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박소리가 들려준 나의 14살

 

                                                              이현숙

 

지붕을 두드려대는 소리가 요란하다. 후드득 툭툭. 어둠이 슬금슬금 자리 잡는 초저녁, 창밖에는 우박이 내리고 있다. 비가 드문 엘에이에 얼음 덩어리가 쏟아지다니. 신기해서 밖으로 나왔다. 차가운 기운을 느낄 틈도 없이 양 손에 담자마자 스르르 녹아버린다. 하얀 우박이 뒤덮은 잔디는 봄기운 가득하던 초록 빛깔을 감추고 잔뜩 어깨를 움츠렸다.

후드득 툭툭. 처마 밑에 서자 양철 물받이에 총알처럼 부딪히는 소리가 귓전을 때린다. 아, 귀에 익은 소리. 14살이었던가. 그때도 머리 위에서 이런 소리가 들렸다.

 

여자 중학교에 막 입학을 했던 3월 중순, 아직 학교에 적응도 못하고 있을 때였다. 교무실에서 담임선생님이 나를 찾았다. 혹시 꾸지람이라도 듣게 되는 걸까, 선생님 앞에 양손을 꼭 잡고 섰다. 손바닥 안에 땀이 고였다. 선생님은 걸 스카우트가 적성에 맞을 것 같으니 부모님과 상의를 해 보라며 입단 원서를 건네주었다.

 

교실로 돌아오자 친구들이 내 주위로 몰려들었다. 나는 원서를 내보이며 어깨를 으쓱거렸다. 당시 걸 스카우트는 여학생들에게 선망의 대상이었다. 멋진 단복을 입고 태극기를 게양하는 모습은 꿈 많던 사춘기 여학생들을 사로잡았다. 나는 국기에 대한 맹세를 외우면서도 태극기를 올려다보는 것이 아니라 그들을 바라보곤 했다.

 

걸 스카우트의 입단 기회는 누구에게나 주어지는 게 아니었다. 생활 여건이 어느 정도 풍족한 이들이 신청을 할 수 있었다. 당시는 학기가 시작할 때마다 생활환경 조사가 있어, “집에 전화 있는 사람은, 텔레비전 있는 사람은,” 하는 선생님의 물음에 공개적으로 손을 들어야했던 때였다. 아마도 나의 생활기록부에 아버지가 6년 내내 육성회장을 한 것이 선생님의 눈에 띄었을 것이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은 구름에 두둥실 떠가는 기분이었다. 그동안 오빠가 보이 스카우트로 활동하는 모습을 보면서 얼마나 부러웠는지 모른다. 캠핑, 잼보리, 영어단어들이 오빠의 입에서 나올 때마다 마치 다른 세계를 대하는 것처럼 신기했었다. 단복과 장비들을 사들일 때마다 눈여겨보곤 했었다. 오빠가 하는 것이니 당연히 나도 시켜줄 것이라 생각하고 있었다. 엄마는 찬찬히 읽어보던 원서를 내 앞으로 도로 밀며 고개를 저으셨다.

“네 작은 오빠를 시켜보니 돈이 많이 들어가더라. 둘은 무리야.”

내 눈엔 금세 눈물이 고였다.

“엄마는 아들만 좋아 해. 난 항상 뒷전이구.”

 

평소 엄마는 두 살 위인 작은 오빠에게 갖은 정성을 들였다. 그에 비해 나는 뒤로 내쳐지기만 했다. 화를 참을 수가 없었다. 뒤도 보지 않고 대문을 뛰쳐나왔다. 세상에 내 편은 없어. 엄마까지도 나를 사랑하지 않아. 큰 길까지 나왔지만 엄마의 커다란 슬리퍼 때문에 발걸음이 뒤뚱거렸다. 더 이상 걸음을 옮길 수 없어 멍하니 길 한가운데 서있었다. 어디로 가야할까. 집안에서 버려진 모습으로 친구를 찾아가기도 싫었다. 내 아지트로 갈 수 밖에. 나는 다시 골목으로 들어섰다.

 

우리 집은 동네에서 처음으로 지은 3층 건물이다. 안채는 우리가 사는 가정집이고, 바깥채는 가구점과 기원, 주산학원이 세를 들고 있었다. 상점 쪽으로 난 계단을 하나하나 무겁게 밟고 옥상으로 올라갔다.

