짜 마약을 제조하고 판매한 협의다. 인근 레이크 미시간 암석을 가루로 만들어 메탐페타민이라 -쉽게 아이스 혹은 히로뽕- 불리는 마약이라고 속여 12.9그램을 2천2백 달러에 팔았다. 유죄가 인정될 경우 그는 6년 6개월의 실형을 받게 된다. 현대판 봉이 김 선달인가. 어찌 돌을 가루로 만들어 팔 생각을 했을까. 엉뚱한, 아니 기발한(?) 아이디어를 생산적인 일에 활용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피지도 못하고 병든 젊은이의 미래가 안타깝다.

10년 전 우연히 셰리프 국 마약단속반Narcotic Squad의 작전을 참관했었다. 그 날 마주친 남자아이 눈동자가 가끔 떠오른다. 세리프국의 바로 맞은편에서 상점을 운영하고 있었기에 많은 경찰들이 드나들었다. 마약단속반 중에 성격이 털털한 존과 친하게 지내면서 그 팀원들과는 농담도 주고받고 생일에 초대도 받으며 스스럼없이 지내게 되었다.

소탕작전을 나가지 전에 그들은 많은 시간 잠복근무를 하며 탐색전을 펼친다. 어떤 날은 집배원 유니폼을 입고 나타나고, ○○정비라고 쓰인 기름때에 절은 푸른색 셔츠를 입기도 한다. 한번은 반바지와 구겨진 티셔츠 차림의 꾀죄죄한 모습으로 나타나 맥주를 사더니 몸 여기저기에 뿌렸다. 빈 맥주 캔을 누런 봉투에 담아 달라고 했다. 작전 나가는데 의심 받지 않고 접근하기 위해 위장을 한다는 것이란다. 그럼 그렇지.

작전 나갈 때 같이 가자고 농담처럼 말했다. 어느 날 이번 작전은 간단하니 데려가겠단다. 단, 불상사나 사고가 발생했을 시 모든 책임은 본인이 지겠다는 각서에 사인을 해야 한다는 단서가 붙었다. 위험하지 않을까 걱정도 되었지만 호기심이 발동했다. 내심 이런 날이 오지 않을까하는 기대감도 있었기에 승낙을 했다.

드디어 결전(?)의 날이 되었다. 약속시간에 그들의 사무실로 갔다. 전투복 차림에 안전조끼까지 차려 입은 존과 팀원들을 대하는 순간 내가 지금 무슨 일을 하려는 것인가 실감이 났다. 발길을 돌리고 싶었다. 멸치라는 별명의 웨인이 칠판 앞에 서더니 한 묶음의 서류를 모두에게 돌리며 브리핑을 시작하였다. 6개월 동안 관찰한 경과와 오늘 체포할 마약 판매상의 신상에 대한 자료가 있었다. 마약상의 집과 주위의 환경을 그린 칠판에 도주경로로 예상되는 지점들을 설명하고, 만약을 대비해 가까운 병원의 위치까지 알려 주었다. K-9 소속 마약 탐지견과 뒤를 받쳐 줄 순찰 팀, 그리고 본부에서 나온 감찰관까지 각자가 할 일들을 숙지하고 정확한 출발 시간을 확인한 뒤 해산했다.

여자경관에게 빌려온 안전조끼와 헬멧을 나에게 입혀 주었다. 어찌나 어설픈지 조금 전의 긴장감은 간데없이 나를 빙빙 돌려 세우며 모두 웃음을 터트렸다. 평범한 푸른색의 밴Van은 사람들이 앉을 수 있게 ㄷ자 모양의 의자와 무전시설이 갖추어 있었다. 습관인지 오늘의 작전을 주도한 웨인은 왼쪽 다리를 가늘게 탁탁 털었다. 평소 느긋한 존도 꽉 쥔 장총을 쉴 새 없이 손가락으로 토닥토닥 두드렸다. 고르지 못한 숨소리가 바닥에 깔린 카펫 위로 내려앉고, 지직대는 무전기의 단발 음만이 혼자 떠들고 있다. 침을 삼키면 그 소리에 고요가 깨질까봐 입 안 가득 머금었다.

