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 속으

 

봄이 오는 길목에 불어오는 바람이 따뜻합니다. 앞마당에 마주 서 있는 두 그루의 아몬드 나무에 연한 핑크빛 꽃들이 가지에 기대어 환한 열굴을 내밀었어요. 오래 전 창경원 벗꽃나무 사이를 지금은 생각나지 않는 모습의 남자 대학생과 거닐던 생각이 떠오르네요. 참으로 많은 시간이 지났습니다.

 

과학의 힘이 인간을 뛰어넘을 듯 보였습니다. 2020년 새해를 맞고 얼마쯤이었을까요. 중국의 '우한이라는 도시 이름이 등장하면서부터 이상한 분위기가 느껴졌지요. 빠르게 우리 곁으로 흘러들어와 모두를 혼돈으로 이끌고 갔습니다.

근거없는 이야기는 사람들을 불안하게 만들고 일상 생활을 흩어 놓았습니다. 세계가 온통 새로운 바이러스의 발현과 그 영향력 앞에 미처 방어할 방법조차 찾지 못해 허둥거리는 모습입니다. 온 지혜를 모아 이겨내기 위한 인류의 노력이 절실합니다.

 

얼마 전 기다리던 가수 이은미의 콘서트를 갔습니다. 티켓을 받았을 때는 이렇게 어수선한 사회 분위기가 아니었어요. 막상 공연 때에 이르러 많은 예매자가 구매 취소를 한 모양입니다. 극장은 반도 채워지지 않은 채 공연이 이어졌습니다. 개인적으로 제일 좋아하는 대중가요 가수이기에 포기할 수 없었습니다. 귀에 익숙한 국내 가요와 팝송을 따라 부르며 잠시 젊었던 시절로 돌아 머물러 보았습니다.

 

지난 시간 속에서 많은 사람을 만나봅니다. 한 사람씩을 떠올리며 아직까지 삶의 한 부분에 자리하고 있는 그들을 그리워합니다. 살아오는 동안 고비마다 함께 손잡고 걸었던 사랑하는 이들입니다. 이미 세상 삶을 지난 영혼의 기도도 잊지 못합니다. 지금 변함없이 곁에 머물러 매일의 삶을 나누는 이들은 무엇과도 비길 수 없는 보석같은 존재입니다. 나의 허물과 아픔을 안아주는 고마운 사랑이죠.

 

마음의 기억 창고에는 끝없는 이야기가 담겨있네요. 어렸을 적부터 차곡차곡 쌓여진 삶의 역사가 이어져 있습니다. 너무 오래된 것은 희미하게 보이기도 하지요. 유난히 마음을 끌어당기는 시기는 사람마다 서로 다를 것입니다. 아주 행복했던 기억과 어려웠던 시절은 선명한 자국일 테죠. 모든 순간은 쉼 없이 흘러 오늘을 그 위에 얹으며 또 새로운 기억으로 남겨 놓습니다. 그것이 벗어나고 싶은 고통일지라도 아니면 보내고 싶지않은 환희의 시간이라 해도 자연히 지나가는 것이라 여겨집니다.

 

삶은 오늘 이 순간을 살아내는 것입니다.

매일 아침 새로운 코로나 19’의 힘든 소식들이 마음을 무겁게 합니다. 예상하지 못했던 상황이 너무도 빠른 속도로 세계 모든 사람을 불안으로 몰아가고 있습니다.

공부를 해야 할 학생들도 집에 머물고 웬만한 직장인들은 사무실 대신 집에서 업무를 보게 되었습니다. 불안감을 떨치기 위함인가요, 마켙 진열대는 사람들의 엄청난 구매량으로 인해 텅 비어버렸습니다. 생전 처음 본 광경입니다. 물질의 풍요로움에 익숙한 현대인에게 어쩌면 당연한 행동일까요.

 

우리는 사회적인 관계를 떠나서는 살 수 없는 인간입니다.

지금은 학교에도 갈 수 없고 기도하러 모이지 못하며 함께 이야기를 나눌 시간을 가질 기회마저도 허락되지 않습니다. 지난 시간 동안도 무수히 어려운 일이 우리 곁을 지나갔지요. 돌아보면 앞이 보이지 않아 살아갈 용기 마저 없었던 때도 있었습니다.

누군가가 사방이 꽉 막혀있다고 느껴질 때 위를 올려다보라고 했습니다. 뻥 뚫린 하늘을 보고 큰 숨을 내쉬고 마음을 가다듬어 봅시다. 가족이 함께 모여있을 수 있는 시간에 마음껏 사랑하고 그동안 잊고 있던 친구와 전화로 얘기를 나누는 여유를 만들면 좋겠습니다.                                            멀지않은 날 다시 만나 손과 손 맞잡고 힘차게 살아갈 때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