 

내가 즐겨 찾는 곳이다. 지난 몇 년 동안 웅변대회에 나갈 때마다 여기에서 혼자 연습을 했다. 빨랫줄에 원고지를 한 장씩 걸어 놓고 읽으면 빨리 외워졌다. ‘ 이 어린 연사 여러분께 목청 높여 외칩니다!’, 소리를 질러도 방해받지 않는 곳이다. 한 번씩 멀리 아차산을 바라보며 심호흡을 하기도 했다. 한쪽 구석에 잡동사니를 넣어두는 창고의 지붕 끝과 옥상의 난간이 이어지며 만든 작은 공간이 있었다. 내 키로도 채 일어설 수 없는 높이였지만 자그마하고 아늑한 그곳은 나의 놀이터로 안성맞춤이었다. 단짝 친구인 명순이와 몰래 만화책을 빌려 읽거나, 소꿉놀이를 하거나, 때론 옹기종기 붙어있는 이웃집들의 뜰 안을 살짝 내려다보기도 했다. 일을 도와주던 성자언니가 가끔 빨래를 가지고 올라오긴 했지만, 그 구석진 곳에 관심을 두진 않았다.

 

몸을 웅크리고 작은 공간에 들어가 앉았다. 내일 학교는 못 간다. 아니, 이제 학교는 안 갈 것이다. 선생님한테는 어떻게 말씀을 드리나. 어떤 핑계를 대야하지. 반 친구들도 비웃을 거야. 도대체 내가 오빠보다 못한 게 뭐지. 그냥 땅속으로 푹 꺼져 들어갔으면. 쉬지 않고 눈물이 흘러내렸다. 하늘이 무너져 내리는 기분이었다.

 

갑자기 으슬으슬 한기가 느껴지며 무언가 무너지는 소리가 들렸다. 깜짝 놀라 눈을 떴다. 아마도 울다가 그만 잠이 들었나보다. 어둠이 짙게 깔린 하늘에서 우박이 쏟아졌다. 양철지붕을 사정없이 때리며 튕겨져 날아간 하얀 알들이 옥상의 시멘트 바닥에 깔려 있었다. 빨래 줄에 널린 옷가지들이 우박을 피하려는지 이리저리 펄럭였다. 무서웠다. ‘엄마, 엄마’ 달달 떨리는 입술로 엄마를 불렀다.

 

이른 봄이라서인지 바람은 아직 차가웠다. 몸은 얼어 붓고 다리가 마비되어 감각이 없었다. 비틀거리며 걷는데 얼음 덩어리들이 내 몸을 사정없이 때렸다. 문을 밀고 첫 번째 계단으로 발을 내딛는 순간, 나는 균형을 잃고 3층 바닥까지 뒹굴었다. 스타킹이 찢어지며 무릎에서 피가 났다. 마침 빨래를 걷으려 올라온 성자언니의 등에 업혀서 안채로 들어갔다. 저녁 식사를 준비하다가 놀란 엄마는 얼른 나를 안아주었다. 폰드 크림 냄새와 밥 짓는 냄새. 엄마에게서 달짝지근한 냄새가 났다.

 

열 감기로 이틀을 누워 있었다. 며칠 결석을 하고 엄마와 함께 학교로 향하는 발걸음이 무겁기만 했다. 걸 스카우트는 손바닥 위에서 형체도 없이 녹아버렸던 우박처럼 내 꿈속에서 사라졌다. 나는 다시 학교 행사 때마다 단복을 입고 뽐내는 그들을 부러운 눈길로 쳐다보아야만 했다.

 

말년의 엄마는 막내딸인 내게 의지를 많이 하셨다. 엄마의 병상을 지키다가, ‘그때 걸 스카우트 시켜주지도 않고,’ 때 지난 투정을 부리면 ‘내가 언제’ 라며 엄마는 말머리를 돌렸다. 자식 일곱을 키우며 어찌 해달라는 것을 다 들어 줄 수 있을까. 나도 이제 그 마음을 헤아리는 나이가 되었다. 자식들이 바라는 것을 여건이 되지 않아 'no'하며 돌아설 수밖에 없는 아린 상처를 나 역시 안다. 훗날 내 자식의 투정에 나 역시 말머리를 돌리게 되겠지. 2년 전 봄, 엄마는 떠났다. 잊어버릴 만하면 들추어내 응석을 부릴 엄마도 내 곁에 안계시니 누구에게 내 마음을 풀까.

 

후드득후드득. 양철 물받이가 울린다. 로즈힐 공원묘지의 잔디 위에도 하얗게 얼음덩어리들이 쌓이고 있겠지. 으슬으슬 한기가 느껴져 나는 집 안으로 들어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