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 내비게이션

방향을 잃었다. 늘 차 안에 내비게이션이 있어 그것만 믿은 것이 화근이었다. 하필 그날은 다른 차를 이용하느라 주행안내를 받을 길이 없었다. 처음 가는 곳의 길을 미리 알아 보았어야 했는데 깜빡 잊은 탓에 많은 시간을 헤매고서야 당도할 수 있었다.

두 해 전 나는 엘에이에서 시애틀까지 왕복 삼천 마일을 홀로 운전하여 다녀온 적이 있다. 고등학교 시절 삼총사였던 우리가 실로 사십 년 만에 함께 만날 수 있는 기회였다. 한 친구는 시애틀에,  하나는 서울에, 나는 엘에이에 살면서 가끔 둘이 만난 적은 있지만 셋이 함께 모일 기회가 없었다. 마침 서울에 사는 친구가 시애틀 모임에 참석하러 온다기에 나는 용기를 내어 길을 나섰다.
먼 길을 내비게이션 하나에 의지하고 떠났다. 친구 집 주소 하나만 입력한 채로.
사흘 길을 가는 동안 참으로 충실하게 나를 안내해 주었다. 일찌기 내 삶에도 이같이 완벽한 안내자가 있었더라면 덜 후회하는 인생이 되었으려나.

언제부터일까. 사람들은 길을 묻지 않는다. 단지 주소만 확인할 뿐.
정확한 주소를 입력한 다음 지시하는 대로 운전만 하면 어느새 목적지에 도달하게 되니 방향을 잃을 염려가 없다. 거리와 시간, 속도와 교통상황 등도 기계가 미리 알려준다. 혹 길을 잘못  들었다 해도 결코 화를 내지 않으며 곧바로 새 길을 안내한다. 녹음되어있는 메마른 소리는 그 어떤 감정도 담고 있지 않다.

나는 무엇에 의해 여기까지 왔을까. 지금까지 얼마나 많은 네비게이션을 업데이트하며 살아왔나. 어린아이 시절 그 필요성은 절대적이었다.
부모님은 내 길의 안내자였다. 스스로 어느 곳도 찾아갈 수 없었기에 온전히 믿고 따랐다. 그 속엔 평탄한 길만 있지 않았다. 떄론 넘어야 할 험준한 산과 마주쳤고 물살이 센 강도 건너야 했다. 커가면서 가끔은 슬쩍 알려준 길에서 벗어난 기억도 있다. 너무 먼 곳에서 헤매다 지쳐 울며 무서운 밤을 새우기도 했다. 짧은 방황과 부정을 실험한 시간이었다.
어미가 된 후부터는 내 아이들에게 방향을 알려주는 역할을 했다. 행여 바르지 못한 길을 안내했던 것은 아닐까 두려운 마음을 갖는다.

내비게이션은 기록을 남긴다. 일부러 삭제하지 않는 한 내가 찾았던 목적지의 주소가 그대로 찍혀있다. 단지 방향을 알려주는 역할만 담당할 뿐 도착점은 나의 선택이었다. 내 삶이 걸어온 길, 들렀던 장소들을 낱낱이 확인할 수 있다. 다 기억하지 못한다 해도 거쳐온 자국들은 내 인생의 부분들을 채우는 나 자신이다.
이젠 더 이상 필요하지 않은 걸까. 긴 세월 동안 많은 곳을 들렀었다는 경험만으로 어디든 혼자 갈 수 있다는 생각은 아닌가. 가끔 열정적 일생을 살아온 이들이 뒤늦게 엉뚱한 길에서 무너지는 모습을 본다.
모든 길은 서로 이어져 어느 교차로에선가 마주치게 된다. 자신이 머물렀던 곳으로부터 크게 벗어나지 않을 범위에서 만남과 헤어짐이 이루어진다.

오늘도 행복을 위한 주소를 새겨 넣어본다. 아직 가지 않은 길을 찾으려면 든든한 안내자가 있어야겠기에.
꿈속에서만 보았던 그곳에 가고 싶다.   모두가 사랑의 옷을 두르고 행복의 꽃을 선물하는 아름다운 나라. 더는 그리움에 눈물 흘리지 않아도 될 따뜻한 곳.
다음번 여행지는 '하늘나라' 가는 길이 되려나.