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라지지 않는 영웅
여고 시절 같은 반이었던 A 가 생각난다.
1960년대 엘비스 프레스리는 요즈음 아이돌 가수에 열광하는 흐름 못지 않은 여고생들의 우상이었다.
A는 스카라 극장 주위에 있던 사진관을 휩쓸며 엘비스와 관계된 사진이나 기사들을 빠짐없이 수집했다. 쉬는 시간이면
친구들에게 앨범을 펴 놓고 설명과 자랑을 늘어 놓았다. 1967년 엘비스의 결혼식 날엔 그가 다른 여자의 남편이 된다는 것이
슬프다며 결석을 한 기억이 또렷하다.
지난 5월, 글 쓰는 이들과 문학기행을 다녀왔다. 시카고에서 시작하여 미시시피 강줄기를 따라 남부 뉴올리언즈까지 종단하는 여정이었다. 헤밍웨이 생가를 비롯 링컨의 발자취를 둘러보고 한니발에서 마크 트웨인을, 미주리 주에서 테네시 윌리엄스를 만났다.
미시시피 주로 내려 가 테네시 윌리엄스의 작품성을 공부하고, 켄터키 주의 바즈타운에서 미국 민요의 아버지 포스터의 생애와 음악을 돌아볼 기회를 가졌다. 윌리엄 포크너가 평생을 지냈다는 옥스포드 타운을 들러 멤피스로 들어섰다.
거기서 오늘날 우리같은 이민자가 누릴 수 있는 평등의 기초를 놓아 준 마틴 루터 킹 목사가 피격당한 모텔 발코니를 올려다 볼 수 있었다. 불과 40여 년 전만 해도 미국은 백인 이외 인종에게 그리 너그러운 나라가 아니었음이 실감 났다.
줄곧 미국 근대 역사에서 많은 영향력을 끼친 인물들을 기억해 보는 일정 중 멤피스의 그레이스 랜드가 있었다.
1950년대 말부터 1977년 죽기까지 세계인을 움직인 로큰롤 가수 엘비스 프레스리의 활동 본거지다. 어느 시대에서나 그러하듯 사회 정서적 문화를 이끌어 가는 요소 중에 예능을 통한 힘을 배제할 수 없다.
미시시피 주 투펠로에서 태어난 엘비스, 그의 쌍둥이 형제가 출산 도중 사망함으로 부모에게는 유일한 아이였다. 가난한 부모를 따라 1948년 멤피스로 옮겨 와 살게 된 그에게 11살 생일 선물로 받은 중고 기타는 그의 삶을 통째로 바꿔놓았다. 유난히 엄마와 좋은 관계를 가졌던 그가 자신의 노래를 녹음하여 선물하고자 찾았던 작은 'Sun Studio'는 지금 역사적 가치를 가늠할 수 없을만큼 중요한 장소로 남아있다.
엘비스가 22살에 사들였다는 저택은 당시 10만2000달러를 주었다 한다. 미국인들이 방문하고 싶은 첫째는 백악관이고 그 다음이 엘비스의 집 그레이스 랜드 맨션이란다. 네 채의 건물에 트로피와 의상, 목걸이, 반지, 사진 등이 전설적인 디스크와 함께 정리되어 있었다. 번쩍이는 금속 장식이 많은 무대의상이 그의 영광 만큼 화려했다.
생애동안 50만장 이상 판매된 88개의 골든 레코드를 가졌다. 그 중 100만장 판매 레코드가 45개, 게다가 200만장 이상 판매된 것도 22장이었다니 그 인기와 영향력이 짐작된다.
한쪽 벽면 액자 속에 1962년이 새겨진 수표들이 잘 정리되어 있었다. 모두가 1000달러 짜리였다. 혹시 공연 후 받은 사례인가 들여다 보니 모두 그가 발행한 수표였다. 어린이 복지 단체에 정기적으로 기부한 성금이었다.
어린 시절부터 흑인 노동자들 틈에서 그들의 노래를 항상 들으며 성장했다는 그는 어려운 이를 돕는 일에 넉넉한 마음이었나 보다.
당시 엘비스 프레슬리보다 클리프 리차드를 훨씬 좋아했던 나였지만 따뜻함이 느껴져 왔다.
테네시 주 멤피스는 전형적인 백인 보수주의 성향인 곳이었다. 흑인 음악에다 인종의 크로스오버를 성공적으로 이루었다는 점은 그가 위대하다는 평가를 받기에 충분하고도 남는다. 백인 취향의 주류 음악에 대안을 제시한 선구자라는 평을 듣기도 한다. 컨추리와 불루스음악을 백인의 감성으로 바꿔 R&B를 노래했다.
42년의 짧은 생, 그도 화려한 영광 뒤에 남모를 외로움과 부담을 이기지 못한 걸까. 심장마비라고 알려진 사망원인을 그대로 믿는 이는 없다. 세상에 남겨둔 딸 하나가 아버지의 자취를 관리한다. 그는 죽어서도 어마어마한 부를 만들어 내고 있다. 우리의 정서와는 많이 다른 미국인들의 이상한 집착이라 생각될 만큼 대중 가수의 삶이 엄청나게 미화되어 있기 때문이다.
고교 동창생 A를 오래 전 시장에서 만났다는 친구가 있다. 너무나 평범한, 아이를 업고 저녁거리를 사러 나온 여인이더란다.
무대 위 황홀함에 끌리고 매력적인 눈빛에 정신을 잃던 젊은 날의 그 정열은 어디로 사라져 갔는가.
영웅은 그대로 그 자리에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