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얀 단상
김화진
눈세상을 찾아가자. 캘리포니아의 겨울 동안 아무리 기다려도 보내주지 않는 눈을 찾아 길을 나섰다. 제대로 겨울맛을 느끼고 싶다. 한국에선 언제나 온 몸이 얼어붙는 추위와 가득 쌓인 눈 속에서 정월을 지냈다. 오랫동안 잊고 있었던 그 기분, 어린 시절이 그리워졌다. 휴가를 내어 집에 머무는 딸과 3주간의 짧은 겨울방학 중인 손자를 동반하고 눈을 찾아가기로 했다. 엘에이에서는 한 시간 정도를 운전해 나가면 바다에 이르고 내륙으로 그만큼을 이동하면 높은 산을 찾을 수 있는 것이 살기좋은 도시로 손꼽히는 이유다. 눈을 만나려면 이런 겨울에 좀 멀리 떠나가야만 한다.
하루를 달려 유타주에 위치한 콘도에 도착했을 때는 해가 기울고 기온은 화씨 30도를 가리키고 있었다. 그 사이 지나 온 네바다와 아리조나 주는 서부의 황량한 사막과 선인장의 경관이 어느만치 캘리포니아와 닮아 있어 그리 새롭지 않다.
그에 비해 '산에 사는 사람'의 어원을 가졌다는 유타 주는 빼어난 산악의 풍광을 자랑한다. 미국의 50개 주 가운데 최고의 설경지역으로 뽑히기도 했다. 태어나 이처럼 낮은 기온을 느껴본 일이 없는 손자는 벌써부터 추운 날씨가 신기한 듯 입김을 내어본다. 떠나기 전부터 고대하던 흰 눈이 길따라 소복히 쌓여있어 여행의 서막을 멋지게 열어준다. 숙소에 짐을 풀고 나니 벌써 밤이다. 서부보다 한 시간 이른 곳이고 산중이라서 더욱 빨리 해가 지는 듯하다.
자이언 내셔널 파크로 갔다. 연말 동안 이미 다녀간 사람들이 많아서인지 길은 한산했고 우리는 신나게 달렸다. 눈이 쌓여있는 곳에 멈추어 섰다. 털모자와 목도리로 중무장을 하고 장롱 속에 꼭꼭 숨겨져 있던 장갑도 꺼냈다. 처음엔 맨손으로 눈을 뭉쳤다. 이 감각, 부드러운 느낌이 얼마 만인가. 눈은 습기가 없어 아주 차지도 않았고 뭉치려 해도 자꾸 흩어져 버렸다. 잠시 내 손의 체온으로 녹인 후에야 작은 눈덩이가 되었다. 손자녀석은 아예 눈 위에 큰 대자로 누워버렸다. 산을 더욱 올라 스키장에 이르니 눈앞에 새하얀 벌판이 펼쳐졌다. 스키를 타는 사람들의 동선을 따라 곳곳이 화려한 꽃잔치다. 한쪽엔 어린이들이 즐길 수 있는 눈썰매장이 있다. 한참을 뒹구르며 놀았다. 눈 위에선 어린이와 어른의 경계가 없다.
어릴 적 겨울의 기억이 떠올랐다. 엄마는 졸라대는 막내를 이기지 못해 어려운 살림살이에 스케이트를 사 주셨다. 중학교 1학년 때였으니 한창 발도 빨리 자라는 때가 아닌가. 얼마나 큰 것으로 샀던지 구두 앞끝에 솜뭉치를 잔뜩 집어넣고 신었다. 미아리 논바닥이 얼은 곳은 한겨울엔 스케이트장이 되곤 했다. 곳곳에 미처 숨지못한 뿌리들이 솟아있어 스케이트 날이 걸리면 얼음 위에 곤두박질을 치면서도 마냥 신이 났다. 얼음이 얇은 곳에 발이 빠지면 한참동안은 장작불 앞에서 젖은 신발과 몸을 녹여야 했다. 추운 바람을 피해 가마니로 가림막을 둘러 만든 어묵가게의 그 국물맛은 또 어땠나. 다시는 찾을 수 없을 것이다.
다음날은 조금 멀리 부라이스 캐년 파크로 들어갔다. 산속 곳곳의 길은 빙판으로 인해 들어설 수 없도록 막아놓았고 전망대에서 계곡을 내려다 보는 것이 고작이었다. 너무 많은 눈이 덮혀 아기자기하고 광대한 계곡의 모습이 숨어 버렸다 무릎까지 빠지는 눈길을 걸으며 난 이 세상이 아닌 곳에 있는 듯 했다. 모든 것이 가려져 있는 세상, 내 허물과 아픔 마저도 보이지 않는, 겉으로는 너무도 평안한 곳. 내가 스스로 열어 보이지 않으면 아무도 알 수 없는 태연함이다. 아마도 얼마 지나 봄볕에 서서히 눈이 녹아내리면 가리워져 있던 것들도 하나씩 드러나리라. 나는 그 때를 두려워하지 않기를 스스로에게 다짐한다. 매일의 삶에서 최대한으로 정직하고싶다. 나의 결점이라 해도 굳이 감추지 않으려 한다. 우리는 모두가 서로 다른 모습들로 어울리고 조합을 이루며 살아가는 것이 아닐까.
계곡 안쪽에 Weeping Rock 이라는 바위들이 있다. 높은 곳에서부터 흐르는 물길이 수 갈래 흩어지며 바위 위로 흘러내려 마치 눈물을 흘리는 모습같아 붙여진 이름이다. 겨울이 되어 꽁꽁 얼어붙은 바위에 매달린 고드름은 마치 웅장한 성당 벽면의 오르간 파이프같이 질서있는 모습이다. 어떤 바위는 거의 얼음으로 덮혀 표면이 투명한 것도 보였다.
아버지가 생각났다. 그 크고 단단한 바위가 흘리는 눈물은 어쩌면 아버지의 마음일 것 같았다. 강해보이는 듯 하지만 한없이 여린, 속으로 가족을 위해 흘리던 눈물, 딸을 시집보내며 서운한 가슴에서 흐르던 사랑의 눈믈, 얼어붙은 세상 속 눈물을 받아 안고 살다 가신 아버지가 보고싶다. 오래 전 아내의 죽음 앞에서 크게 우셨다. 그것은 내가 많이 자란 후에 처음 본 아버지의 눈물이었다. 엄마를 떠나보내고 30년이 지난 겨울날 엄마 곁으로 돌아가셨다. 천상에서 보고계실 아버지가 그립다. 아버지 바위의 눈물이 더이상 슬프지 않기를 바란다. 이젠 근심이 아닌 기쁨의 눈물로 바꿔드리고 싶은 내 마음을 아시려나.
여행은 나를 겸손하게 한다. 운전대를 잡는 출발에서부터 집으로 돌아올 때까지 매 순간을 성실히 움직여야 한다. 내 일상의 궤도에서 벗어난 여분의 시간을 가치있게 채워야 한다. 자연 속에서 사랑하는 가족과 함께 따뜻한 체험으로 행복했던 기억들을 한가득 안고 돌아왔다. 내 속엔 아이들을 향한 엄마바위의 고인 눈물이 처연히 서려온다. 새로운 한 해를 받아놓고 어떻게 그려야 하는가를 새기는 귀중한 시간이었다.
캘리포니아로 들어서니 햇빛이 따사롭다. 아버지 바위의 연한 미소가 가슴에 퍼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