저들은 지금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삶과 죽음. 매번 작전을 나갈 때마다 생명을 걸어야 하는 그들이 내쉬는 무거운 숨이 천장에 얼룩으로 남아 있다. 사랑하는 사람들의 얼굴을 그려보는 이들도 있겠지. 동료들의 안전을 걱정할 수도 있겠구나. 서로 눈 맞춤을 피한다. 계획대로 착착 진행되어 지난 몇 달의 노력이 헛수고가 되지 않아야 한다는 압박감이 넓적다리에 두룬 리볼버 권총에 장전되어 있는지도 모른다. 말을 잃어버린 혀가 돌돌 말리고, 심장이 점점 옥죄어 온다. 소변이 마렵다. 화장실에 가고 싶다.

15분 정도 달린 것 같다. 차가 멈추었다. 마틴이 문을 부술 때 쓸 굵은 원통 모양의 램Ram을 챙겼다. ‘자, 하나, 둘, 셋’ 신호와 함께 문을 여니 모두 신속한 동작으로 뛰어 내렸다. 썰물이 휩쓸고 간 차 안에 나 혼자 덩그러니 남겨졌다. 무릎을 맞대고 앉아 있다가 갑자기 넓어진 공간이 낯설고 두려웠다. 기다리는 동안 아무 사고 없이 모두 무사하기를 들숨 날숨 때마다 기도했다.

시계바늘은 10분쯤 지났다고 보여 주는데 마음으로는 10년이 흐른 것 같다. 존이 웃는 얼굴로 차 문을 열고 비디오카메라를 챙겼다. 반가움의 눈물을 대롱대롱 매단 채 잔뜩 얼어 있는 나를 향해 “Are you ready?”하고 물었다. 그를 따라 어느 집 안으로 들어섰다. 벌써 마약 탐지견과 단속반들이 구석구석 뒤지고 있었고, 거실에는 일가족처럼 보이는 다섯 명이 소파에 앉아 있었다. 존은 그들을 카메라로 촬영하며 단서를 얻어 내기 위한 질문들을 예리하게 던졌다.

그중에 작은 아들과 비슷한 15살 정도의 남자아이와 눈이 마주쳤다. 움찔한 나와는 달리 놀라거나 당황한 기색도 없는 무표정한 얼굴이었다. 그의 눈은 텅 빈 듯 아무런 감정도 느낄 수 없었는데, 너무나 생소해 내가 어디에 와 있는지 잠시 잊게 만들었다. 무엇이 저 아이를 저토록 무심하게 만들었을까. 원망이나 두려움도 없는, 아니 그 나이에 가질 수 있는 반항이나 호기심도 찾을 수 없었다.

마약 탐지견이 요란스럽게 짖는 소리에 모두의 관심이 집중되었다. 부엌의 캐비닛 안쪽에서 비닐로 돌돌 말린 벽돌 크기의 뭉텅이 두 개를 찾아냈다. 압축된 마리화나가 들어 있었다. 시리얼 상자 안에서 여러 개의 작은 봉투에 나누어 담긴 가루로 된 마약도 찾아냈다. 부엌의 식탁에는 마약을 하는데 사용하는 도구들이 -작은 저울, 화려한 무늬의 유리 램프, 유리대롱, 면도칼, 마리화나를 말아 피울 수 있는 직잭 종이, 백반가루- 음지에서 양지로 옮겨진 채 놓여 있었다. 권총 두 자루와 여러 종류의 잭나이프 등도 나란히 누워 있다. 그들이 잡고자 했던 용의자는 집에 없었고, 만삭인 부인만 참고인 자격으로 경찰서로 데려갔다.

증거물을 압수하고 돌아서는데 그 아이의 서글프도록 무심한 눈동자가 발길에 채였다. 어떤 삶을 담고 자랐으며, 어떤 모습으로 살아갈까. 오늘의 이 상황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삭힐까. 한창 꿈에 부풀어 있을 나이에 삶을 달관한 듯, 무관심한 아이의 태도는 앞으로 그를 어디로 이끌 것인가. 뒤집혀지고 헤집어진 그 집안의 옷장과 서랍만큼이나 한 가정을 헝클어트린 마약의 손길이 섬뜩했다.

소기의 목적을 달성한 마약단속반 팀이 나를 가게로 데려다 주었다. 두 아들은 걱정을 했는지 반가운 눈길로 먼저 반겨주었다.

“대마초가 두 덩어리 나왔는데 돈으로 치면 엄청난 액수래.”

어쩌나. 속물근성이 먼저 튕겨져 나오는 바람에 그날의 무용담은 방향이 어긋나 버렸다.

가끔 마약에 관련된 소식을 접할 때면 그 아이가 생각난다. 어디서 무엇을 할까. 어떻게 살고 있을까 궁금해진다. 아니, 걱정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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