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녁에 우는 새
옛 병이 도졌나 보다. 우울한 생각으로 말하기도 싫고 누구와 만나는 일도 귀찮다. 남편이 세상을 떠난 후 3년쯤 되었을 때였나. 난 조금씩 혼자의 삶에 익숙해 가는 듯했고 비교적 평온한 마음을 유지하고 있었다. 어느 순간, 세상을 사는 일이 힘겹게 느껴지자 곧이어 드는 생각은 '죽음'이었다. 시간이 흘러가며 옅어질 것으로 믿었던 남편에 대한 그리움이 오히려 더욱 진한 색깔로 스며들고 있었다. 밤을 꼬박 새우는 날이 많아 의식은 몽롱한데 본능적 욕구 만이 깨어있어 먹는 것을 주체하지 못했다. 체중은 늘고 움직이는 일은 점점 줄어 몸의 상태는 그야말로 최악이었다. 그것에서 벗어나 지내온 시간이 꽤 흘렀는데 새롭게 찾아든 어둠이 나를 힘들게 한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돌아가신 분의 3년상을 치르며 위패와 남은 기억을 모두 태운다. 앞마당 불길 속에서 할아버지의 탈상을 보며 경험한 이상했던 감정은 여섯 살 때의 일이었다. 어린 나이였지만 할아버지가 영영 사라지는 느낌이라서 많이 울었다. 유난히 나를 사랑하셨다는 그분을 다시 만날 수 없음을 알았던 모양이다. 아마도 영혼이 새로운 세계에 안착하는 시기를 3년 후쯤으로 생각한 것일까. 나 역시 그만큼의 시간이 흐르면 그를 떠나보낼 수 있을 것이라 믿어왔다.
요즘 통 잠을 이루지 못한다. 창밖의 새벽달이 보일 무렵까지 전혀 취침하지 못한 채 딸의 집으로 달려가 손자의 등교를 서두른다. 아직은 내가 맡아서 해야 할 일들이 남아 있는데 왜 이리 의욕이 나질 않는가. 수년 전 의사와 상담하고 처방 바았던 약을 다시 꺼내본다. 내가 의존할 대상은 누구인가, 무엇인가.
집안에 머무르는 시간이 많아지면서 생활의 패턴이 갈피를 잡지 못하는 상황이다. 꼭 해야 할 일마저도 나와 상관이 없는 양 버려져 있어 주변이 어수선하기가 마음속과 다르지 않다.
한 달 전에 아주 작은 시골집으로 이사했다. 엄청나게 큰 땅에 자리한 오두막집, 그러나 내가 혼자 살기엔 부족함이 없다. 옆집과의 거리는 멀지만 가끔 말의 울음소리가 들리고, 아침 닭의 횃소리가 우렁차다.
도시에서 태어나 성장한 관계로 자연의 운치를 잘 느끼지 못했다. 실제로 한국의 시골길에서 파란 보리밭이 잔디인 줄 알고 사뿐사뿐 걷다가 세상에서 가장 험한 욕을 들었던 부끄러운 기억도 있다.
요즈음엔 부지런한 새들의 아침 노래를 듣는다. 몇몇 나무에 먹이통을 매달아 주었더니 많은 친구가 모여든다.
때로는 얼마나 먼 길을 날아왔을까, 갈매기도 내려앉아 있다. 큰 새에게는 시원치 않은 먹이인 줄을 알기에 좀 더 실한 음식을 놓아주면 어느새 낚아채는 모습이 가히 투쟁을 벌인 후의 승리다.
조그만 식탁에 자리하고 창밖을 보면 넓은 마당이 한눈에 들어온다. 말끔히 정리되어 있지 않은 것이 오히려 자유로운 느낌을 전해준다. 오렌지 나무로 가득했던 땅에 60년이 넘도록 늙어버려 마른 가지가 누런빛으로 세월을 낚고 있다. 굳이 꺾어버릴 이유도 없어 그대로 매달려 있는 모습에 상념이 스친다. 비록 많은 오렌지가 열리지 않았어도 내 나이만큼의 시간을 버텨낸 나무가 고맙고 사랑스럽다. 몸의 한 쪽은 전혀 쓸모없는 부분이 되었지만 여전히 한 나무로 떳떳하게 서 있다. 그렇다, 여태껏 온몸과 마음을 다해 살아온 내 삶의 시간이다. 어느 한 곳이 닳아 없어져 제 기능을 다할 수 없다 하더라도 여전히 내 것이다. 다른 사람은 모르지, 나만의 소중한 기억인 것을.
나뭇가지 사이에서 시끄럽게 울어대는 새는 짝을 부르는 것이라 들었다. 아마도 아침 일찍 제 짝을 찾아야 그 하루를 즐겁게 지낼 수 있기 때문일까. 내 안에서 들려오는 소리는 오늘 하루를 어디로 인도하려나. 차라리 하루의 끝말에 우는 새가 되고 싶다. 화려한 하루를 지내지 못한다 해도 마음에 깃든 혼자 만의 노래를 부르리라. 삶의 저녁 시간을 언제 맞게 될는지 알 수 없지만, 매일의 저녁을 노래하겠다. 다시 새 아침을 맞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