널배에 실은꿈                                                                                                            모 것이 멈추어 섰다. 가끔씩 내가 숨을 쉬고 있는지조차 느껴지지 않는 현실이다. 태어나서 한번도 경험한 기억이 없는 상황이 바로 눈앞에 펼쳐지고 있음이다. 게다가 예년과 다르게 봄이 오는 계절의 통로에 종종 흩뿌리는 비 마저도 낯설다. 어두운 마음이 더욱 아래로 아래로 가라앉는다. 오지않는 내일을 기다리는 듯한 무거움 때문에 환희의 봄은 멀기만 하다.
주일 예순 여덟의 생일을 지났다. 얼마 전부터 간간히 들려오는 전염병 전파 뉴스에 마음이 쓰이긴 했지만 이렇게 심각한 수준으로 확산되리라고는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으리라. 예년처럼 딸들의 생일 축하 식사 모임 제의에 왠지 선뜻 마음이 내키지 않았다. 바쁜 아이들에게 부담이 될까 하는 생각이 앞섰다. 대신 친구와 함께 가까운 곳으로 캠핑을 떠났다. 밤새 추적추적  내리는 봄비를 바라보며 모닥불 온기 속에 머물다 돌아왔다. 결국 사태는 더욱 심각해지며 사회적인 활동이 제재를 받는 지경 이른 것이다.
캘리포니아 주지사의 행정명령이다. 어쩌면 당연한 문제 해결의 대응전략이겠다. 지켜야 할 많은 조항이 선포되고 거의 외출 금지 수준이다. 나처럼 이미 은퇴하여 굳이 나가야 할 일을 만들지 않아도 되는 사람들에겐 그리 어려운 사항은 아니다.경제활동을 해야 할 세대는 어찌 할 것인가. 사태의 추이를 보아 몇 주 또는 몇 개월로 끝난다는 확신이 없으니 앞으로 일어날 어려움을 어찌 가늠할 수 있을까.
인간의 능력이 어디까지인가. 인류의 역사를 따라 살펴봐도 근래 1세기 동안 발달한 과학만으로 인간이 이루지 못할 것이 없을 날이 멀지않을 듯해 보였다. 나이가 들어가며 기본적인 사회 변화를 따라가기 위해 눈치껏 공부하느라 몹시도 힘겨운 우리 세대가 아니었는가. 얼마만큼 익힌 하면 멀리 있는 새로움에 숨이 올랐다. 마치 죽을 힘을 다해 뛰어도 절대로 밟히지 않는 앞서가는 그림자 같았다. 감히 뛰어넘을 게 없을 듯 했던 인간의 지혜가 눈에 보이지 않는 세균 앞에서 우왕좌왕 헤매고 있으니 우리는 어쩔 수 없는 피조물임을 인정할 밖에.
두 딸네 모두가 집에서 근무한다는 연락이 왔다. 불필요한 외출을 절대 금하라며 내게 다짐한다. 언젠가부터 내가 아이들에게 염려의 대상이 되었다. 혼자 지내는 삶에 익숙해진 나, 문제 없다.                                                                       어젯밤 잠이 오지않아 뒤척이며 많은 생각에 빠져들었다. 어렸을 적 학교 친구들은 지금 어떤 모습일까. 한국에 있는 친구들이 보고싶다. 돌아가신 부모님도 그리운 마음에 울컥 눈물 고인다. 내가 저지른 무수한 잘못이 생각났고 남은 삶을 어떻게 사는 것이 올바르고 행복한 것일까 고민도 했다.
새삼 평범했던 일상의 소소함이 다시 보인다.

아침에 건강하게 눈을 뜨니 감사했다. 편안한 잠자리도 고마웠다. 창밖에 내리는 햇살이 따뜻하고 새들의 지저귐 인사도 정겹다. 어렵사리 피어낸 선인장 꽃이 대견스럽다.

어느 다큐멘터리 프로에서 시린 겨울바람이 불어오는 11월의 서해안 풍경을 보았다. ‘널배라는 널판지에 한쪽 무릎을 꿇어 몸을 굽히고 한쪽 다리로 진흙을 밀면서 움직인다. 온 힘을 다해 개펄 바닥의 뻑뻑한 진흙을 훑어 꼬막을 채취하는 모습이었다. 그냥 걸으려 하면 얼마나 힘든 개펄인가. 발이 빠지고  미끄러워 앞으로 나아갈 수 없다.

어쩌면 지금 우리 지구인은 혼자의 힘만으로는 오래 걸을 수 없는 진흙밭을 어렵게 한 걸음씩 옮기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돌아보니 혼자가 아니다. 사랑하는 가족이 있다. 누구보다 나의 모든 것을 감싸주고 보호해 줄 수 있는 한우리 공동체가 아닌가. 친구와 이웃과 맺은 인연은 또 얼마나 소중한가. 학교와 사회, 교회 또 직장에서 수 없이 웃고 울던 순간들이 모두 사랑이었다.                                                                                                                                                     더이상 외로워 않기로 한다. 매일 아침 학교에 데려다 주며 한번은 볼 수 있는 손자와 만나지 못함이 아쉽고 필요한 물건을 전달해 주러 들른 딸을 안아주지 못하지만 참아낼 것이다. 함께 어깨동무 하고 북돋아 주며 나아간다면 어떤 어려움도 거침없이 이겨낼 것이다.
때로는 잘못 탄 기차가 좋은 곳으로 데려다 준다는 인도의 속담이 있단다. 비록 예기치 못했던 고통이 온 세계 인류를 가로막는다 해도 반드시 끝이 오리라. 이 시련을 이겨낸 다음 더 나은 지구별이 만들어질 희망을 품고 또 오늘을 힘차게 살아내기를 다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